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일상의 균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3)> 리뷰

by 더 레터박스

'표리부동' 네 글자를 인정하기까지

"당신의 하루는 어떤 기쁨으로 채워져 있나요?"

현대인들은 가면을 쓰고 산다. 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때의 '나'와,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나',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나'- 이 모든 자아는 단절된 채 흩어져 있다. 현대인들이 이러한 방식을 택하여 살아가는 이유는, 사회의 압력 속에 부서지고 떨어져 나간 자아의 파편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깨지고 다쳐가며 얻은 수 많은 상처들 속에서 저 멀리 떠오르는 햇빛은 사람들의 상흔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아를 비춘다. 수 없이 가로막히고 난반사되는 편린들을 조명한 그 빛은 마치 녹음(綠陰)처럼 희망의 빛과 그림자를 잉태한다. <퍼펙트 데이즈>는 파편화된 사회 속 현대인들의 피상적인 상처를 위로하는 빛이 그들의 동공에 반사되며, 작디작은 기쁨을 비추는 희망의 햇살과 그것으로 인해 태어나는 인류애의 그림자를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의 일상과 그 속의 행복을 그저 단순히 긍정하지는 않는다. 이질적인 프레임과 그것이 지니는 특출난 '모호성'. 그리고 프레임 속 의도적으로 반복되는 일로부터 기인한- 어찌 보면 차가울 정도로 캐릭터의 감정으로부터 멀어진- 카메라는 내적 공명의 부재를 부르짖으나, 후반부로 치닫을 수록 더욱 인물과 가까워지며 역설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모한 캐릭터의 인간적인 내면을 관조한다. 즉, 이 작품은 '표리부동(表裏不同)'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피상적인 행복을 인정한다. 또한 긍정이 채우지 못한 남겨진 하루 속 감정의 간극인 불안과 슬픔 또한 일상의 일부분이었음을 말하려고 하며, 그 속에 숨은 내면의 나를 발견한다. 그것이야말로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담는 카메라의 조도(illumination)와 색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며, 진정한 '퍼펙트 데이즈'를 마주하고 영위할 수 있음에 필수적인 요소이니까.



시놉시스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뜨며 분재를 가꾸고, 카세트 테이프의 올드 팝을 들으며 출근하며 단골 식당에서 술 한잔을 하는 등 반복되지만 그 속에서 녹음 사이의 햇빛을 필름 카메라로 찍고, 자기 전 소설을 읽는 등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일상을 살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쇼지 역).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조카인 니코(나카노 아리사)가 히라야마가 사는 조그마한 집으로 오랜만에 그를 찾아오면서, 그의 평화로운 일상은 조그마한 변화를 맞이한다.



사회적 시선과 내적 시선의 충돌

높은 곳을 올려다보며 사는 삶에 내리쬐는 꿈 속의 나무와 음영

히라야마는 공공시설 청소부로써의 삶을 살며 홈리스, 동료 타카시(에모토 토키오 역), 토키오와 썸을 타던 아야(야마다 아오이 역), 지적 장애인 데라처럼 수 많은 사회적 하위 계층들과 만난다. 히라야마는 화장실에서 길을 잃은 아이의 손을 잡고 그이의 엄마에게 데려다 주는데, 아이의 엄마는 히라야마와 손을 잡았던 아이의 손을 물티슈로 닦으며 어떠한 감사 인사조차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그녀와 다르게, 약자들에게 불쾌한 태도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지속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수 많은 약자들에게, 마치 그가 일을 하러 갈 때마다 도쿄 스카이트리를 올려 보듯이, 히라야마는 자신의 시점 샷을 통해 가장 낮은 이들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일상들을 발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화장실의 쪽지로 모르는 누군가와 틱택토를 하거나, 단골 술집에 들러 가게 주인과 여러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 히라야마는 철저한 '관조자'의 역할로 그의 시각을 관객에게 양도한다. 그는 작중에서 욕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말' 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눈길' 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 시선은 히라야마에게 무의식적인 욕구의 표현이자, 통상적인 사회적 시선에 반향하는 그만의 삶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수단인 것이다.

