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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주식 공부를 참 잘합니다

가장 완벽한 엄마이고 싶었던 날, 은밀한 비밀이 폭로되었다.

by 엄마의 왈츠
아이의 여정을 지켜보며, 나는 나의 여정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설소대 수술, 조음장애, 아빠의 부재, 느린 발달...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우리 아이는 홈스쿨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자신만의 십 대를 채워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일을 고민하고, 기도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한 엄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나도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존경합니다. 함께 힘내요!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스피커가 되어 온 세상에 떠벌려주지 않았으면 하는 비밀. 모든 엄마에게는 그런 것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잠시 몸담았던 대안학교에는 기억에 남는 생일 문화가 있었다. 생일을 맞은 아이와 부모를 교실로 초대해, 친구들과 선생님이 다 함께 축복을 건네는 따스한 시간.




아들의 아홉 번째 생일날, 나는 주머니에 아이를 향한 사랑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품고 그 자리에 섰다.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전하며 목이 메어오는 것을 애써 참았다. 내 진심이 전해졌는지, 교실은 평화롭고 감동적인 순간으로 물들었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아들 차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편지를 펼쳐 든 아들에게 모두의 시선이 다정하게 향했다.





"우리 엄마는 맛있는 걸 많이 해줘서 좋아요. 앞으로 나랑 더 신나게 놀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이는 잠시 숨을 골랐다. 나는 '사랑해요' 같은,

이 순간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감동의 한마디를 기대하며 더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들의 입에서 나온 다음 문장은 내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우리 엄마는, 주식 공부도 참 잘합니다!"





정적.





선생님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존경하는 스승님의 필사적인 평정심 유지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옆에 앉은 동생(아이의 이모)은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만이 애써 웃음을 참는 선생님과, 거의 오열하듯 웃는 이모, 그리고 동상처럼 굳어버린 나를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이 모든 아수라장의 중심에서, 아들만이 세상을 구한 영웅처럼 뿌듯한 얼굴로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속으로 나직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끄응!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저 순진무구한 자부심 앞에서 차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낮의 그 '웃픈' 장면을 되감았다. 나는 무엇이 그토록 당황스러웠을까. 나의 고군분투를 어렴풋이 아시는 선생님들 앞에서, 가장 내밀한 일기장을 들켜버린 기분이었을까. (아니, 주식이 뭐 어때서! 자본주의 사회의 꽃인데!)





문득 나라를 구한 듯 환하게 웃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 잘했지?' 하고 온몸으로 말하던 그 사랑스러운 모습. 아이는 엄마의 또 다른 멋진 점을 발표했다는 사실에 한껏 뿌듯했던 것이다.




아이의 눈에는, 엄마가 요리를 하고 책을 읽듯,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모습이 그저 대단해 보였을 테다. (실상은 미간을 찌푸린 채 구시렁거리며 책에 빨간 줄을 박박 긋는, 처절한 사투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어른의 세계에서 '주식'이라는 단어가 품은 복잡한 욕망의 뉘앙스를, 아이의 투명한 세계는 아직 알지 못했다. 자기가 아는 엄마의 모든 면을 그저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비로소 내 마음도 평온해졌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의 가장 완벽한 모습이 아닌 가장 날것의 모습을 들키고야 마는 과정이다. "우리 엄마, 오늘 화장실 물 안 내렸어요!" 같은, TPO를 무시한 팩트 폭격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은 엄마들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좀 창피하면 어떤가. 덕분에 다 같이 한번 크게 웃었으면 된 거지. 그날 밤, 창피함에 몸부림치던 나를 위로하듯 새근새근 잠든 아이 옆에서 다시 주식 책을 펼쳤다는 건, 이제 와서 하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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