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 대륙 크루즈의 대표적 기항지
나는 20년 전에 남미 크루즈를 다녀왔다.
J가 그 당시 극지연구소 탐사팀과 함께 남극 대륙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함께 갈 수 없었던 나는 남미 최남단의 푼타 아레나스에서 그와 헤어져 아들과 함께 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칠레 발파라이소 항구를 출발하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항에 도착하는 코스였다.
그리고 20년 만에 다시 남극 크루즈에 올랐다. 지난번에 방문한 남미 크루즈 코스에 남극 대륙의 섬 두 개만 추가한 일정이었다.
대부분의 남미 크루즈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적 기항지 세 곳을 먼저 소개해 본다.
•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
• 남미 최남단 도시,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 남대서양의 외딴섬, 포클랜드 스탠리 마을
몬테비데오는 크루즈 출발지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가까운 곳에 있어 남미 크루즈에서는 빠지지 않는 기항지이다. 지구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와 크루즈가 아니라면 방문하기 어려운 남대서양의 외딴섬 포클랜드는 남미 크루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구 중심을 지나 반대편으로 나오면 만나는 대척점에 우루과이 몬테비데오가 있다. (정확히는 몬테비데오 앞바다가 대척점이다) 계절과 시간이 정확하게 반대인 몬테비데오는 서울에서 가장 먼 도시이기도 하다.
거대한 라플라타 강 하구를 사이에 두고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마주 보고 있는 몬테비데오는 고속 페리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서너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강대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끼어있던 현재의 우루과이 국토는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던 두 나라가 동시에 영토를 포기하기로 하면서 독립국으로 탄생했고, 아르헨티나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우루과이강의 이름을 따서 국호로 삼았다.
몬테비데오에는 1828년 독립 후 유럽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와 남미에서 가장 유럽화한 도시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다니다 보면 다른 남미 지역과 달리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고, 식당의 물가는 거의 유럽 수준이다.
먼저 시내버스 121번을 타고 라 람블라(La Rambla)로 향했다. 라 람블라는 22킬로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산책로와 해안도로가 이어지는 곳이다. 가장 인기 있는 해변 포시토스(Pocitos)를 지나면 고급스런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있다. 마치 부산의 해운대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도심으로 들어왔다.
구시가지 투어의 시작은 독립광장에서 시작된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살보 궁전(Palacio Salbo)은 매우 독특한 건축물이다.
건물을 지을 당시 건축주였던 살보 형제의 이름을 딴 살보 궁전은 27층의 마천루로, 높이가 무려 100미터에 이른다. 궁전 모양으로 이렇게 높은 건물은 처음 보았다.
고딕과 고전주의 등 온갖 양식이 혼재된 이 혼란스런 건물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말이 있다. 생긴 모양 때문에 궁전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건물은 현재 상점과 사무실, 아파트로 이용되고 있다.
도심 산책의 백미는 1726년 세워진 몬테비데오 요새의 잔해이자 옛 성채의 관문인 시타델 문(Gate of the Citadel)에서 시작된다.
독립 광장에서 대성당이 있는 헌법 광장을 지나 자발라 광장 옆까지 1km가량 이어지는 사란디 (Sarandi) 거리는 정말 멋진 보행로다.
우루과이 헌법 채택을 기념하여 조성된 헌법 광장에서는 거대한 대성당 앞에 노천 벼룩시장이 한창이다.
나는 사방이 뚫려있는 데다 완만한 언덕길로 이어지면서 작은 길을 만날 때마다 양옆으로 슬쩍슬쩍 바다가 보이는 사란디 거리가 좋았다.
다시 왔지만 완전히 새로운 곳 몬테비데오.
가까이에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아메리카 대륙 남단의 땅 파타고니아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면 마젤란 해협이 나오고 그 아래 커다란 섬이 하나 있다.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이다.
마젤란이 섬을 방문하여 항상 모닥불을 피우고 사는 부족들을 보며 '연기의 땅 - 불의 땅'이라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는 지역이다.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을 동서로 갈라 서쪽은 칠레 영토이고, 동쪽은 아르헨티나 영토인데, 아르헨 쪽 주도가 바로 지구 최남단 도시인 우수아이아다.
'세상의 끝'을 뜻하는 '핀 델 문도'(Fin del Mundo)로 불리는 우수아이아에서는 모든 이름에 '세상 끝'을 붙인다. '세상 끝 표지판'에서 시작하여 '세상 끝 우체국', '세상 끝 열차', '세상 끝 감옥 박물관' 등등. 이 '세상 끝'이라는 이름에 홀린 사람들이 끊임없이 우수아이아로 모여든다.
