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2049: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리뷰

by 더 레터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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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음의 세레나데

고도화된 과학은 과거를 노래한다

<아키라>, <A.I.>부터 <바이얼센티니얼 맨>, <그녀>까지. CG만이 창조할 수 있는 기술들로 세계관을 구성하는 영화들은 화려한 시각적 요소 아래의 서브텍스트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에 집중해 왔다. 발전하는 과학 기술로 인해 변질되는 인류의 특성을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묘사하는 SF 장르는, 결국 인간이라는 종을 명시하는 경계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가 질문한 ‘인간성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3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 화려한 미장센과 여러 메타포들을 통한 164분의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시네마로써 대답한다.

이 영화는 인류와 기계의 모호해진 경계와 전쟁 이후 디스토피아로 변해버린 세계 속 과학은 구시대의 음악과 예술을 기계음으로써 찬양하는 역설적인 이미지를 통해 주제의식을 표출한다. 이는 기술이 보존할 수 없는 인간다움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으로써의 자격을 공고히 할 그것의 특성을 어떻게 입증해야 하는지를 미시적인 갈등과 거시적인 문화적 특성으로써 집약한 드뇌 빌뇌브와 리들리 스콧의 대답이다.


시놉시스

인간과 리플리컨트가 혼재된 2049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쫓는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는 리플리컨트와 자신을 둘러싼 비밀이 존재함을 깨닫고 오래 전 블레이드 러너로 활약했던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찾아 나선다. 한편, 리플리컨트가 인류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니안더 월레스’(자레드 레토)는 자신이 개발한 미래식량의 성공으로 타이렐사를 손에 넣고 전 우주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리플리컨트와 관련된 중요한 단서를 가진 ‘K’를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위키피디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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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공진화가 앗아 간 ‘진짜’

빛과 색으로 덧칠된 진짜를 찾아서

이 영화에서 인류는 전쟁과 여러 사건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작중에서 조시(로빈 라이트 역)이 K에게 말한 “어짜피 우리는 모두 진짜를 찾고 있다”라는 대사를 통해, 인류는 디스토피아를 살아가며 진보된 기술을 누림으로써 얻는 편의성보다 과거의 향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인류가 ‘진짜’를 보존하려 과학과 공진화를 이룩한 결과가 '대정전'처럼, 그들이 보존하고자 했던 과거와의 영원한 작별이자 쇠락한 폐허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칙칙한 회색과 검정색 콘크리트 빌딩의 끝없는 세로축 사이, 과거를 잊어버린 인류와 레플리칸트는 푸른 빛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의 환락과 가짜 감정 속에서 길을 잃고 ‘진짜 인간다움’을 망각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라스베가스는 사막이나 방사능 낙진과도 같은 주황색 색채를 지닌다. 이는 윌레스와 러브의 집무실이나 기록실의 주황색 조명과도 유사하다. 로저 디킨스는 조명과 색의 유사성을 통해 과학 기술로 인해 쇠락한 과거의 이미지를 가상의 미래 위에 덧입힌다. 이후 데커드와 윌레스의 대면 장면에서 일렁이는 수면 위의 주황빛 조명과 그림자의 강한 대비는 주황색에 인공적인 광기의 이미지와 탐욕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미지를 심화시킨다. 이와 반대로 새퍼 모튼(데이브 바티스타 역)의 흰 나무 아래서 발견한 꽃(카우슬립)은 칙칙한 배경 속 하얀색 위의 자연의 빛이자 기술 문명 속 유일한 생명의 증거로써, 저항과 희망의 이미지를 가진다. 이는 인류의 타락 속에서 ‘진짜’를 구하려는 여러 레플리칸트들의 행동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핵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라스베가스에서 벌집에 손을 넣는 K를 비추는 씬은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인 ‘벌’들이 인류가 떠난 장소에서 인류가 그리워하는 자연환경을 회복시켜, 인류의 부재가 ‘진짜 자연’을 수복한다는 아이러니를 상징하게 된다. 이러한 여러 아이러니 속에서 K는 호기심으로부터 피어난 이타심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고행길에 올랐으며, 결국 희생이라는 생명의 빈자리를 반증함으로써 ‘순수한 삶의 의미’에 도달하게 된다. 그는 바닷물에서 데커드를 구출하며 그의 손에 묻은 피를 씻고, 하얀 눈으로 그의 상처와 빈자리를 감추며, 죽음을 거친 용서를 통해 ‘진짜 삶’을 입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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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부터 손까지

