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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ve Oct 19. 2024

오므라이스

언젠가는 그도 나처럼 계란을 박차고 나오는 상상을.



‘오므라이스’ 글자에 맞추어 입을 오므렸다 폈다 해 봤다. 혀를 굴려 보니 꽤 고급스러운 듯이 들렸다. 

“오므라이스”

볶음밥에 케첩을 넣은 다음 계란을 둘러 또다시 케첩을 뿌린 요리에게 그렇게 거창한 이름이 굳이 필요할까 싶었다.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오므라이스에게도 그렇게 거창한 이름은 필요하지 않을 듯했다. 내 앞에 있는 남자는 계란과 밥을 함께 숟가락에 올려서 입을 크게 벌리고는 그걸 다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안 먹어?”

내 앞의 남자가 오므라이스를 씹으며 말했다. 남자의 그릇에서는 달걀과 볶음밥이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참 초라해 보였다. 겉멋이 잔뜩 든 이름 밑에, 케첩을 멋지게 뿌린 계란 안에 숨은 분홍색 볶음밥이. 계란 안을 파해쳐내어 볶음밥을 한 숟가락 퍼냈다. 숟가락 위에 올려진 볶음밥에게 물었다. ‘너는 부끄럽지도 않니? 그런 멋진 이름과 있어 보이는 소스와 계란 밑에 숨어서 있지 않니?’ 볶음밥은 묵묵부답이었다. 

“얼른 먹어, 다 식는다.”

또 그 남자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한데 그는 그저 오므라이스만 먹고 있다. 

“입맛이 없어서...”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는 내 앞의 놓인 그릇을 더 앞으로 밀었다. 숟가락에 담겨있던 볶음밥 한 숟가락은 그릇 가장자리에 올려 두었다. 마치 볶음밥이 입고 있던 옷을 발가벗긴 것 같았다. 


“후...”

 남자가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고 먹는 것을 멈췄다. 그러고서 나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나보고 어쩌라는 걸까. 나는 내 시선을 그 볶음밥에 고정시켰다. 내가 이 말을 그 남자에게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때도 나를 지금처럼 빤히 쳐다볼 수 있을까? 그는 내가 오늘 이 말을 하리란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계산부터 하고.”

나는 벌떡 일어나 계산대로 갔다. 지갑에서 카드를 뽑아 들고 사장님에게 내밀었다. 사장님은 카드 잔액이 없다고 했다. 내가 다른 카드를 찾으며 내 카드를 받고 있을 때 그가 자신의 카드를 사장님께 내밀었다. 사장님은 아무 고민 없이 그의 카드로 음식을 결제했다. 밖으로 나온 그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감돌았다. 그럴 만도 하다. 

“할 말이 뭐야?..”

그가 나에게 물었다. 그는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짐작 가는 게 있는 눈치였다. 나는 오므라이스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계란 이불 밑에서 꺼낸 볶음밥이 아까는 초라해만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후련할 것 같았다. 오므라이스라는 멋진 이름이 아닌 약간 초라한 볶음밥이라도 내 이름을 걸고,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후련해 보였다. 

“그게 있잖아...”

나는 오늘만이라도 초라한 볶음밥이 되어 보기로 했다. 


“...”

 내 모든 얘기를 다 들려준 뒤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아까보다 더 아래로 가 있었고 표정에선 분노가 드러났다. 그렇지만 나는 후련했다. 두꺼운 계란을 차고 밖으로 나온 볶음밥처럼 이제야 내 온전한 존재를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는 말도 없이 뒤돌아서 자리를 떠났다. 한 명의 사람을 잃고 온전한 나를 얻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의 모든 것을 알 만큼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날 밤, 집 안이 깜깜했다.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그를 떠올렸다. 그리고 어쩌면 그도 오므라이스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봤다. 언젠가는 그도 나처럼 계란을 박차고 나오는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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