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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ve Oct 12. 2024

나도 이상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체육시간이 끝난 뒤,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학교는 꽤 불공평한 체제라는 걸 깨달았어.”

그러고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녀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선생님의 길고 긴 종례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모두 교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개미들이 바글바글한 케이지 같았다. 어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하교를 같이 하자는 말을 던졌지만 모두 거절당하자 나를 쳐다봤다. 

“야! 같이 가자!”

그가 나를 크게 불렀다. 딱히 거절할 변명이 없었기에 그의 말을 수락했다. 

“그래”

나는 미적지근한 대답을 했지만 그는 바로 내 옆에 섰다. 뭐지, 갑자기 친한 척이라도 한다는 것일까? 그는 다른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긴 했다만 나와는 딱히 연이 없었다. 그는 붙임성 좋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와 함께 1층으로 내려와 보니 현관에 다른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우리는 그 틈에 껴서 신발을 갈아 신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아, 내 폰!”

“야 나 그럼 먼저 간다.”


 그는 다른 친구 옆에 붙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사실 좀 서운했다. 그에게 나는 그냥 오늘 같이 갈 반 친구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학교 5층까지 계단을 한 칸, 한 칸 등반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아이들을 보면 손을 흔들었다. 어느새 5층까지 도착하자 시간이 꽤 흘렀는지 학교는 고요했다. 불 꺼진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걷다 보니 복도 끝에 있는 교실이 보였다. 2-1반. 문을 밀고 들어가자 고요한 교실이 나타났다. 그리고 혼자 책상에 앉아 있는 그녀가 보였다. 역시 이상했다. 그녀는 내 인기척을 느끼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왜 학생만 교복을 입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그녀는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걸까.

“단합심을 다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선생님들도 입어야 하지 않아?”

“에이 어른이 그런 걸 입으면 창피하겠지.”

나는 지금껏 어른들이 교복을 입는다는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창피해도 된다는 거야?”

말문이 막혔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생각이, 사회의 규칙이라고 여겼던 것이 공평하지 않을 일일수도 있지 않을까? 내 인생 중에 처음으로 가져 보는 질문이었다. 

“선생님들은 크롭티도 입고 머리 염색도 하고 화장도 하는데 왜 학생은 그러면 안 되는 걸까? 이상하지 않아? 학생다운 모습이 대체 뭐길래?”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상하게도 설득이 되었다. 

“...”

“선생님이 선생님답지 않은 모습은 감추면서 학생은 왜 학생다워야 하는 걸까.”

이어진 그녀의 말은 나를 더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녀는 전혀 화장기 없는 얼굴로, 염색하지 않은 까만 머리와 맨 윗 단추까지 잠근 교복을 입고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꾸미는 것에는 관심도 없는 그녀가 왜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너는 왜 그런 게 궁금한 거야? 밖에서도 딱히 꾸미고 다니진 않는 것 같던데.”

그녀는 나를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싱긋 웃고서 입을 뗐다. 

“그냥. 불공평하니까. 꼭 내 일이 아니어도 잘못된 거면 바꿔놔야지.”

“아..”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게 쳐다보더라. 마치 당연한 걸 왜 묻는다는 듯이. 그런데, 내가 알아낸 비밀 하나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 중에서는 내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거야.”

"그러면 너는 그 답이 뭐라고 생각해?"

"음... 잘은 모르겠어. 어쩌면 답은 없는 게 아닐까? 그저 그 문제에 대한 수많은 고민만 있을 뿐이고. 그럼 난 먼저 가볼게."

그녀는 멍하니 생각에 잠긴 나의 팔을 검지손가락으로 톡 건드려서 깨우고는 손을 흔들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없어지자 이제 교실은 진짜로 텅 비었다. 그녀는 이상했다. 그녀가 건드린 자리에서부터 생각들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내 핸드폰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듣고서야 핸드폰을 가지고 자리를 떠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은 학교를 이루는 존재가 아닌 그냥 자그마한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머릿속에서 그런 말을 하는 나에게 ‘글쎄. 정답이 없으니까 우리가 마음대로 답을 만들어 놔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웃는 그녀가 떠올랐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면 될 것을, 당연한 것은 그냥 받아들이면 될 것을 그녀는 왜 그런 질문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녀가 참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몇 분 뒤, 나도 이상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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