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 북(2018)> 리뷰
<그린 북>은 장르적으로 특이한 영화입니다. 보통 '전기 영화'와 '인종' 이라는 각자의 주장이 강한 장르들이 뒤섞이면, 결국 이도저도 못하고 그저 자극적인 무언가만이 되어버리거나, '다큐멘터리'라는 도화지가 될 수도, 누구보다 주장이 강한 장르 밑에서 소재로 사용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장단점이란 상대적인 시각에서 관찰했을 때 두드러진다는 말처럼, 이 영화는 '장르적 한계'를 영리하게 역이용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 영화에 별 4.5개를 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영화가 언듯 보면 슴슴해 보일 지 몰라도, 조금만 세심하게 쳐다보면 밀당의 고수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그러잖아요. '누군가가 그 일을 쉽게 해내면, 그 사람이 너무 숙련된 거 아닐까.'
마치 떠돌이 토니의 능청스러운 처세술처럼, 이야기는 어떻게든 술술 흘러가겠지.
이 영화는, '전기 영화'로써, 작품이 내세우는 작중 문화를 알아야 이 영화를 더욱 깊게 감상할 수 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은, 흑인들의 인권 운동이 점점 정점에 다가가는 시점이었다. 로자 파크스가 1955년에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의 도화선을 당겼고, 1963년에는 마틴 루터 킹이 워싱턴 행진을 이끌었던 연도였다. 1965년, 마침내 흑인들은 투표권을 쟁취한다.
한국으로 치면, 1930년대 말~1940년대 초의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듯 하다.
마치 백인처럼, 상류층의 문화와 태도를 향유하는 흑인 돈 셜리 박사와, 브롱스 바닥 출신 나이트클럽 종업원인 백인 토니 발레롱가.
이 두 인물은 정말 '극과 극'이다. 고학력자에 클래식을 즐겨 듣는 셜리 박사, 친에하는(daer)같은 글자를 틀릴 정도의 까막눈이자, 당시 유행했던 소울과 R&B 장르의 음악을 즐기는 토니. 나열하자면 정말 길다.
영화는 두 인물의 대비를 통해 역설을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토니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3인칭 관찰자로써 극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물론 토니도 정체되어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토니의 시점에서 비친 돈 셜리의 모습을 조명한다. 셜리라는 캐릭터는 사실 백인'처럼' 살아왔던 흑인이었다. 결국 뿌리는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다. 흔히 '코드 스위칭'이라고 하는 억양의 변화를 통해,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셜리 트리오의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가 아니라 흑인 돈 셜리로써 비를 맞으며 외칠 때는 흑인 억양이 튀어나온다.
그는 중간중간 본인의 말로써 암시했지만, '외로움'이라는 것에 잠식되어 있었다. 이는 아내와의 이혼으로 인한 심적 외로움일수도 있지만, 흑인과 백인 양쪽 공동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로 인한 사회적 외로움도 존재했다.
그래서, 켄터키에서 프라이드 치킨(프라이드 치킨은 흑인 노예들이 튀김옷을 입힌 닭을 튀겨서 만든 것이 원류이다)을 먹을 때, 맨 손이라는 비위생적인 환경보다도, 선조들의 억압을 상징하는 음식을 본능적으로 거부했을 것이 더 컸을 것이다.
최종장에서 돈 셜리는 결국 토니와 함께 디너 쇼를 박차고 나와 오렌지 버드라는 낡은 클럽에서, '컵을 내려놓은 뒤'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아니지만 쇼팽의 <겨울바람>을 연주함으로써', '정신적'인 자신의 백인으로써의 정체성과, '육체적'인 자신의 흑인으로써의 정체성을 전부 받아들인다.
"위선적이라고? 맞아! 난 이도저도 아닌 놈이지. 근데, 나 같은 놈은 또 없잖아?" 라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사랑'과 '우정'이 라는 주제로써는 셜리 박사와 토니 두 인물 모두 발전한 모습을 보이지만, '토니'의 입장으로써 이야기를 느껴 보면 재밌을 것 같다. 그는 능청스러운 (어찌 보면) 악인이고, 지 맘대로 살며, 속에서 끓어오르는 본능적인 혐오를 누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셜리 박사의 음악을 통해 그를 이해하려는 물꼬를 트게 되며, 결국 인간으로써의 돈 셜리를 진심으로 믿고 지지하게 된다. 셜리는 그 보답으로 크리스마스 이브, 토니를 집 앞으로 데려다 준다.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셜리를 진심으로 맞이해 주는 토니.
거친 행동과 말투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 거친 행태 속 숨겨진 마음씨는 너무나도 따스해서, 크리스마스 이브의 추운 눈바람과 셜리 박사를 녹이기에는 충분했다.
첫 번째로, '용기'이다.
