연출가 일기 11

부록, 호시절, 학전이 만들어 준 독립의 날

by Pia Jong Seok Lee

세밑에 이사를 했다. 돈암동 어느 언덕 꼭대기에, 그 꼭대기에서 또 꼭대기로 올라가서의 반 지하를, 보증금 삼백 만원에 월 십오만 원을 주기로 하고 얻었다. 재활용 센터에서 세간을 준비했더니, 그럭저럭 옛집 내 방과 같은 안락함이 있다. 제대 후 남은 대학 생활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다. 영등포에서도(Ld형 연습실. 연출가. 참 살뜰히 날 살펴줬다. 지금까지도.) 살아 봤고, 석관동에서도(김석만 선생님은 자신의 연구실을 한 학기 이상 내게 내주셨다. 그 방에서 자고, 공부하고, 선생님 담배 훔쳐 피고 감사히 지냈다. 또 다른 곳은 Jj형의 자취방. 극작가이자 시인. 근 1년을 날 재웠고 먹였다. 그들이 내 대학생활의 부모와 같았다.) 살아봤고, 졸업 후에는 뉴질랜드에서도 살아 봤고, 다시 돌아와서 또 다시 석관동 학교에서 살아봤다. 그 3~4년의 떠돌이 생활 동안 내 아끼던 책이며 옷가지들은 천지 사방으로 흩어졌고, 내 정서도 흩어 졌다. 그 생활 동안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구한 것이 아니었기에 본래의 집주인 되는 선배들의 신세를 졌던 것이고, 그러기에 어느 곳이었던 지속성은 없었다. 좀 더 야무진 나였더라면, 어떻게든 한 곳에 작은 방 한 칸이라도 얻어 생활 했으련마는, 그런 주변머리도 필요도 느끼지 못해, 그 때 그 때 마음에 맞는 선배에게 반 강제적으로 우겨 기생 생활을 했다.


그렇게 돌다가 이제야 다부지게 마음먹고 방을 하나 얻었다. 방을 얻어 좋은 것은, 해가 지면 분명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연락을 취할 필요 없이 내 멋대로 돌아갈 곳이 생겼다는 것이고, 또 그곳에 가면 아침까지 펴 놓고 나온 책이며 노트들이 고스란히 나를 기다린 다는 것이다. 그것 하나가 그리도 좋을 수 없다. 책들을 다시 사 모을 수 있다는 행복과 희망이 있다. 떠돌 때는 책을 사 두어도 그것이 좀체 어디로 숨었는지 다시 찾으려면 재회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 책들이 책꽂이에서, 고스란히 한쪽 등을 보인 채 다시 만날 시간을 기다려 주고 있으니, 이보다 행복할까.

다부지지 못했던 나는 이사를 한지 두 달이 넘어선 어제야 ‘전입신고’를 했다. 도무지 관청은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을 때, 군에 갈 때, 여권 받을 때, 면허증 교부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가보지를 않아서, 웬만해선 가고 싶지도 않고 발길이 향하지도 않는다. 또 뭐 하라고 강제적으로 장치를 걸어놓고, 안하면 내 자산을 뺏어가 버리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곳이라 더더욱 가고 싶지 않다. 어제 주소지를 등록한 것도, 그거 하지 않아도 나 사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는데, 등록을 안 하면 내가 보증금을 걸었던 삼백만 원을 보호받지 못한다는 협박에 못 이겨 한 것이다. 동사무소 여직원과의 20분의 대화는 내 심기를 편치 않도록 만들었다.


우선 내 주소지가 어느 어느 빌라의 211호의 지하동 200호인데, 실질적인 주소지로서 그런 주소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정성 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러했고, 그와 동시에 삼백만 원 짜리 계약서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날 하대하는 듯한 눈빛이 그러했으며, 그 눈빛 아래서 다소 의기소침하여 구차하게 다시 이러 이러 해서 그런 주소는 실제 존재해야 한다고 설명해야 하는 내 모습이 기쁘지 않았다. 그녀는 여러 서류들을 뒤적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결국은 지하동 200호를 지우고 지하 211로 새 주소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큰일을 해내어 널 이롭게 했다는 눈빛으로 내게 임대차 계약서와 주민증을 돌려주었다. ‘600원 저쪽에다 내세요’라는 말과 함께. 어쨌든 그녀는 지구상에 존재치 않았던 새 주소를 만들어 나를 돈암동의 동민으로 만들어 냈고, 또 일금 삼백만 원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으니, 동으로 봐서나 나로 봐서나 참 큰일을 해낸 것만은 분명하다. 그 절차가 기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세대주가 되었다. 나 혼자, 나의 세대주가 되었다. 이제 내 등본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일 테지. 집은 벌써부터 나와 살았지만, 그래도 관에 등록된 문서상 우리는 한 식구였는데, 이제 관에서 보호해준다는 그 삼백만 원 때문에, 우리는 문서상으로도 한 식구가 아니다. 나는 정녕, 혼자인 것이다. 이것이 독립이구나. 나와 내 부모를 잇던 기본적인 끈을 풀어 버리는 것, 잔인하게 기록마저 지우고 새 것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참 독립이었구나.

오늘 동사무소 여직원은 참 여러 일을 해냈다. 그녀는 지구상에 없던 새 주소지를 만들어 내었고, 내 돈 삼백만 원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600원의 수입인지 보험을 들어주었으며, 내 부모로부터 나를 갈라놓아 나를 진정으로 독립시켰다. 에이, 돈 삼백만 원에 집착하지 말 걸 그랬다. 등본이란 게 평생 열 번도 안볼 것인데, 내 이름 석자 엄마 아빠 곁에 없는 게 이렇게 서운한가. 거봐라, 내가 관에 가기 싫은 이유가 다 있지. 결국은 우리를 생이별 시켰잖은가, 오늘. 동사무소 여직원의 펜대 하나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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