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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머리 인간 Apr 20. 2023

3회 :  내 아침은 콩자반 세 알

 마치 낯선 곳에 혼자 있는 꿈을 꾸기라도 하듯 아님 기면증 환자처럼 그녀가 밤중에 서성이기 시작했다. 잠결에 깨서 가만히 지켜보면 한 곳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그녀다. 가끔씩 허공에 고함도 지른다. 처음에는 낯선 그녀의 모습에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본 것처럼 살짝 무서웠다. 찾아오지 말기를 희망했던 그것이 기어코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문고리를 부여잡고 버티다 어쩔 수 없이 빼꼼히 밖을 본 순간 ‘인지기능 장애(치매)’와 눈이 마주쳤다. 어느 결에  문 틈으로 손가락이 하나 둘 꿈틀꿈틀 들어오더니  금세 내 집을 성큼성큼 활보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몸집은 더 거대해져 갔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의 슬개골 탈구 예방차원에서 소파와 침대를 없애 버렸다. 잠자리 분리를 하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그 덕분에 알콩 달콩 그녀와 나란히 한 이불을 덮고 잔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내가 그녀를 피해 구겨져서 잠을 청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또 치매로 인한 배변 실수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괄약근 힘 조절이 예전만큼 못하다. 그렇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뜰 때 종종 내 잠자리에 콩자반 세 알이 또글 또글하고 굴러다닌다.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똥 냄새에 기상하니 가끔 짜증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 *구멍이 열릴 만큼 편하게 잤구나~’ 싶어 내심 흐뭇하기도 하다. 밤에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완전히 늘어지게 잘 때가 있다. 그런 다음 날은 어김없이 내 아침 반찬은 콩자반 세 알이다.


 


 배변 판 위에서 볼 일을 볼 때 기네스북에 오를 기세로 거의 100바퀴를 돌아도 끄덕 없을 뿐더러 완벽한 조준까지 자랑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제 배변 판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대형 배변판을 사용해도 불편한 모양이다. 뒷다리에 힘이 빠져 배변판에서 돌다가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지기도 하고 조준의 정확도가 떨어져 가장자리로 소변이 질질 흐를 때도 있다. 배변판과 더불어 한 평 정도 큼지막하게 배변 패드를 깔아놓는다. 우리 집 거실이 그녀의 화장실로 변모 중이다.


‘ 그래도 배변패드 위에 싸려고 노력했어. 노력했는데 밖으로 샌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아주 잘했어. 똑똑해. ’


 


 어쩌다 보니 똥, 오줌 얘기만 주야장천 하고 있다.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똥 애기를 좀 더 해보겠다. 하하! 그녀가 똥이라도 눌라치면 나도 발 빠르게 준비자세를 취한다. 행여나 조준 실수로 불시착할 수 있는 똥을 온몸을 던져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눈치 없이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는 온 거실이 똥 바닥이 될 때가 종종 있어서다. 일이 터지고 난 후에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다. 멘붕 상태로 바닥을 닦고, 또 닦고, 광이 나도록 닦고, 내 얼굴이 비치도록 닦고, 닦고, 또 닦고 나면 땀이 삐질 삐질 난다. 금세 눈도 퀭해진다. 그런 다음은 멍 때리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물론 강아지용 기저귀도 있다. 하지만 사람보다 강아지 피부가 약하기에 보관 신세다. 예전에는 대소변을 보면 닦아 달라고 쪼르르 달려오던 정말 깔끔쟁이 강아지였다. 지금은 우리 집이라고 확인사살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눈 발자국 대신 똥 발자국을 깊게 새겨 놓는다.


허허허허. 그저 웃지요. ’



 치매를 앓고 난 후 시간이 좀 지나서야 약을 먹이기 시작했다. 인정하기 싫었나 보다.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을 거라지만 유지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꾸준히 먹이고 있다. 복용 기간이 짧아서인지 아무튼 아직 효과는 잘 모르겠다. 몸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데 괜히 늦게 먹인 거 같아 후회도 된다.


 


 어느 날부터 ‘장문별(Jang moonstar)’양의 시간은 역주행중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도 내가 그녀 마음속의 1순위라는 점이다. 그리고 날 알아봐 준다는 사실이 기특할 뿐이다.


‘ 괜찮아. 별아~그냥 내 옆에 있어줘. 걱정도 하지 마. 내가 널 알아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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