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식민주의 시대,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불렀고, 카리브해의 섬들은 '서인도 제도'라고 호칭했다. 인도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조차 제대로 몰랐던 서양인들의 무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후 이 지역은 원주민 '카리브족'의 이름을 따서 '카리브해'로 불리게 되었고, 식민지를 차지하려는 제국주의 나라들끼리의 전쟁과 해적들의 활동은 계속되었다.
오늘날 카리브해의 크고 작은 섬들은 세계적인 휴양지로 손꼽히며,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꿈의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카리브 크루즈는 대부분 미국 플로리다 반도의 마이애미 항구를 중심으로 출발하며, 항로는 보통 동카리브와 서카리브로 나뉜다.
나는 바하마, 도미니카, 버진아일랜드 등을 돌아보는 동카리브 크루즈를 예약했었다. 조세 피난처로 유명한 바하마와 버진아일랜드, 그리고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엿볼 수 있는 항구와 요새들을 기대하며 설렘에 가득 차 있었지만, 크루즈 승선을 위한 체크인 카운터에서부터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이거 받으셨어요?"라며 직원이 내민 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뒤바뀐 항해 일정표였다. 처음 우리가 예약했던 동카리브 항로는 사라지고, 멕시코의 코스타 마야와 코주멜 섬, 온두라스 로아탄 섬, 벨리즈 하베스트 키 등 멕시코 연안을 따라내려 가는 서카리브 항로로 완전히 변경된 것이다.
빈약한 정보를 찾아 뒤져가며 미리 준비했던 자료들은 무용지물이 되었으니 화가 치밀어 왜 말도 없이 항로를 바꿨냐고 따졌다., 직원은 '카리브해엔 예고 없이 허리케인이 발생하기 때문에 안전을 고려하여 코스를 바꾸는 일이 잦다'라고 설명한다. 이번에도 허리케인 피오나가 동카리브 항로를 지나 북상할 예정이라 안전상 서카리브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천재지변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최소한 사전에 고지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나와 남편은 해변이나 물놀이보다는 역사 유적지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좋아한다. 정보도 없이 새롭게 바뀐 항로가 썩 내키진 않았지만 크루즈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카리브해의 서쪽을 향해 출항했다.
•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코스타 마야(Costa Maya)
• 온두라스 로아탄(Roatán) 섬
•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코주멜(Cozumel) 섬
하지만 나중에 보니 별 기대 없이 방문했던 서카리브해의 기항지들도 제각기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적과 아름다운 자연을 보유하고 있었다.
코스타 마야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 동쪽에 위치한 카리브해 연안의 항구도시로, 아름다운 해변과 울창한 정글, 고대 마야 유적들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항구에서 차로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차초벤(Chacchoben)'은 1,80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마야 유적지다. 크루즈를 통해 연결되는 투어는 1인당 120달러였지만, 항구에서 직접 택시나 미니버스를 타면 절반 정도 가격에 다녀올 수 있다.
택시를 잡아타고 시원하게 뚫려있는 멕시코 도로를 40분쯤 달려 차초벤 유적에 도착했다. 서기 2세기 무렵 세워졌다가 스페인의 침략으로 멸망해 정글에 묻혀버린 마야 유적지다.
이곳은 그 후 주민들의 종교 행사 장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1972년 수풀에 덮인 언덕 아래에서 거대한 사원이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울창한 정글 속에 복원된 피라미드를 포함한 대규모 사원과 너른 광장, 광장으로 향하는 도로와 기반층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제법 큰 규모의 유적지다.
녹음이 짙게 드리워진 숲길을 걸으며 이 정도의 공간이면 당시의 마야 문명이 얼마나 융성했을지 상상해 본다. 이천 년의 역사가 이렇게 흔적만 남고, 살던 사람들의 자취는 간 데가 없다.
예상치 못한 일정 변경 덕분에, 오히려 제대로 된 마야 유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로아탄 섬은 온두라스 본토에서 약 60km 떨어진 섬으로, 주도인 콕센홀에 대부분의 주민이 거주한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본토와 달리, 영국 이주민이 먼저 정착했던 이 섬의 공용어는 영어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섬으로 알려져 있는 로아탄은 17세기에는 한때 5천 명 이상의 해적이 살았던 캐리비언의 해적 소굴이었다. 콕센홀이라는 지명도 해적 두목 콕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배에서 제공하는 기항지 투어는 대부분 해변 관광이나 스노클링, 지프라인 타기 위주였고, 딱히 흥미로운 활동을 찾을 수가 없었다.
주도인 콕센홀을 오전에 둘러봤지만, 한적하고 낙후된 마을 풍경만 남아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오후엔 택시를 타고 섬의 서쪽인 웨스트베이와 웨스트엔드를 가보기로 했다.
택시기사 라우라에 의하면 이 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웨스트베이인데 1인당 15불의 입장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와이파이와 시큐리티, 비치의자 사용료란다.
라우라와 함께 해변 입구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입장료를 내고 종이팔찌를 받았다.
웨스트베이는 고운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해변은 관광객으로 활기찬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해안에 입장료?'
