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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머리 인간 Apr 21. 2023

6회 : 노견학개론

뭐~ 거창하게 개론까지는 아니고( 음… 나중에 짬밥이 더 되면 써볼까 싶으다. ) 내가 ‘문별’양과 지내면서 느꼈던 점들을 간략하게 몇 자 적어볼까 한다.  



 1. 최우수 연기상


 ‘ 어느 연기 학원 다니셨쌔여~? ‘


 다들 속지 마시라. 연기를 느~~ 므 잘한다. 그중 자는 척 연기는 압권이다. 실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 감시당하는 기분이 혹 들어도 그냥 모른 척하면 된다. 지금 연기 연습 중인 거니까. 그리고 당신과 장난감 놀이를 할 때 재미있는 척할 수도 있다. 왜? 그대가 재미있어하는 것 같으니까.!! 일종의 배려심 플러스 연기력 그 어딘가라고 해야 할까...?



2. 파파고는 무용지물(無用之物)


 뒤돌아 있는 의기소침한 어깨, 얼굴을 콕 박고 똬리를 틀고 있는 작은 몸통, 나를 쳐다보는 눈빛, 헬리콥터처럼 도는 꼬리, 사뿐한 발걸음, 이제는 가끔씩 볼 수 있지만 갑빠를 부풀린 용맹한 자태, 날름거리는 혀, 하품.


 필터가 필요가 없는 청정수다. 온전한 기분과 마음이 다 들여다 보인다. 번역기는 필요 없다. 머리 위에 말풍선이 떠 있다. 마음이 너무 깨끗하고 순수함 그 자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을 한다.



3. 배려심


 시크함의 결정체, 밀당의 고수, 심리의 달인


 강아지가 사료를 내 앞에다 무심하게 툭 던져 놓을 때가 있다. 그 중요하고 소중한 밥을 나눠주는 것이다. 마음을 다해 챙겨주는 것이다. 그것이 용돈의 개념이건 식사의 개념이건 보살핌의 개념이건 측은지심(惻隱之心)의 개념이건 상관없다. 나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증거니까.


 갑자기 든 생각이다.


음… 서… 설마.. 내가 불쌍해서…?? ‘



4. 수준급 원어견 욕실력


 인간들이여! 속지 마라. 순수한 얼굴에 감춰진 충격적 진실을.


 사정없이 허벌나게 잘한다. ‘ 설마 우리 애는 아니겠지. ‘ 이런 생각은 버려라! 그럴수록 배신감이 더 커질 수 있으니까. 그냥 당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길 바란다. 가끔씩 먼 산을 바라보길 추천하고 싶다.



5. 간헐적 단식


‘ 애미야~ 입이 까끌까끌 하구나. ‘


 밥을 입에 안 댄다고 걱정 마라. 배고플 때 되면 먹어라 먹어라 빌지 않아도 알아서 챱챱 잘 먹는다. 단식하면 간식이 나오니까. 맛난 것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학습된 결과다. 나보다 하이레벨의 인내심 소유자다. 그래서 그럴 수 있는 거다. 단지 다이어트 기간인 거다. ( 그래도 당이 너무 떨어져 혹시 힘들어하는지 지켜는 봐야 한다. )



6. 보디가드 필수


 시각, 청각, 후각 능력이 감소한다. 눈부신 햇살에도 깜짝깜짝 놀랄 수 있다. 벌레 또는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 순식간에 다가오는 자전거, 빠르게 지나가는 전동 킥보드, 갑자기 절친인 척하는 다른 강아지 등 등 화들짝 놀랄 수 있으니 항상 주위를 경계하고 살펴야 한다.



7. 아기 할무니 강아지


 욕 스킬은 화려함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이미 땡깡은 만렙을 찍었고 기네스북에 도전도 가능한 수준이다. 또 고집은 쇠심줄이다. 무언가에 트라우마가 생긴 후 그런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많이 흥분한다. 특히 병원. 그렇다고 너무 겁먹지는 말길 바란다. 조금 더 어려지는 것뿐이다. 어차피 내 눈엔 항상 새끼 강아지니까. ( 쯥. 이렇게 쓰고 보니 ‘별’이가 조폭견 이미지가 생기는 것 같아 노파심에 한 자 적겠다. 살짝 MSG를 첨가했으니 참고 요망이오~ )



8. 똥끄럼틀


 똥을 싼 후 뒤처리를 하는 모양새를 이른다. 똥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 듯 바닥에 똥 지도를 그린다. 이노무시키가 지 동구녕만 깨끗하면 완전범죄인 줄 안다. 또 나이가 들거나 치매로 항문에 힘이 없어져 배변 실수가 많아진다. 청소하다가 나도 모르게 똥을 만질 수도 문댈 수도 밟을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9. 온 세상


 나이가 들수록 세상과 관계의 폭이 더 좁아진다. 걸음걸이가 느려지는 만큼 체력이 떨어지는 만큼 활동 영역이 줄어들고 주위에 대한 관심도 낮아진다. 하지만 하나 변치 않는 것이 있다. 보호자에 대한 신뢰와 진심은 그대로다. 날이 갈수록 그 아이의 세계에서 더 많은 부분을 보호자가 차지할 수 있다. 항상 외롭지 않게 슬프지 않게 잘 지켜보고 기분을 파악하고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10. 일상


 강아지와 함께 한다는 것은 평생 밥을 차려주고 배변을 치우고 씻기고 이를 닦이고 내가 감기에 걸려도 산책을 시켜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교육도 시켜야 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여행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균형 잡힌 음식과 영양제를 먹여야 한다. 싫어하는 약도 억지로 먹여야 할 때도 있다. 다른 매너 없는 보호자 또는 가족을 버리거나 학대하는 몇몇의 사람들 때문에 나도 덩달아 모르는 사람들에게 눈치 아닌 눈치를 받을 수도 있다. 또 식사 중에 똥을 치워야 할 수도 있고 병원도 꾸준히 다녀야 하며 금전적인 부분도 무시 못한다. 큰 병에 걸려 가족 전부가 우울함과 슬픔에 빠져 살 수도 있다. 내가 눈, 발, 귀 역할을 대신해주어야 할 수도 있다.



 이 원고는 2023년 올해 100세 찍으신 ‘장문별’양의 지도하에 많은 욕과 사랑을 지원받고 제작된 개인적 의견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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