배가 우수아이아 항구에 들어서자 정면에서 가파른 설산이 반겨준다. 주위를 둘러보니 설산 풍경이 배를 360도로 에워싸고 있다. 좁은 비글해협 말고는 온통 산인 것이다. 등 뒤에는 안데스 산맥의 끝자락인 티에라델푸에고 산군이, 앞에는 비글 해협의 설산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낸다. 이렇게 한여름에 설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곳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설산의 높이는 천 미터에서 천오백 미터 정도라 압도적인 느낌은 없지만 바다 위에 우뚝 선 봉우리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이 지역은 수목한계선이 600m 정도라서 해발 600미터까지는 초록빛 산림이 울창하다가 선을 그은 듯 그 위에는 눈에 덮인 암석 군만 보인다.
우수아이아에서는 크루즈 배가 1박 2일 머무른다. 볼 것 많은데 다행이다 싶다.
첫날은 티에라델푸에고 국립공원에 가서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못 탔던 '세상 끝 열차'를 타보려고 했지만 사흘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해서 또 실패.
우수아이아는 죄수들이 세운 도시다. 과거에 죄수를 호송했던 열차를 타고 빙산 아래까지 7km를 달리는 세상 끝 열차는 인기 만점이다.
열차를 못 타면 그냥 걸으면 되지.
티에라델푸에고 국립공원의 트레킹 코스는 시간별로 다양하다. 2시간, 4시간 코스에, 6시간짜리 빙산 바로 아랫자락까지 가는 트레일도 있다. 우리는 라파타이아 만(Bahia Rapataia)에서 출발하여 라파타이아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2시간짜리 코스를 선택했다.
버스가 승객을 라파타이아 출발점에 내려주면 트레일을 따라 최종 목적지인 알라쿠시(Alakush) 방문 센터까지 걸어가고, 거기서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타면 된다.
출발점에서는 표지판이 잘 돼 있어 순조롭게 시작했지만 중간에 지도와 다른 부분이 있어 비교하며 찾아야 했다. 안내판은 거의 없고 방향도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종이 지도와 구글맵을 비교하며 어림잡아 방향을 잡아서 걸었다.
그래도 걷는 길은 얼마나 예쁜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설산을 보면 히말라야에 온 듯하고,
바닥이 폭신폭신한 풀길은 라트비아에서 걸었던 툰드라 습지 같고,
나무에 낀 이끼들을 보면 뉴질랜드 루아페후 산자락이 떠오른다.
오르락내리락 멀리 보이는 설산을 벗 삼아 걸어서 얼추 2시간에 맞춰 알라쿠시 방문센터에 도착했다.
돌아가는 버스 길에서 세상 끝 열차가 출발하는 간이역이 보인다. 나중에 여기 또 와서 저 기차를 타게 될 일이 생길까?
다음날은 쌍동선 - 카타마란(Catamaran)을 타고 비글 해협 섬 투어를 했다.
우수아이아에서 비글 해협을 돌아보는 투어는 크게 두 가지다. 가장 대중적이고 많이 찾는 코스는 등대를 포함해 주변 섬 세 개를 도는 3시간짜리 코스, 다른 하나는 펭귄 서식지인 마르티요 섬(Isla Martillo)까지 가서 펭귄을 가까이 볼 수 있는 6시간 코스다. 요즘이 펭귄의 번식기라 보기 좋을 때라더니 6시간 투어 표는 이미 마감이란다.
3시간 코스라도 봐야지.
배는 제일 먼저 가마우지들의 번식지인 새 섬(Isla de Pajaros)으로 갔다. 가마우지가 걷는 게 어찌 보면 펭귄처럼 뒤뚱거리지만 펭귄은 아니다.
두 번째 바다사자 섬(Isla Lobos)은 등대 바로 옆에 있었다. '세상 끝 등대'로 불리는 레이 에끌레르 등대 (Faro les Eclaireurs)는 크루즈 배에서 우수아이아로 입항할 때 본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옛 어부들의 정착지였던 카렐로 섬에 내려 비글 해협의 산군을 조망하는 전망대까지 걸어갔다.
우수아이아 항구로 돌아온 후 세상 끝 기차를 못 탄 것이 못내 아쉬워 크루즈 배로 가기 전 시내에서 미니 기차 투어를 하기로 했다.
항구 바로 앞에 서 있는 미니 기차(사실은 트레일러를 매단 기차 모양의 버스)는 세상 끝 기차를 타지 못한 사람들을 겨냥한 관광 상품이다. 뒷면에는 죄수와 간수 모형을, 벽에는 옛날 형무소와 노동 현장 사진을 붙여 죄수 호송 열차처럼 꾸며놨다.
1만 년 전부터 원주민이 살았지만 남미 여느 곳처럼 그들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19세기 중반 영국인 선교사들을 시작으로 탐험가들이 들어오며 이 땅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가 티에라델푸에고의 수도를 우수아이아로 정한 후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기반 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19세기말 아르헨티나 정부는 강력범과 정치범들을 탈출이 불가능한 이곳에 보내 노동 교화란 명목으로 필요한 시설을 만들게 했다. 척박한 땅에서 이 도시를 만들어낸 죄수들이 타고 다니던 기차가 지금은 대표적인 관광 자원이 된 것이다.