그는 작중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인 '코모레비(木漏れ日)' 를 담는다. 분재에 매일마다 물을 주거나, 신사의 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는 등, 그에게 나무와 녹음은 자연물 그 이상의 존재이자 그의 삶과 일상에 뿌리내린 희망과도 같다. 야쿠쇼 쇼지의 인터뷰에서 그는 "'코모레비' 는 히라야마를 지옥에서 구원해준 존재"이자, "히라야마는 끊임없는 일상의 물결 속에서 유일하게 코모레비를 보았을 때만 움직임을 멈춘다"고도 일컬었다. 코모레비는 멈추지 않는 사회의 물결 속에서 히라야마를 멈춰 세우고, 멈춘 자만이 볼 수 있는 일상 속 찰나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그의 고개를 습관적으로 올려다보게 하여 하늘을 바라보게 만든다. 통상적이며 일반적인 '사회적인 시선'은 마치 시간의 흐름이나 인물의 이동처럼 가로축으로 흘러가나, 히라야마의 시선은 높은 나무와 수직적 디자인이 강조된 그의 집과 화장실 청소 장면 등 여러 미장센으로 말미암아 수직으로 뻗어나가며 수평적인 사회적인 시선과 교차하게 된다.

세로축으로 표현되는 히라야마의 내적 시선은 꿈 속에서 빛과 그림자, 흰색과 검정색의 이분법으로 나타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꿈' 은 무의식적 욕망과 일일 잔사(최근에 벌어진 일들의 기억)들이 혼합되어 발생한다. 그의 꿈은 반복되는 일상의 장면과 나이테 등 나무의 요소가 겹겹이 이중 노출되는 시각적 이미지와, 낮고 변조된 음성으로 구성된다. 이때, 음산하리만큼 거북한 배경음은 몽환적인 꿈의 이미지를 강화함과 동시에 관객에게 어정쩡한 불쾌함과 불안감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관객은 일상적인 장면을 비추는 카메라의 배후에 내재되어 있는 핸드헬트 기법으로 인한 감정적 요동과 그것이 담아낸 히라야마의 흔들리는 시선, 그리고 꿈 속의 밝고 선명한 일상 속 기억 뒤편의 어둠까지 인식함으로써 불안함이라는 정서를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불안감' 으로 인해서 일상의 수평적 시선과 히라야마의 수직적 시선의 산물인 빛과 그림자는 서로 '충돌'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나름 반반히 이어지던 히라야마의 일상 뒤의 무언가를 궁금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충돌의 여파로, 히라야마의 삶은 천천히 붕괴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삶의 리듬'이 즉흥 변주곡이 되기까지

일상이 무너지며 나타난 '단절'의 진실

여러 요소로 암시된 히라야마의 불안함은 여러 인연이 그의 삶 속을 스쳐 지나가며 서서히 외부로 표출된다. 그의 조카인 니코(나카노 아리사 역)가 가출하여 그의 집에 올 때, 히라야마가 영위하는 삶의 리듬은 변주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그는 관객에게 자신의 삶을 채운 기쁨을 중심으로 그의 일상을 공유했으나, 히라야마는 니코에게 청소부라는 자신의 직업이 부끄러운 티를 낸다. 케이코(아소 유미)와의 짧은 포옹 이후 타카시의 퇴사로 인해 혼자 두 배의 일을 하게 되어 담당자에게 전화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늦은 밤에 귀가해 씻지도 못하고 잠에 들거나, 모종의 사유로 마마(이시카와 사유리)가 술집을 열지 않자 혼자 강변에서 흡연을 하며 콜록거리기도 한다. 이처럼, 기쁨이 미처 채우지 못한 빈 공간의 어둠과 불안함은 히라야마의 삶의 리듬 속 변주로써 표현되며, 히라야마의 시야를 빌려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의 눈을 서서히 채워간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함과 어둠의 원인은 바로 '다른 세계로부터의 단절' 에서부터 피어나던 악취였던 것이다.

"엄마가 삼촌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대요" 라는 니코의 말에 "세상 속에는 다른 많은 세상이 있어. 그 세상들이 모두 연결되어있는 것은 아니야"라며 대답하거나, "어제는 어제, 오늘은 오늘"이라는 말을 흥얼거리며 노을이 비치는 다리 위 삼촌과 조카의 모습은 따스한 자연광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미장센으로부터 오묘하고 슬픈 느낌을 준다. 히라야마는 세상의 물결에 반향하는 시선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무인도처럼 '히라야마'라는 세계 이외의 다른 모든 세계와의 다리를 끊어 버렸다고 치부하며, 무의식적으로 이를 무시한 것이다. 이는 마치, 나무와 코모레비를 찍는 그의 필름 카메라의 시점 숏이 의도적으로 가려 버린 히라야마의 얼굴 위 그림자를 생각나게 만든다.

