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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원짜리 영어과외

아들아, 이 질문은 얼마니

by 엄마의 왈츠
아이의 여정을 지켜보며, 나는 나의 여정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설소대 수술, 조음장애, 아빠의 부재, 느린 발달...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아이는 홈스쿨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자신만의 십 대를 채워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일을 고민하고, 기도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한 엄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나도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존경합니다. 함께 힘내요!



세상에서 가장 냉정한 영어 선생님의 이름은 ‘스픽’이다. 밤늦도록 같은 문장을 백 번쯤 반복해도 지치지 않고, 정답이 아니면 칼같이 ‘땡!’ 소리를 내며 될 때까지 되뇌게 만들 뿐이다.



이 지독한 영어 앱을 내 돈 주고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중학생이 된 아들 녀석 때문이었다.



녀석의 영어는 나와 시작부터 달랐다. 우리 집 책장엔 먼지 쌓인 문법책, 문제집 한 권 없다. 그저 유튜브 속 미국 큐브 챔피언들의 영상이 매일같이 흘러나올 뿐. 녀석은 영어를 공부한 게 아니라, 그냥 통째로 삼켜버렸다.



​모든 것은 큐브 때문이었다. 화면 너머 현란한 손기술과 영어로 된 공식을 통째로 익혀, 세계적인 선수들의 가르침을 직접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미국에 가 그곳의 친구들과 큐브 대회를 함께하고 싶다는 꿈. 녀석에게 영어는 꿈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국내의 한 큐브 대회장에서 찾아왔다. 대회에 참가한 원어민 친구에게 녀석이 스스럼없이 다가가 영어로 대회 규칙을 설명해 주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두 아이가 막힘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벅찬 자랑스러움과 함께 낯선 소외감이 밀려왔다. 아들의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나만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 참, 떨떠름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내 인생 마지막 영어 도전이 시작됐다.



아이는 기꺼이 나의 스승이 되어주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영어 문장 하나를 물어볼 때마다 녀석의 용돈 통장에는 300원씩 적립되는, 눈물겨운 시스템이었다. 열심히 배운 표현을 자신 있게 말하자, 어김없이 날카로운 지적이 날아왔다.



​“엄마, 원어민은 그런 표현 잘 쓰지 않아.”



​아들의 훈수를 들어가며, 나는 밤마다 스마트폰을 붙들고 ‘땡!’ 소리와 싸운다. 수십 번을 포기했던 영어인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포기가 안 된다. 어쩌면 나는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이의 꿈 옆에 나란히 서는 법, 녀석의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일지도. 오늘도 나는 300원을 내고 아들에게 한 문장을 묻는다.



​최근 녀석은 무슨 욕심이 생겼는지 스페인어 책까지 뒤적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큐브 선수가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하는 모습이 멋져 보인단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까꿍이 시절, 더디게만 가던 시간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훌쩍 자라 저만치 앞서가는 아이는, 이제 하나둘씩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티격태격 우리만의 방식으로 근사한 꿈을 함께 꾸고 있다. 이번엔 꼭 포기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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