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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ve Nov 16. 2024

하늘이 조금씩, 밝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하늘엔 달조차 보이지 않는다. 희미한 빛을 내는 가로등만이 뒤에서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하늘은 어중간한 회색빛을 띄고 있었고, 밤 10시가 맞는지 의심이 갈 만큼 저 담벼락 너머에선 수많은 사람들의 말소리와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밤은 이쪽 세계에만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 저 너머의 사람들은 한 시간도 빼놓지 않고 밝은 빛을 흘려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담장은 내 키의 한 9배 정도 되어 이곳을 나가 저쪽으로 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쪽 세계에도 물론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그림자’라고 부른다. 그림자들은 담벼락에 찰싹 달라붙어서 저 너머 사람들을 흉내 내려 한다. 그들이 하는 말이라도 들리면 그림자들은 허리에 두 손을 얹고 어깨를 쭉 편 채로 당당하게 그 말을 내뱉고는 한다. 그러면 다른 그림자들은 그 그림자를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귀를 담벼락에 가져다 댄 채 다른 소리를 찾으려 한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절대로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담벼락에 붙어있는 것 외에 다른 일들을 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내가 혼자서 바닥에 있는 돌을 던졌다가 받으며 놀고 있을 때 한 그림자가 나에게 다가와 나를 구석구석 살폈다. 나는 그게 우스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 그림자는 내 행동을 똑같이 따라해 보기 시작했다. 다른 그림자들도 하나 둘 뒤를 돌아보더니 땅에서 돌을 주워 주고 받아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런 그들이 섬뜩하게 느껴져 얼굴에서 웃음을 감추었다. 다행히 그들은 어떤 그림자가 새로운 말을 발견해 내뱉자 다시 담벼락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의지가 없는 것처럼 담벼락에 착 달라붙어서 반대편 사람들의 말과 행동만을 따라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반대쪽에서 넘어오는 환한 불빛과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는 누구라도 탐낼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하루는 그들처럼 담벼락에 딱 붙어서 반대쪽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았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흥미가 떨어져서 결국 이쪽에서 할 수 있는 놀이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공 던지기, 달리기, 사방치기, 줄넘기, 나무타기, 인형놀이 등등 이곳에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하지만 아무래도 혼자는 너무 심심했다. 그림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그림자일 뿐이지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저 담벼락의 반대편으로 넘어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일단 저 위로 넘어가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그림자들이 모이지 않은 곳을 찾아 그 밑의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큰 담벼락이 그동안 어떻게 지탱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담벼락은 거의 땅 위에 올려져 있었다. 땅을 파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일이었다. 크고 뾰족한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고 한 3시간동안 끊임없이 파다 보니 어느새 작은 구멍 하나가 파졌다. 이렇게 쉽게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저 그림자들은 왜 저기서 헛고생을 할까 생각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림자들은 내가 하는 행동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어 보였다.

 나는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조그마한 구멍에 몸을 쑤셔 넣었다. 한 반쯤 들어갔을 때쯤에는 반대편에서만 들려왔었던 그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기뻤다. 그런데 내 착각인지 벽의 구조 때문인지 조금 더 지나갔을 때쯤에는 소리가 더 작아지는 듯했고 구멍의 끝에 다다랐을 때에는 거의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의문이 갔지만 그래도 기대를 감고서 담 너머의 풍경을 보았다. 그리고 그 풍경은... 내가 살던 곳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하늘에는 태양은커녕 달도 떠있지 않았고, 가로등 불빛만이 저 반대편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담벼락에 들러붙은 채 서로 소리를 들으려 애썼고, 방금 반대쪽에서 온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즐거운 말소리, 밝은 빛은 담 건너편 세상에만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곧 절망에 빠졌고 몸에 힘이 풀린 나는 그 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이쪽 사람들이나 저쪽 사람들이나 모두 허상을 쫓고 있었다. 서로 만족을 모른 채 말이다.

 누워 있으니 저절로 시선은 천장을 향했고, 천장 높은 곳, 그러니까 담의 끝자락에는 스피커가 붙어 있었다. 그 웃음소리를 만들어내는 스피커가. 저 그림자들과 이대로 똑같아지긴 싫었다. 일단 가로등을 돌을 던져 깨부쉈다. 가로등이 부서지자 저 반대편에서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멎은 듯했다. 나는 다시 구멍을 기어가 반대쪽으로 갔다. 반대쪽의 그림자들은 넘어오는 불빛이 없어지자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나는 이쪽에 있는 가로등도 깨부쉈다.

 마지막은 저 스피커 차례였다. 나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돌 중 하나를 골라들어 있는 힘껏 저 위로 던졌다. 지잉. 귀 아픈 소리와 함께 스피커가 떨어졌다. 그림자들은 담장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이제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들 꿈에서 깬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닌 듯 보였다.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조금씩, 밝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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