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끔찍했던 훈장
아이의 여정을 지켜보며, 나는 나의 여정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설소대 수술, 조음장애, 아빠의 부재, 느린 발달...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우리 아이는 홈스쿨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일을 고민하고, 기도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한 엄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나도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존경합니다. 함께 힘내요!
"입원하셔야 합니다."
의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입원할 수 없습니다."
내 뒤에는 나만 바라보는 작은 아이가 있는데, 하나뿐인 엄마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으면 어쩌잔 말인가. 의사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주사 몇 방과 약을 더 독하게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알아서 잘 버텨보라’는 무언의 격려처럼 들렸다.
벌써 10년 전, 지금은 내 키를 따라잡은 아이가 내 품에 쏙 들어오던 어떤 여름의 일이다. 그리고 그날 의사 앞에서 했던 나의 선택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훈장 하나를 내 몸에 남겼다.
모든 것의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아이가 기적처럼 길게 낮잠을 자던 오후, 샤워를 하는데 허리께에 물이 닿는 순간, 바늘 수십 개가 동시에 살갗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스쳤다.
너무도 낯선 감각이었지만, 피곤해서 그러려니, 별일 아니겠지, 하며 무시해 버렸다. 싱글맘의 일상에서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 따위는 늘 삭제대상 1순위 었으니까.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몸은 더는 무시할 수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허리의 작은 점 같던 통증은 어느새 흉측한 수포 군단으로 변해 내 오른쪽 갈비뼈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마치 시뻘건 불도장을 꽝, 하고 찍어버린 듯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대상포진이구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날 이후의 기억은 조각나 있다. 움직일 때마다 온몸에 찌릿찌릿 전기가 흐르는 통증 때문에,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보내야 했다. 다행히 퇴근하고 온 여동생 덕분에 아이 앞에서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잠시 방으로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비로소 소리 죽여 끙끙 앓았다. 누군가 내 살가죽 위에 불을 붙여놓고, 꺼지지 않도록 밤새 부채질을 해대는 느낌. 신음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입술을 깨물며 공포스러운 밤을 홀로 견뎌냈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나를 더 무섭게 짓누른 것은 따로 있었다.
'아, 나는 아프면 끝이구나.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저 작은 아이는,
내 아이는 어떡하지?'
몸의 끔찍한 고통과 엄마로서 내 머릿속 두려움이 서로 질세라 목소리를 키웠다. 몸이 괴로우니 끔찍한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이와 단둘이 있다가 내가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하면, 저 아이가 119에 신고라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할머니 전화번호라도 알려줘야겠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단축번호 누르는 법을 가르치는 상상을 하다가, 만약 내가 이대로 없어진다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살아야 한다.
무조건, 빨리 나아야 한다.'
그때부터 처절한 사투가 시작됐다. 웃으면 면역세포가 생긴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듣고는, 불타는 허리를 붙잡고 억지로 시트콤을 틀어놓고 웃었다. (가짜 웃음에도 우리 뇌는 기꺼이 속아준다지?)
염증에 나쁘다는 밀가루를 끊고, 맛도 없는 채소를 약처럼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빨리 나아야 했다. 병원 약과 진통제를 시간 맞춰 입에 털어 넣으며, 나는 그렇게 길고 어두운 대상포진의 터널을 쌩몸으로 기어서 빠져나왔다. 너무 아파서 잊어버리고 싶었는지 회복기간도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이제 내 오른쪽 갈비뼈 아래에는 흉터가 남아있다. 가끔 옷을 갈아입다가 거울 속 흉터를 볼 때면, 나는 그날의 불타는 밤을 생각한다.
내게 이 흉터는 단순히 대상포진의 흔적이 아니다. 그때의 나는 아프지만 입원할 수도, 쓰러질 수도 없었다. 그저 내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홀로 싸워야 했던 어느 엄마에게 주어진 못생긴 훈장 같은 것이다.
썩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아니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가끔 궁금하긴 하다. 요즘 피부과 레이저 시술, 많이 저렴해졌으려나.
돌이켜보면, 비단 나 혼자만의 유난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가 열이 펄펄 끓는 와중에도 중요한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워킹맘도, 남편의 잦은 야근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홀로 저녁을 차려야 하는 엄마도,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테다.
엄마의 몸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다. 가족 모두의 안녕을 책임지는 공공재와도 같아서, 내 마음대로 아플 수도, 쉴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몸이, 때로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안식처가 되기를. 엄마의 몸에 새겨진 훈장들이 더는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