영혼이 흐르는 길

영화는 초록색 눈동자를 클로즈업하며 시작한다. 전작과도 마찬가지로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눈’은 영혼을 통하는 길이자 인간성을 나타내는 요소로 묘사된다. 레이첼의 초록 눈동자는 윌레스가 만든 레이첼의 복제품이 진짜 레이첼과 유일하게 다른 점이자, 레이첼의 인간 데커드가 넘어가지 않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써 작용한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초록색 동공을 가졌으나, 앞이 보이지 않는 윌레스의 눈동자는 기적을 통해 인간성을 입증한 레이첼의 안티테제이자 그녀와 반대로 인간성을 상실한 월레스의 서사적 위치를 시각적으로 구별한다.

눈동자. 즉 시각은 조이(아나 데 아르마스 역)과 K 사이를 연결시키는 유일한 수단이며, 보급형 인공지능일 뿐인 조이와 레플리칸트인 K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감정은 과연 진실된 사랑인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그녀는 사용자가 원하도록 그에 맞춰 움직이고 행동하는 AI이기에 진짜 자신이 되고 싶은 K에 맞추어 주체성을 지닌다. 조이가 메리에트(맥켄지 데이비스 역)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그녀(2013)>가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키스를 하는 동안 메리에트는 눈을 뜨며 입술이 닿는 진짜 감각을 느끼지만 조이는 이와 반대로 눈을 감는 모습을 통해 육체를 투영하며 따라할 뿐임을 나타낸다. 이후 조이의 희생과 앞선 전개를 통해 관객은 그녀와 K의 사랑은 진실된 것이라고 믿지만, 광고판 속 거대화된 조이가 K에게 “너는 정말 착한 조 처럼 보이네”라는 대사를 함으로 인해서 K와 조이의 사랑은 편향적이며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때의 조이는 검은 눈동자를 가지는데, 이는 조이가 K에게 보였던 여러 사랑의 행위는 그저 프로그래밍 된 것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를 통해 슬픔과 고통을 겪고 눈물을 흘리는 K의 모습과, 러브에게 습격당한 K를 간호해 준 인물이자 식별 ID가 있는 오른쪽 안구를 제거하여 남겨진 인간의 눈을 상징으로 레플리칸트 해방 운동을 이끄는 레플리칸트인 프레이사(히암 압바스 역)를 통해 눈은 K에게 고통으로써 인간성을 회복시키려는 결정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소재로써 변모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데커드는 유리벽 너머의 자신의 진짜 딸인 아나 스텔린 박사(카를라 유리 역)에게 손을 뻗으나 유리벽에 막힌다. 그녀는 K가 이식받은 기억의 원래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데커드와 레이첼의 딸로써 데커드를 조우한다. 자유를 위해 누군가를 해치던 손이, 자식을 향해 뻗어나갈 때 유리에 막히는 순간은 시각으로부터 촉각으로의 감각적 전이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두 감각 사이의 물리적 접근이 가까워지며 성사됨에 근접한 만남임을 증명하며 전작의 유지를 계승하는 이미지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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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변증법

영혼과 인간성이라는 '단어'의 무의미함

인류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이브와 같이, 그들의 과거를 거름 삼아 그들의 종을 창조했다. 또한 그들의 종에게 인간이 그토록 찾아 다니던 불멸마저 선사한 결과, 인류는 오히려 그들에게 경외감과 공포를 느끼게 되어, 피조물을 두려워한 창조주들은 그들을 인간다움을 절대 쟁취하지 못하는 ‘껍데기’로써 치부했다. 사피어-워프 가설에 입각하면, 인간들은 스스로를 구분하려고 만든 껍데기들을 모욕했고 그러한 말을 들은 레플리칸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비밀 단체를 조직하여 행동한다. 위의 가설은 ‘진짜’를 찾는 K가 작중에서 real이라는 단어를 반복함으로써,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고찰시키는 내러티브적 특징으로도 사용된다.

