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을 축축하게 젖게 만든 비는 뭐가 부족한지 끝없이 땅을 적시고 있다. 온다면 온다고나 말하고 올 것이지 약속도 없이 늦게 와서는 계속 자기 고집만 부리고 있다. 텅 빈 교실에 남아 언제고 그 비만 바라보는 심정은 누구라도 이해하지 못할 거다. 나도 사실 그 빗방울들 중 하나였다. 나는 자그마치 13여 년의 긴 여정을 끝내고 겨우 빈 교실 창틀 안으로 흘러내려서 다른 친구들을 구경하고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잘못한 게 대체 뭐가 있는 것인지 나는 이해를 못 하겠다. 나는 그저 다른 빗방울들한테 넓은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닌 갓 자란 새싹의 잎에 살포시 내려앉고 싶다고 한 죄밖에 없다. 모든 빗방울들의 꿈은 자신이 태어난 곳인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조금 달랐다. 나는 다른 생명들과 같이 있어보고 싶었다. 친구들의 물음에 계속 그렇게 대답했더니 친구들은 구름 위에서 은근슬쩍 건물이 있는 쪽으로 나를 밀었다. 그렇게 나는 고대하던 생물도 아니고, 넓은 바다도 아닌 딱딱한 학교 교실에 내려앉았다.
한 시간도 안 돼서 나는 증발해 버릴 것이 뻔했다.
비참한 생각들은 다 뒤로 하고 떨어지는 빗방울들이나 보기로 했다. 늦장마라 그런지 아직 여름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도 겉옷을 챙겨 입은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하나의 우산 아래에서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친구들도 있고, 아직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명의 학생도 있었다. 고등학생 오빠가 동생에게 무심히 우산을 건네주고는 먼저 걸어가는 장면도 꽤 인상적이었다.
‘인간들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구나.. 나도 누군가가 도와주었으면.’
차라리 고집을 부리지 않고 내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갔다면 이런 일은 애초부터 벌어지지 않았을 터였다.
‘나는 곧 있으면 사라지고 말 거야! 아무도 내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톡. 창문 사이로 하나의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처럼 아주 작은 물방울이었다.
“너는 왜 여기로 오게 되었어?”
내가 물었다.
“나는 그저 바다가 아닌 사막으로 가서 메마른 모래에도 물이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데 다른 물방울들은 나를 밀어버렸어.”
그 물방울이 말했다. 두둑. 또 다른 물방울이 창틀로 떨어졌다.
“너는 왜 여기로 왔어?”
내가 새로 온 물방울에게 물었다.
“나는 그저 자그마난 개울에 가서 올챙이, 개구리의 마실 물이 되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데 다른 물방울들이 나를 밀어버렸지 뭐야.”
토독, 투두둑, 타닥, 톡. 늦장마가 되어 내린 물방울들이 모두 창틀에 내려앉았다. 우리가 이곳 창틀에 온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우리의 목표는 같았다.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닌 각자의 꿈을 찾아서 가는 것. 물방울이 바다로만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대체 언제부터 생겨난 걸까? 우리는 합쳐지기로 했다. 우리가 합쳐지면 영영 증발하지 않을 것이다. 사막도 가고, 개울도 가고, 숲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밤. 우리는 하늘로 날아갔다.
다음 날 아침 그 교실 천장에서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와! 구름이 교실에 생겼어!”
늦장마가 되어 구름 속에서 내려온 우리는 구름이 되었다. 우리와 같이 구름에 있었던 친구들은 여름 장마로 내렸었고, 아직 구름에 있는 친구들은 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구름이 되었다. 꿈을 푼은 구름은 매년 가을쯤이면 그 교실로 되돌아갔다. 늦으면 좀 어떨까? 어차피 다시 구름이 되어 언젠가는 우리의 꿈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