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아들이 집에 있을 땐, 거실에서 요가하지 말 것
아이의 여정을 지켜보며, 나는 나의 여정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설소대 수술, 조음장애, 아빠의 부재, 느린 발달...그 모든 시간을 지나 우리 아이는 홈스쿨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일을 고민하고, 기도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한 엄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나도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존경합니다. 함께 힘내요!
마음이 힘들 땐 몸을 먼저 챙기라는 어느 책의 문장에 홀려 요가를 시작했다. 사실은 건강보다 예쁜 요가복에 먼저 홀렸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이를 혼자 두고 요가원을 다닐 처지는 못 됐기에, 나의 수련원은 자연스레 거실 요가 매트 위가 되었다.
평온해야 할 수련의 시간. 하지만 십 대 아들과 함께 사는 엄마에게 평온이란 신기루 같은 단어였다. 방문 너머 아들은 언제부턴가 사춘기의 정수를 담은 레퍼토리를 읊어댔다.
“나중에 할 거야. 할 거라고~”
“하고 있다니까~~!!!!”
“아, 내가 알아서 할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차오르는 혈압을 다스리는 것이 나에겐 요가의 주된 목표였다.
그날도 그랬다. 무언가 만들다 잘 안되는지 방 안에서 불같은 짜증을 내는 아들을 뒤로하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잔소리를 참은 나를 칭찬하며 거실에 요가 매트를 펴고 유튜브를 켰다.
화면 속 강사님은 천사 같은 목소리로 “나마스테”를 속삭였다. 미니멀한 스튜디오, 잔잔한 배경 음악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평화 그 자체였다.
나는 애써 매트 뒤편의 현실을 외면했다. 소파에 널브러진 옷가지, 아들이 실험하다 만 탁구공들, 정체 모를 큐브 조각들... 나는 오직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화면에만 집중하려 애썼다.
“자, 조용히 나의 호흡에 집중해 볼까요?”
강사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순간, 아들 방에서 더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쫌! 진짜! 왜 이렇게
안 끼워지는 거야!!!!!!”
그 한마디에 내 안의 모든 평화가 깨졌다. '집중하자, 허리에 집중하자!' 주문을 외울수록 혈압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저눔의 ㅅ.... 오늘 저녁반찬은 김치 하나다....' 속으로 온갖 말을 삼키며 우아하게 허리를 꺾는 순간이었다. (난 정말 무리하지 않았다.)
“우두둑.”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허리에서 울렸고, 나는 비명과 함께 그대로 매트 위로 쓰러졌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은 명쾌했다.
“원래 디스크가 있으시네요. 아프셨을 텐데 무리하셨군요. 요가는 절대 안 됩니다. 통증 줄어들면 차라리 조깅을 하세요. 심해지지 않게 치료 시작합시다”
아, 나의 요가. 나의 예쁜 요가복들. 비록 초보였지만 언젠가 낙타 자세를 우아하게 해내리라 다짐했는데. 나의 요가 수련은 그렇게 강제 종료되었다.
몇 주가 지나 조금 괜찮아졌을 때, 나는 결국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너 때문에 엄마 허리 다친 것도 있으니(?) 우리 같이 달리자!”
아들은 '이게 왜 내 탓이라는 거지?' 하는 황당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반짝이는 새 러닝화를 보더니 못 이기는 척 신발끈을 매기 시작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십 대 아들과 함께 사는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우아한 요가복과 낙타 자세가 아니었다. 아들이 어질러 놓은 물건을 밟고도 넘어지지 않을 코어 근육과, 녀석의 방문이 닫혔을 때 즉시 모든 걸 잊어버리는 정신 승리뿐이었다는 것을.
"아들! 내년 봄에 5km 마라톤부터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