셜리로써는 곧이곧대로 인종 차별이 심한 남부에 가겠다고 다짐한 후, 그를 기다리는 시련들을 '마주 보는 용기'였던 것 같다. 마치 미케네의 왕이 헤라클레스에게 12과업을 전수하는 것 처럼 말이다.
토니로써는 솔직하게 자신을 '마주 보는 용기'였다. "내가 흑인을 '왜' 싫어하지?" 라는, 단순하지만 좀처럼 꺼내기 힘든 질문을 통해 그의 인간다움을, 따스함을 조금 더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공동체의 일부분으로 향하는 지도' 이다.
셜리의 마음 속에는 벽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외적이자 정신적인 측면의 의식적인 벽이고, 나머지는 내적이자 육체적인 무의식적인 벽이다. 그리고, 진짜 셜리는 두 겹의 벽 속에서 나갈 길을 찾으려고 했다.
토니는, 성공한 가장으로써, 브롱스 친구들로써, 그리고 셜리를 보좌하는 자신의 모습으로써 여러 자아를 가지게 되었다. 토니도 이 모든 가면을 벗고 순수한 인간으로써의 자아를 찾으러 가는 길을 찾으려고 했다.
정말 다행인 점은, 두 사람은 같은 미로에 빠졌던 것이었다. 출구로 향하는 길이 같다는 뜻이다.
두 인물은, 처음에는 자신의 미로만 탈출하기 위해 급급하였다. 하지만, 서로 같은 문제에 빠진 것을 은연 중에 알게 되었고, 함께 머리를 맞대 같이 탈출구에 도달한다.
그 탈출구는, '인종으로 구분지을 수 없는, 진정한 인류애가 존재하는 공동체' 였다. 토니의 가족 말이다.
그리고서는 마침내 방황하던 두 불빛은, 수 많은 빛무리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진다. 포근하게.
초장에 이야기한 '전기 영화'의 특징을 다시 언급하려 한다.
이는 원작이 있는 영화와 비슷한데, 이미 이야기의 큰 흐름을 어렴풋이 알 수 있어서 긴장감을 느끼는 요소가 줄어든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의 여지를 저하시킨다.
하지만, 피터 패릴리는 이 점을 날카롭게 이용한다.
즉, '화면 곳곳에 은밀한 불안감을 심어 놓자'라는 것이다. 이는 시각적 이질감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백인 캐릭터보다 키가 큰 돈 셜리의 모습은, 화면 구도 상 눈을 마주 보고 대화를 할 때 눈높이를 사선으로 유지시키거나, 눈높이를 유지하기 위해 인물을 화면 끝으로 배치하여 불편한 화면 구도를 조성한다.
또한, 남부로 갈 수록 시골 분위기가 진해져, 특정 장소 이외의 사람들은 편한 옷을 입고 있는데, 셜리만 혼자 턱시도를 입어 전기가 계속될 수록 시각적인 이질감을 더해 간다.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카메라는 2인칭의 시점에서 대각선으로 카메라 구도를 설정한다. 우리는 대화를 볼 때 무의식적으로 3인칭 시점에서 보아야 안정감을 느끼는데, 인물의 행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를 요긴하게 사용한 듯 하다.
마지막 운전 씬에서 잘 보면 트렁크를 비추는 카메라 구도가 미세하게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운전이라는 행위는 배경의 변화로 인한 정보의 증가와, 대화가 끊길 수 있는 불안감과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등장했고, 비 오는 장면과 눈 오는 장면을 유사하게 배치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극에 다다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한 연출과는 반대로 따스한 크리스마스 인사와 진심 어린 경고(왼쪽 바퀴가 펑크가 나서 자동차가 카메라 구도 상 기운 것이다)를 받고,
세상엔 나쁜 사람도 참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점과, 셜리와 토니의 여러 시도 끝에 결국 선인(善人)을 만났다는 점을 시사하며 영화의 마지막 고비를 넘긴다.
장소의 배경음악이나 셜리의 피아노 연주, 자동차의 라디오 노래로 두 인물의 감정을 청각적으로 연출했으니, 그 모든 긴장과 해소의 티키타카는 마치 재즈의 스윙을 보는 듯 하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토니의 시야로 셜리가 연주를 마치고 기립박수를 받는 장면이다. 관객을 향해 웃는 셜리만을 남겨둔 채 모든 시야가 백인의 박수 소리와 그림자로 가득 찬다.
백인의 정체성으로써 백인들의 공동체인 연회장 속 무리가 되려 했는데, 결국 그러지 못하고 구별되었다는 점을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박수소리만으로 연출한 장면은 정말 대단하다.
시끄러운 현실과 고요한 음악만이 이 길 위에서 스윙하나,
연주를 마치고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면 결국 웃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