뭔가 사기당한 느낌이 들어 사람들의 손목을 살펴봤다. 종이팔찌를 낀 사람들이 간혹 보였지만 팔찌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슬쩍 물었다.
"여기 해변에 입장료가 있니?"
"입장료? 그런 거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되묻는다.
택시기사들이 식당과 짜고 입장료 장사를 하는 거였다.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그저 해변일 뿐인 곳에서.
괘씸하긴 한데 이걸 따져? 말어?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했다. 해적의 후예가 어디 가겠어? 이렇게 크루즈 승객들 등쳐먹기나 하겠지. 우리끼리 실컷 뒷담화나 하면서.
그래도 웨스트베이 해변 자체는 정말 아름다웠다.
다음은 이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는 웨스트엔드로 향했다. 해안선을 따라 상점과 식당, 다이빙샵, 호텔들이 늘어서 있는 멋진 거리가 나왔다. 야자수가 높이 자라 그늘 아래로 걷기도 좋다.
카리브해의 정취가 살아있는 웨스트엔드 거리를 기분 좋게 걷다 보니 앞에 노란색 마을버스가 보인다. 콕센홀과 웨스트베이, 웨스트엔드를 오가는 마을버스였다. 라우라에게 물어보니 1시간마다 다닌다고 한다. 진작 알았다면 더욱 효율적으로 다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라우라는 오늘 배를 마지막으로 다음 주까지 크루즈 배가 한 대 밖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지만 우리가 보기엔 자업자득이다. 볼만한 인프라를 갖추어 방문객의 만족도를 높여야지 관광객을 등쳐먹으려고만 하는 곳을 누가 선호하겠는가.
코주멜은 멕시코인들에게도 인기 높은 휴양지로, 카리브해의 낭만이 가득한 섬이다.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페리 포트에서는 플라야 델 카르멘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바로 눈앞의 코주멜 해협을 건너는 'Fast Ferry'는 이름과 달리 약 40분이나 걸린다.
플라야 델 카르멘은 유카탄 반도 동쪽에 있는 항구도시로, 아름다운 해변과 리조트, 고고학적 유적지가 모여 있는,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항구에 발을 딛자마자 풍겨오는 분위기가 흥겹다. 서울의 명동 거리처럼 행인들로 북적북적한 보행로 5번가 (La Quinta Avenida)를 걸었다. 간판들도 멋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활기차다.
돗자리 위에 기념품을 늘어놓고 있는 여인들은 마야인 같다. 이 지역에 스페인 원정대가 도착한 게 16세기, 그 당시 마야인 인구가 만여 명이었는데 유럽인이 퍼트린 천연두로 몇십 년 만에 고작 수백 명 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항구 앞의 공원 '로스 푼다도레스(Parque Los Fundadores)'에는 거대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서는 마야 전통 의식과 댄스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플라야 델 카르멘에도 마야 유적이 있다.
시간이 많지 않아 서둘러 '플라야 델 카르멘 고고학 지구'로 향했다. 도시 한복판, 고급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 끝에 이 유적지가 있다.
이곳은 고대 마야인들이 당시 성지였던 코주멜이나 상업 항로를 따라 다른 지역으로 여행하기 위해 식량을 비축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유적지와 오래된 나무가 뒤엉켜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터의 타프롬 사원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흩어져 있는 고대 성벽 유적들 속에서 천천히 산책하고 싶었지만 배 시간에 쫓겨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코주멜로 돌아와 해 지는 거리를 걸어본다. 바다에 떠있는 유람선이 '돌아갈 내 집'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해가 지며 밝혀지는 거리의 조명에 '1810 / 2023' 숫자가 환하게 빛난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도시 코주멜, 페리를 타고 다녀온 플라야 델 카르멘과 함께 카리브해 크루즈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기항지였다.
허리케인 피오나는 제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우리의 동카리브 크루즈를 서카리브 코스로 바꾸더니 거대 태풍으로 성장하여 푸에르토리코를 강타했다,
카리브해 크루즈를 마친 후 마이애미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보다 강력한 허리케인 이언이 접근하고 있었다.
네이버 뉴스에는 “이언, 평생 본 적 없는 허리케인”이라는 헤드라인이 떴다.
“100년 만의 초강력 허리케인”
“플로리다 탬파 지역 주민 250만 명 긴급 대피”
“탬파·올란도 공항 전격 폐쇄"
한국 뉴스에서도 생생하게 중계되던 이언은 4등급 허리케인으로 격상되며, 우리가 마이애미에 머무는 내내 폭우와 강풍을 퍼부었다.
그 와중에 렌터카를 몰고 겁도 없이 떠났던 키웨스트 나들이 도중에는 천둥번개와 폭우 속에서 위험천만한 순간도 겪었다.
나중에는 호텔 방에서 뉴스만 쳐다보며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게 되기만을 기원하게 되었다.
마지막날 대부분의 항공편이 취소된 가운데, 다행히 우리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하여 허리케인 바로 위로 날아올랐다. 예상치 못한 태풍으로 여정은 꼬였지만, 그 덕에 특별한 경험과 기억을 남길 수 있었던 카리브 크루즈. 돌발 상황이 계속됐던 인상 깊었던 여행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