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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머리 인간 May 05. 2023

7회 : 上壽(상수) 값 8할

 올 해로 17살 된 몰티즈 출신 할무니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17세 정도면 사람 나이로 약 100세 정도 된다고 한다. 소싯적엔 3킬로인 그녀가 성인 남성을 끌고 다닐 만큼 체력이 넘치고, 관절이 튼튼하던 때가 있었다. 엄청난 마력(馬力)이 아닌 견력(犬力)의 소유자였다. 또 먹성은 어떻게요. 닭 한 마리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앉은자리에서 해치우기 일쑤였다. 닭 가슴살과 앞다리 살도 구분해서 입맛대로 먹는 아이였다. 먹고 토해도 또 달라고 눈망울을 초롱초롱거릴 정도로 음식에 대한 집념과 욕구가 넘쳐났었다. 한 마디로 ‘다 씹어먹어 줄게’ 마인드였다. 우리 가족은 그녀가 지천명(知天命)을 넘어서 상수(上壽)에 이르는 나이가 된 데에는 음식에 대한 열정과 욕심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깃집에 외식을 다녀온 후 우리가 집에 들어가기라도 할라치면 현관문 앞에서 몸수색이 기본이었다. 마치 자기 빼놓고 혼자만 먹고 왔냐며 타박이라도 하듯 아님 바람이라도 피우고 와서 혼나는 듯 감시당하는 일이 일상 다반사였다. 그 당시엔 후각도 뛰어나서 감출 수도 숨길 수도 없었다. 콧소리를 심하게 내며 작은 주머니까지 수색에 열중했다. 한 마디로 가족 한 명 한 명 탈탈 털렸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취조를 당하기 전에 아니면 그녀의 코가 빠질 것이 걱정이 되어 서둘러 목욕을 하곤 했다. 한 번씩 왕 갈빗대를 비닐에 담아 오는 날이면 그날은 갈빗대 제삿날이었다. 뼛가루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침만 안 뱉었을 뿐이지 개 껌 좀 씹던 시절이었다.


 


외식은 먹을 때 눈치라도 안 보고 먹지. 집에서 시켜 먹을 땐 내돈내산임에도 불구하고 눈칫밥 먹기 일쑤였다. 집에 자장면 배달을 시키는 날이면 그릇을 들여놓기 무섭게 어딘가에서 가열하게 달려오는 흰털짐승이 있다. 복도 끝에는 늘 슬라이딩으로 마무리된다.


‘ 세이프~!! 그래 너 야구했으면 연봉 꽤 높았겠다~. ’  


 뽀얀 면발과 윤기 나는 소스를 골고루 비빈다. 나와 그녀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목구멍에서는 침이 꼴깍 넘어간다. 하지만 단무지를 하나 집으려 손을 뻗으려고 하면, 양파라도 집으려고 하면, 이제 면발이라도 올리려고 하면.. 그 아련하고 간절한 눈빛을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다. 자장면 안 준다고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밥상머리 교육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라 냉정하게 식사에만 집중한다. 물론 가족 중에는 내 교육방식과 다른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내 잔소리는 이미 귓등을 통해 흘러내려 간지 오래.. 가족 중 배신자 한 명이 그녀의 눈빛에 유혹당해 한 가닥씩 면발을 주기 시작한다. 그 순간 민첩성과 순발력은 국가대표 급이다. 어느 순간 면발을 낚아채 츄릅 츄릅 삼켜버리곤 한다.


 


세상의 온갖 냄새마저 다 먹어버릴 기세였는데 지금은 걸음도 느려지고 외부 반응에도 민감성이 많이 떨어져 버렸다. 몰티즈 종의 고질병 중 하나인 심장병을 앓고 있어 이제는 하루에 두 번 쓰디쓴 약을 먹는다. 갈빗대와 자장면 대신 각종 영양제와 약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비록 사람 음식을 먹던 일이 불과 10여 년 전 이야기지만 전래동화 같고 고전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음식에 대한 욕구가 있어서 잘 먹는 편이라는 것이다. 비록 처방식 사료라 투정 부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 맛있게 먹어준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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