이후 히라야마는 강변에서 죽음과 가까워진 토모야마(미우라 토모카즈 역)의 넋두리를 잠시 들은 후, 그와 그림자 놀이를 한다. 이때, 코모레비(빛)와 어둠이라는 두 가지 오브제는 히라야마와 토모야마의 그림자가 서로에게 겹쳐졌다가 엇나갔다가를 반복하며 그들 위로 투사된다. 이때 히라야마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행복을 발견했던 그만의 행복하고 독자적인 삶의 시선과 태도는 강박적으로 빛을 갈망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믿었던 다른 세계와의 징검다리는 코모레비 속의 그림자. 즉, 어둠으로 가려져 그도 모른 채로 다른 세계와 무의식적으로 연결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러한 어둠도 빛으로 인해 발생하는 그림자로써 삶의 리듬 속 일부분임을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토모야마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되잖아요"라는 대사와, 히라야마가 "이렇게 그림자를 겹치니까 뭔가 더 어두워진 것 같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대목을 통해, 그는 갈망하던 빛 너머에 깔린 어둠 속에 가려졌던 스스로의 과거와 수 많은 세계와의 연결을 뚜렷하게 바라본다. 또한 세상이 히라야마를 차갑게 대한 것과 달리 그가 세상을 따뜻하게 대하는 태도와 베푼 수 많은 선행- 노숙자를 바라보는 온정, 타카시와 아야에게 베푼 관용과 용서, 그리고 니코에게 따스하게 대해 준 것들- 은 그의 삶 속 피상적인 행복이자 강박적인 빛의 갈구였으며, 과거와 다른 세계로부터의 단절을 무의식적으로 은폐하기 위한 행동임을 인정한다.

즉, 어둠과 과거를 은폐하기 위해서 수동적이며 간결한 삶을 살아내며 그것의 내재적인 불안감을 견디는 히라야마는 능동적으로 스스로의 어둠 또한 자신이 갈망하는 빛과 달리 증오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책임지고 살아가는 삶의 일부분으로써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로써, 돌발적인 인생 속 여러 이벤트들은 그의 삶을 붕괴시키는 악재로 변모하지 않고, 그가 듣는 올드팝과 여러 노래처럼 그의 삶을 '즉흥 환상곡'으로 변주한다.



빛과 그림자: 픽션과 다큐 사이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가는 새로운 나날의 명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히라야마가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을 들으며 운전하는 동안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을 3분 동안의 롱 테이크로 담아내는 씬이다. 히라야마의 얼굴 위로 도시의 여러 풍경. 즉 빛과 어둠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그는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에서부터 슬픔으로 북받쳐 오른다.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퍼펙트 데이즈>는 빔 벤더스 감독이 추구하는 '미장센을 넘어선 의도로써의 영화'로써 작용한다.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부터 고다 아야의 <나무> 등,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과 소설은 내면의 치유, 현실 도피등의 서브텍스트와 나무 등의 오브제들이 지니는 메타포적인 특성을 더욱 강화시켜, '모든 사진의 뒷면에는 사진작가가 투명하지만 보인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라는 벤더스 감독의 말을 통해, 이 영화는 모든 숏에 의도가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히라야마의 모든 자가성찰의 과정과 일상 시퀀스의 선형적인 반복과, 야쿠쇼 코지의 섬세하고도 감정적인 연기력으로 이루어진 영화 내적 특징, 그리고 실제로 촬영을 임할 당시 청소부에게 야쿠쇼 코지가 직접 화장실 청소를 배우거나 시간순으로 촬영을 진행한 점, 그리고 이 영화가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 의 홍보를 위해 제작되었다는 영화 외적 특징은 <퍼펙트 데이즈>가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특징들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관객은 감독의 전령으로 치부되던 히라야마의 잃어버린 내적 공명의 존재를 감정적으로 강렬하게 느끼게 만들어-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 속에 놓여져, 메세지를 시선으로써 전달하지 않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나타내는 능동적인 태도를 통해- 관객에게 그의 눈물로써 묘한 통쾌함이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빛이 존재하기에 그림자도 존재하고, 그와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인정하며, 관객이 히라야마의 눈물로써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히라야마도 같이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꿈이 처음 등장하는 씬의 '어둠으로부터'라는 글자처럼, 그는 본디 자신의 어둠으로부터 잉태된 꿈의 밝은 부분만을 바라보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 낸 어둠까지 품어내며, 그것이 진정한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히라야마는 코모레비와 녹음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꿈으로부터 깨어나는 매일마다 맞는 새로운 나날들과, 일상의 균열 사이에서 피어나 그의 얼굴 위 차창에 스쳐 지나가는 새로운 나날의 햇살(코모레비)와 그림자(녹음)들을 바라본다. 그는 카세트 테이프 속 The Animals의 <House of the Rising Sun>과 함께, 과거의 잔재와 다른 세계의 경계들을 초월한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나날들'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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