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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머리 인간 Apr 20. 2023

2회 : 반사람

 한창이던 어렸을 적 그녀는 나를 끌고 다닐 만큼 체력 만땅, 관절 팔팔하던 시절이 있었다. 또 얼마나 도도한지 그녀는 누군가에게 다가서는 법이 없었다. 작지만 옹골찬 발은 총총총 하늘을 찌를 듯 자신감 넘치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거리를 활보했다. 그저 길을 거닐다 똥꼬 페로몬을 한 방씩 터트릴 뿐이었다. 시크함 속에 감춰진 은근한 추파도 잘 던졌다. 그러면 어느새 동네 개들이 눈에 동그래져서 가열하게 달려오기 일쑤였다. 마력(馬力)을 지닌 마력(魔力)을 가진 흰 털짐승이었다.


 ‘  팜므파탈 강아지 같으니라고. ’


 


 하지만 세월에 장사 없다고 이제는 산책을 나가면 그녀와 나의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그녀는 나를 놓칠세라 부랴부랴 나는 그녀가 밟힐까 봐 조심조심. 소싯적에는 세상의 온갖 냄새를 다 삼킬 듯 눈 코 뜰새 없었는데… 이제는 세상에 통달(通達)이라도 한 듯 도통 관심이 없다. 하긴 지천명(知天命)은 지난 지 이미 오래고 이젠 상수(上壽)이니 그럴 법도 하겠다.


 


 내 걸음으로 5분 거리인 공원 코스가 42.195km 마라톤으로 변신한다. 냄새 자극에도 둔탁해지고 발걸음도 함흥차사(咸興差使)다. 그녀는 몰티즈 종의 특징 중 하나인 슬개골 탈구가 진행 중이다. 17년 동안 잘 버텨줬는데 요새 점점 말썽을 부린다. 슬개골이 영 제 집을 못 찾고 가출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그것이 잠시 외출 중일 땐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진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젊었을 때처럼 점프를 뛸 때는 이를 어찌해야 하나 난감하고 마음이 참 짠하다.



수의사 왈 :  ‘강아지 100세 정도 되면 관절염이 없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근육이 줄어들면 안 되니까 산책은 짧게라도 꼭 시키세요~.’



 걸음걸이가 불편하다고 수술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연세가 되셨다. 짧게라도 꾸준히, 열심히, 산책시키라는 수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오늘도 똥 봉투를 챙겨 들고 룰루랄라 집을 나선다. 그렇게 동네 산책을 나가면 어디선가 시선이 꽂힌다. 누군가 대뜸


 어머 애가 어디 많이 아픈가~ 얘가 힘들어하는데 아휴.. 나도 강아지를 키워봐서 하는 말인데 블라~ 블라~ 똥똥똥


 마치 보호자인 나보다 그녀를 더 잘 안다는 듯, 그녀를 오랫동안 검진해온 수의사보다 더 전문가인 듯 거침없는 평가와 조언이 서슴없이 날아든다.


‘ 본인 다크 서클이나 관리하지. 야구 선수인 줄.  ’


 뭐 나름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겠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배려심 없이 던지는 입방아에 내 마음도 그녀 마음도 잘근잘근 다져진다. 참 째려보고 싶은 말들이다.



 강아지 견생 10년 차쯤 되면 반 사람 된다는 말에 아마 다들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아니 체감적으로는 그보다 더 빠른 듯하다.


‘ 웬만한 사람 말 다 알아듣는데 면전에다 썩을.. 아직도 앞날이 창창하는구먼. 얼른 귀 막아 ~’


 달갑지 않은 참견쟁이들에게 그녀의 건강관리, 멘털 관리, 쏟아 부는 사랑이 가볍게 치부되는 거 같아 기분이 쪼매 거시기해진다.


‘ 우리 멍소주나 땡기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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