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무디다
또 봄이 왔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였다.
그 어떤 특별한 다짐도, 약속도 없었지만, 그렇게 그냥… 아직까지 함께였다.
나는 그 기억들을 품은 채 견뎠고,
우리는 마침내 10평짜리 집으로 함께 이사했다.
전보다 넓지만, 동시에 좁은 이 10평짜리 공간은
우리가 더 가까워졌다는 증거인지,
서로에게 더 익숙해졌다는 증거인지 모를 일이다.
이사 후로, 우리는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의심이 많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확인하고,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려 든다.
이 만남이 과연 맞는 걸까.
이 지경까지 온 내가 과연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 걸까.
따듯해야 할 계절 속에서도 , 나는 어딘가 얼어 있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그 모든 게 아무래도 좋아진다.
또 그래도 녹고 있나 보다.
함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되는 순간들이 분명 존재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 관계는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아니, 어쩌면 나는… 무뎌진 걸까?
아니, 아니다.
사실은 너무도 사랑해서 그렇다.
슬프고, 아프고, 배신당한 그 기억들이 마음을 닫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그 감정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무딘 게 아니라, 조심스러운 거다.
무뎌진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저 사랑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