우수아이아에 머무는 이틀 내내 날씨는 천변만화했다. 비가 내리다가 이내 진눈깨비로 바뀌고, 맑아졌다 다시 구름이 잔뜩 끼며 세찬 바람까지 불어서 10분 후도 예측할 수 없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스펙터클한 기상이 세상 끝에 와 있음을 일깨워준다.
포클랜드는 현재 영국 영토다. 거리마다 유니언잭 영국 국기가 펄럭이고, 통화는 '세계에서 가장 적은 인구가 사용한다'는 포클랜드 파운드다. 영국 파운드와 동일한 비율로 여기에서도 영국 파운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영국에서 포클랜드 파운드를 쓸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고, 유엔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아르헨티나 영토라고 인정했지만 현재 이곳을 실효 지배하고 있는 영국은 주민 대다수가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실제 투표에서 99.8%가 영국 잔류를 지지)
아르헨티나는 자국 앞에 있는 섬을 되돌려 받고 싶어 1982년 포클랜드 전쟁까지 일으켰지만 영국군의 반격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가는 곳마다 볼 수 있는 구호, '말비나스는 우리 것'의 말비나스가 바로 아르헨티나인들이 포클랜드를 부르는 이름이다.
남 대서양에 홀로 동떨어진 포클랜드 섬은 크루즈 아니고서는 방문하기 어려운 섬이다. 주민은 3천 명에 불과하며 펭귄이 많이 살아서 펭귄 섬을 관광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우리는 선상 프로그램 대신 셔틀버스를 타고 젠투 펭귄을 볼 수 있다는 집시 코브라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스탠리 시내에서 4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버스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황량한 비포장길을 지나 해변과 언덕길이 있는 풀밭 앞에 내려준다.
두터운 이끼가 푹신한 산책로를 따라 황량한 듯 독특한 풍경을 즐겨본다.
두툼한 이끼가 오랫동안 쌓여 흙처럼 바뀐 부분은 삽으로 떠서 난방을 위한 주민들의 연료로 쓴다고 한다. 인구가 워낙 적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언덕길 아래 해변을 내려다보니 젠투 펭귄 수십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한가운데 키 큰 펭귄 하나가 섞여있어 자세히 보니 킹펭귄이다. 몸 한 켠에 황금빛 선이 있어 왕처럼 기품 있다.
만나기 힘든 킹펭귄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정말 운이 좋다.
고개를 돌려 언덕 풀밭을 둘러본다. 마젤란 펭귄이 눈앞에 서 있다. 언덕의 군데군데 작은 굴이 파져 있는데 그게 다 펭귄의 집이었다. 집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야무진지.
저 멀리 요크 베이 해변에 작은 펭귄들이 모여있고 사람들도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있다. 내려가는 길을 따라 가까이 다가갔다. 바다 바로 앞에서 마젤란 펭귄 열댓 마리가 풀숲 속 집에서 나오기도 하고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가기도 하며 분주하다. 펭귄 삼총사를 한 번에 다 만나다니 복 받은 날이다.
기분 좋게 시내로 들어와 스탠리 시내를 걸어서 한 바퀴 돌았다. 포클랜드 섬 주민 대다수가 모여사는 스탠리는 인구가 워낙 적어 차량 번호판도 세 자리로 충분하다.
널찍한 길에 집들은 단정하며 꾸밈이 없다. 멀고 먼 영국으로부터 여기까지 건축 자재를 싣고 오려면 얼마나 품이 많이 들까.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집 지붕은 단순한 슬레이트에 페인트칠만 겨우 했다.
심지어 교회까지도 슬레이트 지붕 마감이다.
항구 초입에 포클랜드의 대표 건물인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이 있다. 성당 앞에 커다란 고래뼈 기둥을 세워둔 것이 독특하다. 고래의 턱뼈를 보며 고래라는 동물이 얼마나 얼마나 큰지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
지난번 남미 크루즈에서는 가는 곳마다 마젤란 펭귄만 만났었는데 이번에는 젠투 펭귄과 킹펭귄까지 볼 수 있어 남극 크루즈에서 기대했던 동물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남아메리카의 끝까지 찾아간 여행은 크루즈가 있어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다. 세상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풍경들, 대자연 속의 독특한 생물군까지 그저 가슴 벅찬 날들이 계속된 남미 크루즈 기항지들은 최고의 만족을 준 곳이다.
기항지를 다녀온 후 20년 전에 썼던 일기를 읽어보니 코스도, 방문한 곳도 거의 비슷하다. 기억이 나는 곳과 처음 간 듯 새롭게 보였던 풍경이 교차했다.
여행이란 함께 하는 사람에 따라, 나이에 따라,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