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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운전해 봤니?

짝발 투혼에서 맨발 드라이브까지

by 엄마의 왈츠

아이의 여정을 지켜보며, 나는 나의 여정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설소대 수술, 조음장애, 아빠의 부재, 느린 발달...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우리 아이는 홈스쿨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일을 고민하고, 기도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한 엄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나도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존경합니다. 함께 힘내요!


아마 우리 대부분은, 맨발로 운전대를 잡아본 경험이 거의 없을 것이다. 양말의 보드라움이나 신발의 든든함 없이, 딱딱한 고무 페달에 생살을 그대로 갖다 대는 기묘한 느낌.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그 감각을 온몸으로 체험해야 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LV 1. 짝발의 투혼




모처럼 평화로웠던 수년 전 어느 날, 집에서 20분 남짓 걸리는 공원에 아이와 단둘이 손을 잡고 놀러 갔다. 에너자이저인 내 아이는 매번 새로운 놀이를 창조해 내는데, 그날의 종목은 바로 ‘신발 보물찾기’였다. (여기서 벌써 감이 오신다면, 당신은 최소 육아 레벨 5 이상의 전문가다!)




룰은 간단했다. 서로의 신발 한 짝씩을 숨겨서 먼저 찾아내기. 아이는 내 샌들 한 짝을, 나는 아이의 운동화 한 짝을 들고 미끄럼틀 뒤, 시소 밑을 오가며 숨겼다. “하하하” 웃음소리가 “헉헉헉” 가쁜 숨으로 바뀔 즈음, 나는 항복을 선언했다.




“엄마가 졌어! 우리 사랑이가 이겼네! 자, 이제 신발 찾아서 집에 가자.”




아이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콩콩 뛰어가 자신이 숨겨둔 내 신발을 찾으러 갔다. 그런데 아이가 점점 멀어진다. 공원 가장자리, 제 키보다 높은 풀숲까지... 불길한 예감에 뒤따라가니 아이가 울먹이고 있었다.





"엄마... 신발이 없어졌어... 으앙.."



아가... 네가 울면 어떡하니. 지금 울고 싶은 건 나란다. 나는 속마음을 감춘 채 억지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달랬다.




“하하하, 괜찮아! 엄만 한쪽 발로도 잘 걸을 수 있어!”




그날따라 집까지의 20분이 왜 그리도 길었는지. 피곤하다며 안아달라는 아이를 두 팔로 둘러업고, 남은 한 짝의 샌들에 의지해 절뚝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남의 시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눈칫밥 1등급’인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현관문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굳게 맹세했다.




‘내 다시는, 아이의 순수한 놀이에 나의 소중한 신발을 단 한 짝도 함부로 내어주지 않으리’





LV 2. 맨발의 드라이버




하지만 육아의 세계에서 ‘다시는’이라는 결심만큼 부질없는 것이 또 있을까. 그로부터 수년 후, 동생들과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아이는 이모, 삼촌과 노느라 신이 났고, 나는 텐트 안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바다 너머로 지는 노을은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다. 완벽한 하루였다. 비극의 그림자가 내 신발 한 짝을 삼켜버리기 전까지는.




‘어... 싸하다... 이거 괜히 익숙한 기분인데..’
텐트 앞에 나란히 벗어두었던 내 신발 중 한 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랑아, 혹시 엄마 신발 못 봤어?”
“아, 그거? 내가 갖다 줄게! 낮에 신발이 너무 뜨거워져서 엄마 발 뜨거울까 봐 내가 모래 안에 넣어서 식혀뒀어!”
“...... 응??? 이 넓은 모래사장 안에?”
“응! 내가 여기 나뭇가지로 표시해 놨어!”




물론, 아이가 표시해 놨다는 나뭇가지는 온데간데없었다. 나와 내 동생들은 무릎을 꿇고, 마치 먹이를 찾는 굶주린 개미핥기처럼 필사적으로 모래를 파내고 또 파냈지만, 결국 신발은 바다의 일부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절뚝거리며 남은 신발 한 짝을 신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리고 맨발을 액셀 페달에 올렸다. 아, 이 이상하고도 낯선 감각. 맨발에 전해지는, 딱딱하고 생소한 고무 페달의 감촉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마치 거대한 기계를 맨몸으로 상대하는 듯한 서늘한 공포심마저 들었다. (안 그래도 운전 무섭다고!!!) 그제야 깨달았다. 짝발로나마 땅을 딛고 걸어갔던 그 옛날이 훨씬 나았던 거구나.





만렙 아이템: 트렁크 속 운동화




그날 이후, 아이가 좀 더 클 때까지는 함께 어딘가 놀러 갈 땐, 없어져도 전혀 아깝지 않은, 버리기 직전의 신발을 신고 나갔다. 그리고 내 차 트렁크에는 언제든 출동 가능한 비상용 운동화 한 켤레가 든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사람들은 육아를 통해 사랑과 인내를 배운다고들 한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는 두 번의 신발 사건을 겪으며 조금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육아란 어쩌면, 거창한 사랑이나 인내가 아니라, 내 차 트렁크에 비상용 운동화 한 켤레쯤은 넣어둘 줄 아는 '작은 지혜'를 터득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 더 이상 신발보물찾기 하는 아이는 없지만 여전히 여분의 운동화는 차 안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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