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덧을 이겨내는 현실적인 해결책
추억의 다마고치를 아시나요?
'다마고치'를 아시나요?
손바닥보다 작은 달걀 모양의 기계 안에 사는 반려동물인데요.
밥을 주고, 똥을 치워주고, 잠을 재워주며 정성껏 보살펴야 하는 아주 작고 소중한 생명체였죠!
조금이라도 관심을 떼면 어김없이 '삐빅-'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배가 고프니 밥을 달라고, 심심하니 같이 놀아달라고 보채는 신호였죠.
제 유년 시절은 그 작은 화면 속 생명을 살리려는 다정한 노심초사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제때 밥을 주거나 청소를 해주지 않으면 화면 속에 무시무시한 '해골' 마크가 떴거든요.
혹시나 나의 반려동물이 아프거나 죽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수업 시간에도 몰래 주머니 속 버튼을 만지작거리던 그 간절한 마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흠.. 요즘 제가 딱 그런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어른이 된 제 주머니 속에는 다마고치 대신, ‘쫑아’로 대상이 바뀌었지만요.
[쫑아가 누군가요? 종이아기 쫑아키우기 1-3편 돌아보기]
'쫑아'는 제가 지금 공저로 준비 중인 원고의 별명이에요.
쫑아는 다마고치보다 훨씬 더 까다롭더라고요.
글감을 제때 주지 않으면 금세 생기를 잃고,
꾸준히 돌보지 않으면 화면 속 해골보다 무서운 '백지'상태로 저를 노려봅니다.
다마고치에게 밥을 주듯 매일 문장을 적어 내려가고, 배변을 치워주듯 불필요한 단어들을 걸러내야 한답니다.

어떤 날은 쫑아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아 뿌듯하다가도,
어떤 날은 하얀 화면 위에서 단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쫑아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빠지는 함정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걸 입덧 아니고 ‘글덧’이라고 불러요.
증상은 이렇습니다.
평소에 멀쩡하던 노트북 화면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고
하얀 바탕에 깜박이는 커서가 어지럽게만 보입니다.
글쓰기 빼고 다 재밌어지는 기이한 현상도 일어납니다.
유튜브 숏츠는 왜 그렇게 재밌고, 뉴스 기사는 왜 평소보다 더 흥미진진한 걸까요?
글덧에 걸리면 노트북을 켜는 것조차 거대한 숙제처럼 느껴집니다.
'쫑아'를 예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자판 위의 손가락은 더 무거워져만 갑니다.
이 지독한 '글덧'에서 저를 구원해 준 것은 번뜩이는 영감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다마고치가 울렸던 '삐빅-!' 소리 같은
아주 현실적이고도 강력한 약속, 바로 '마감'소리였습니다.
저희 공저팀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는데요~
그 만남의 전제 조건은 명확합니다.
각자 맡은 내용 발표하기
혼자 쓰는 글이었다면
"오늘은 컨디션이 영 아니네~",
"내일 더 좋은 생각이 나겠지"라며 쫑아를 배고프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서 쓰지 뭐!"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쫑아의 머리 위에 불길한 해골 마크가 뜨는 줄도 몰랐겠지요
이런 저를 구원한 건 다름 아닌 공동육아자(공저자)의 약속이었습니니다,
일주일마다 찾아오는 명확한 마감 기한은 제 지독한 게으름을 이겨내는 삐빅-! 소리가 되었습니다.
마감 전날의 초조함은 신기하게도 글덧을 이겨내는 힘을 주더라고요
평소에 없던 '초인적인 에너지'가 생겨날 때도 있답니다!!

'마감 삐빅-!' 소리가 들리면
저는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자판을 두드립니다.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마감이 오기 전에 영감을 붙잡아 앉히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해야할까요!?
결국 쫑아를 키우고 있는 건 제 필력이 아니라,
마감 기한을 지키려 했던 절실한 책임감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마감이라는 ‘삐빅-’ 소리에 맞춰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는 다음 질문을 마주할 차례입니다.
‘우리는 대체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 걸까?’
우리만의 ‘차별화된 색깔(브랜딩)’을 정해야 했고,
독자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지 ‘콘셉트’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습니다.
또 글의 결을 맞추기 위해 우리만의 ‘집필 규칙’도 세워야 하죠.
여러 명의 작가가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분량과 글의 결을 맞추어 가는 과정은
마치 정교한 퍼즐을 맞추어나가는 느낌이었어요.
다음 편에서는 한 권의 책으로서 쫑아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공저 작가를 하나로 묶어준 ‘공동 육아 규칙’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드릴게요.
삐빅-!
다음은 우리만의 '쫑아 세계관'을 세우는 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