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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머리 인간 Apr 20. 2023

5회 : 좀비모드


‘ 낑낑낑  ’


 새벽마다 내 귀에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그도 아니면 발소리를 내며 거실을 하염없이 배회한다. 밥도 주고, 물도 주었건만 당최 이유를 알 길이 없다. 눈을 비비며 거실을 나와 본다. 딱히 똥을 싼 것도 아니다. 무엇이 불편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답답하다. 나는 오늘 또 잠을 설친다. 많게는 하룻밤에 수십 번 적게는 몇 번씩. 매일 그런 것은 아니나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런 날은 아침에 일어나도 일어난 것이 아니다. 정신은 내 머리 위에서 두둥실 떠다닌다. 그냥 눈만 뜨고 있을 뿐이다. 눈만 멀뚱히 뜬 채로 대화를 하고 사람을 만난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좀비 모드다. 그녀는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약간의 흥분 상태로 집을 배회한다. 혼자만의 시간에 빠진다. 인지기능 장애(치매) 증상 중 하나로 그녀 역시 다른 의미로 좀비 모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나인데 내가 아닌 것이다.


 


 잠을 못 자니 체력적으로도 일상생활에도 내게 한계가 왔다. 치매 약을 먹는다고 해서 확연한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좀 더 나은 효과가 있는 새로운 약이 필요했다. 이번 주부터 약을 교체했다. 그전 치매 약은 물에 타도, 간식과 함께 먹여도, 밥에 섞어서 줘도 용케도 알아내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겨우 겨우 억지로 먹이는 분위기였다. 다행히 이번 치매 약은 간식인 줄 알고 냅다 날름하고 받아먹는다. 아주 아주 천만다행이다.  


 


 우리 '별'이 강아지는 지금보다 어렸을 때 대소변을 배변판 위에 보면 내가 *구멍을 닦아주고 칭찬했다. 그래서 볼 일을 보고 나면 항상 칭찬해 달라고, 닦아달라고 쫄랑쫄랑 거리며 신나게 달려오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할무이 강아지인 데다 치매 증상이 있어 괄약근 힘 조절이 여의치 않다. 잠깐의 외부 냄새만으로도 항문이 금세 열린다. 그렇다 보니 배변 실수가 잦아졌다. 정신과 몸이 따로 노니 힘들어한다. 그래서인지 외출을 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 짧은 시간 동안 불안해하고 흥분이 점점 높아지다 나중에는 괴성을 지른다.


‘ 똥이 나온다고. 언니 옷이나 엘리베이터 안에 떨어질 것 같다고. 자존심이 있다고. 견권(犬權)을 지키며 살고 싶다고. ’ 그렇게 소리치는 것 같다.


 나름대로 배변 패드를 포대기 삼아 안고 가면 용케 그런 날은 아무 일이 없다. 그러다 준비를 못한 날이면 어김없이 일이 터지고 만다. 내 품 안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살포시 두 덩이. 애견 가방 안에 수줍게 한 덩이. 차 안에 덩그러니 세 덩이. 일을 치르고 난 뒤 왠지 멋쩍어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일까. 아무튼 급격히 순해지는 느낌이다. 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소싯적 페로몬을 뿜뿜 발산할 때처럼 나에게 마구마구 영역표시 중이시다.


‘ 견권과 인권을 같이 지켜보자~!! 




견권(犬權) : 개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 / 출처 : 흰 털짐승 단짝 검은 머리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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