작중의 테스트 글귀로 등장하는 <하얀 불꽃>의 저자 나보코프는 언어의 기억만으로 충분하기에, ‘러시아’란 국가가 아니라 ‘러시아어’ 그 자체라는 말을 했다. ‘상징성’만을 지닌 무형의 ‘국가’라는 이념을 지탱하고 존속시키는 유일무이한 요소는 바로 ‘유대감’이다. 유대감으로부터 문화가 발생되고, 문화는 지역성을 바탕으로 시간이 퇴적되어 개별적으로 발전한다. 인간은 우월감이라는 감정과 이로부터 기인한, 차별적 언어의 빈번한 사용을 통한 유대감 형성을 통해 인간성을 규정한다. 그러나 프레이사는 인간이 태어날 때 부터 정해 주었던 시각적인 계급의 상징이자 차별적인 시각적 언어로써의 오른쪽 눈 아래의 식별 ID를 가지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레플리칸트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건설하며, 인류와 구별되는 그들만의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러한 유대감은 프레이사가 이끄는 반군들의 항쟁 방식에도 연관되어, 폭력 투쟁을 계획하는 레플리칸트 반군과 차별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부정적이거나 잔인한 면모 또한 인간성을 상징한다. 억압받는 레플리칸트들을 위해 단결을 외치는 프레이사는 역설적으로 데커드를 제거하기 위해 K를 홀로 보내거나 레이첼의 자식을 모릴 콜 고아원에 보낸다. 이 씬의 낮은 채도와 회색 색조는 그녀의 도덕적 암묵성을 시각화한다. 이는 인간성=선함이라는 명제를 붕괴시킨다.


정립: 인간의 "영혼=번식 능력" 가정

반정립: 레플리칸트의 감정/희생 증거(K의 죽음), 프레이사의 도덕적 암묵성(고아원에 위탁)

종합: 인간성은 행위로 정의됨


즉, 위의 사례들을 통해 ‘인간성’에 대해 헤겔 변증법을 적용하여,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인간성=선함이라는 단어 그 자체보다 인간성을 행할 수 있는 개개인의 심상- ‘유대감’으로 이루어진 감정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행사하려는 마음 - 이 곧 ‘인간성’의 표방이자, 영혼의 증명이라고 주장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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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행동을 통한 생명으로써의 삶, 그리고 영혼의 입증

종과 사상, 계급과 이념의 경계선상에 있는 K를 통해 빌뇌브 감독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예지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속에서 인간임을 증명하는 요소는 바로 '인간다움'이라는 글자를 넘어선 포용과 그것의 '실천' 이라는 메세지를 관객에게 보낸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의 원작이기도 하며, 두 매체가 인간의 ‘비인간성’에 대한 조명을 주제로 하는 점도 동일하다. 하지만, 원작에서 비인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전염되는 바이러스처럼 묘사한 딕이 강조한 공감 능력의 결여라는 부분은 영화에서 희생을 통한 공감의 획득으로 변모하여, 원작의 염세주의를 실존적인 희망으로 전환했음을 알 수 있다.

로봇의 3원칙을 위배하는 인간의 유일한 피조물은 인간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목숨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다운 삶의 마무리를 원하는 조이와, 그녀의 의지를 이어 받아 본인이 기적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공허함에 잠식되지 않고 데커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K. 그는 인류와 레플리칸트의 갈등과 경계 사이 칼날 같은 냉대와 혐오 속에서 생명과 사랑을 존속시키기 위해 백색 눈보라 속에서 눈을 감는다. 이는 마치 전작의 로이 베티(륏허르 하우허르 역)가 데커드와 싸우는 과정에서 그를 구하고 죽은 것과 비슷하다. K는 로이처럼, 스스로의 존재론적 공허가 짙게 배인 일대기를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누리는 삶과 생명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결국 K야말로 참된 ‘영혼’과 ‘유대감’을 지닌 존재이자, 인간과 레플리칸트 사이에서 '인간다움'을 실현한다. 그는 죽음으로써 베티의 마지막 대사인 '모든 순간이 사라지고, 마치 빗속의 눈물로써' 변모한다. 희생함을 통해 기적과 그 당사자를 인도한 K. 그가 바로 진정한 ‘블레이드 러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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