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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좀 멀리 떨어져 있어.

서운함과 대견함의 교차로에서

by 엄마의 왈츠


아이의 여정을 지켜보며, 나는 나의 여정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설소대 수술, 조음장애, 아빠의 부재, 느린 발달...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우리 아이는 홈스쿨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자신만의 십대를 채워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일을 고민하고, 기도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한 엄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나도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존경합니다. 함께 힘내요!



“엄마, 나 진짜 친구들이랑 있을 거야. 좀 멀리 떨어져 있어, 응?”




아이의 단호한 한마디가 큐브대회장의 북적임 속에서 내 귀를 찔렀다. 손에 든 물병을 꼭 쥔 채,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래,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등 뒤로는 심장이 쿵쿵 뛰며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홈스쿨링을 하며, 우리는 거의 모든 시간을 붙어 있었다. 아침에 책을 읽고,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저녁엔 산책하며 하루를 공유했다.




까꿍이 시절, 내 무릎 위에서 큐브를 어설프게 돌리던 꼬마를 떠올린다. 그때는 손이 작아서 큐브가 자꾸 떨어졌는데, 나는 웃으며 다시 쥐여줬다.




그런데 수년 전 그날, 대회장에선 달랐다. 아이는 나 없이도 괜찮았다. 친구들과 웃으며 큐브를 돌리고, 알아서 물을 챙기고, 심판과 당당히 대화했다. 나는 멀찍이 떨어진 관중석에 앉아 그런 아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형광등 아래, 아이들 웃음과 큐브의 찰칵찰칵 소리가 뒤섞인 대회장.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한 아이는 땀 젖은 이마로 큐브를 춤추듯 돌렸다. 혼자 연습하던 수많은 밤들을 떠올리며, 그 작은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나는 자신감을 보았다.





문득 깨달았다. 내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던 그 작은 아이는 이제 없다. 대신,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기만의 세상을 쌓아 올리는 십 대 소년이 그 자리에 있었다. 가슴 한쪽이 이유 없이 욱신거렸다.




솔직히, 서운했다. 늘 곁에서 아이의 모든 순간을 지켜보던 내가, 갑자기 밀려난 기분이었다. 그땐 타인의 마음에 대해 그토록 골몰하면서도, 정작 내 아이가 한 뼘 자라나는 순간의 내 마음 하나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셈이다. ‘엄마 없이도 괜찮아?’라는 질문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꾹 삼켰다.




그런데 그 서운함 속에서 또 다른 감정이 스며들었다. 파이널 라운드에서 큐브를 돌리던 아이의 집중하는 눈빛,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나누는 웃음. 그건 내가 지켜주던 어린아이의 웃음이 아니라,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청소년의 웃음이었다. 나는 문득, 감사함에 젖었다.





‘이렇게 멋지게 자라고 있었구나. 내가 손을 놓아도, 아니, 놓아주어야만 더 크게 날아갈 수 있겠구나.’




오래전 홈스쿨링 첫날, 나는 아이에게 거의 모든 답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날 대회장에서, 아이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 나를 믿고 놓아줄 수 있어?’




나는 아직 그 답을 완벽히 자신하지 못한다. 다만, 대회장 한쪽에서 아이를 바라보던 그 순간의 땀과 웃음, 내 마음에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수년 전 허를 찔렸던 그날 이후부터 나는 대회장에서 멀찍이 아이를 지켜만 본다. 아이의 독립은 이렇게, 작은 순간들로 내게 다가올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서툴게 당황하고, 아파하며, 또 조금씩 기뻐하겠지.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훌쩍 커버려 나를 돌아보며 미소 짓는 날,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마워, 네가 나를 더 큰 사랑으로 이끌어줬어.”




(물론 요즘엔 나도 큐브 대회에 도전하느라, 내 멘탈 챙기기 바빠서 아이를 쳐다볼 시간도 별로 없긴 하지만.)



나의 큐브 선생님, 아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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