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천국: 비로소 이곳이 천국이었음을

영화 <시네마 천국(1988)> 리뷰

by 더 레터박스

영화 리뷰를 쓴 지 얼마 안된 시점, 내 인생 최고의 영화를 리뷰했던 글을 여러분께 전달하고 싶어 이번 연재분을 통해 이를 선보이려 한다. 아직도 이 영화와 사운드트랙은 내 마음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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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영화는 말로써 전하지 못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쩌면 백 마디 말보다 스물네 장의 필름이 더 많은 울림을 줄 수도 있다.

아무리 수많은 영화가 탄생하고 예술로써 빛나도, 내가 이 영화를 최애, 아니 거의 숭배하는 이유는 그저 단순하다.

이 영화만큼 스크린 속에서 나를 마주하고 보듬어 준 영화가 없기 때문이다.


명작은 때와 시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시네마 천국>을 보면 항상 그 느낌이 든다.

<톰과 제리>를 연상케 하는 배경음악과 역동적인 배경 및 인물의 조화, 전기 형식이지만 인생을 탐구한, 어떻게 보면 단호하고 명확한 주제를 품고 있다. 시각에 따라서는 조금 식상하리만큼 느낄 수도 있다. 전개도 살짝 빠를 수도 있고.


그러나, 이 영화는 왠지 볼 때마다 눈시울이 시큼해진다. 이유는 그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특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마 나를 가장 솔직하게 만들어 주는 영화라서가 아닐까.

언제나 웃을 수는 없지만, 그렇기에 천국을 갈망하는 나라는 사람을 바라봐주는 알프레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 단순한 대답은 가장 솔직하기에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후의 내 분석은 가식적이며, 내 우상을 구성하는 요소를 분해해서 이해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이해 방법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

당신을 구성하는 요소를 모두 안다고 해서 당신을 이해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

당신을 단순한 정신과 육신의 물리적 결합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라고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


진짜 솔직한 내 한 줄 평은, 어쩌면 가장 쉽지만 가장 꺼내기 어려운 마음 속 진실된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수 많은 필름 속에서 나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천국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도 멋드러진 한 줄 평이지만, 오늘은 '평론가 지망생'이기 이전에 '영화를 좋아했던 한 명의 학생'으로써 여기에 남기고 싶다.

꼭 한번쯤은, 아니면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 다시 보면 더 좋고. 여러분들에게 제 인생 영화를 추천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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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의미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조금의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영화관'은 공동체의 구심점이자, 암울한 현실 속 유일한 오락거리로써 작용했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저잣거리의 이야기꾼이 행인들에게 푼돈을 받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같다.


흔히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내재되어 있다.

첫 번째는 '영화관에서 상영한다는 것을 엄두에 두고 제작한 영상물'이기 때문에, 감독이 의도하는 바와 최대한 근접하려면 극장에서 보아야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IMAX 카메라로 영화를 촬영하는 이유에서 위와 비슷한 말을 했다.


두 번째는 '단절된 경험의 향연과 공유'이다. 쉽게 말해서, 영화관에서 우리는 각자 영화를 보는 것도 있지만,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영상을 보는 경험을 한다.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스코프를 최초의 영화로 구별하는 이유는, "같이 보기 위해 만들어져서"이다. 과거의 영화관 문화는, 각자 느끼는 바를 원없이 표출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으로부터 나타나는 여러 소리와 스크린 위에 보여지는 추가적인 요소마저 과거의 영화들은 고려하였을지 모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집에서 혼자 관람할 때와 영화관에서 관람한 후 받는 느낌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무의식은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경험을 하는 타인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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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이 영화는 장소와 인물의 상황을 대비시키는 아주 명료한 직접적 연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사자 형상의 진실의 입

솔직히, 이는 단순한 장식일 수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것의 모든 요소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필자가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진 반증이다.

영사기가 빛을 뿜는 구멍의 반대편에는 항상 사자 형상의 입에서 빛을 뿜는다. 필자는 이를 "진실의 입"과 "네메아의 사자"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했다.

진실의 입은, 진실하지 않는 자가 그 입 속에 손을 넣으면 잘린다는 풍문을 가진 유물이고, 네메아의 사자는 헤라클레스의 12과업 중 첫 번째로 극복한 시련이다.

이 구멍은, 영사기의 빛이 나가는 구멍뿐만 아니라, 영사기사로써 성장할 토토 앞의 시련, 알프레도가 겪을 시련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뭘 하든지 간에, 그걸 진심으로 사랑해라. 네가 꼬마였을 때 영사실을 그렇게 사랑했던 것처럼." 이라는 알프레도의 마지막 말 처럼, 타향으로 떠나는 오랜 토토의 마음 속에 한 마리의 사자로써, 사랑했던 영사실로써 존재할 것이다.




고해성사실에서의 고백

신부님의 발을 알프레도가 묶고, 토토가 옐레나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말 그대로 "고해성사"라고 생각한다. 토토로써는 '100일간의 공주와 병사 이야기' 속으로 떠나 그 답을 찾으려는 것이며,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말 그대로 고해하는 것과 같다.

이는 개인적인 감정을 가장 성스러운 공간에서 표출하는 이미지의 대비를 보여준다. 그래서, 토토의 사랑이 단순히 '수컷으로써의 사랑'이 아니라 '토토로써의 사랑'임을. 고귀하고 순수한 감정으로써의 사랑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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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이 수놓인 바닷가

전역한 후, 토토와 알프레도는 바닷가에서 더 넓은 곳을 향해 자신의 꿈을 펼쳐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한 이미지를 내포한다.

바닷가라는 넓고 탁 트인 공간 속 두 인물을 작게 묘사하여 배경의 넓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넓은 배경 속에 수많은 닻이 뭍에 올라와있음을 강조한다.

이 장면은, 잔카르도에서 일평생을 살았던 알프레도가 이 장소에 걸어버린 스스로의 마음의 닻이며,

토토가 이 곳을 떠날 채비를 마치도록 닻을 올리는 알프레도의 조언과,

곧 떠날 배와 같은 처지인 토토의 위치와 심정 변화를 의미한다.






토토와 알프레도의 시선

눈이 먼 알프레도가 '누에보 시네마 파라다이소'를 방문할 때, 토토의 볼을 어루만지며 카메라가 돌아가고, 토토가 자란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보여준다.

첫 번째로, 알프레도가 영사실에 방문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점.

두 번째로, 멀어버린 알프레도의 눈에는 여전히 토토가 영사실에 들락날락하는 꼬마로 보인다는 점.

그는 눈이 멀어도 영화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다. 또한, 토토가 옐레나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임을 알아챈다. 마치 영사기와 토토의 마음이 '보이는' 것 처럼 말이다.



장소가 품고 있는 추억

시네마 천국 영화관은 작중 두 번 붕괴한다.

첫 번째는 영사기에 맺힌 불로 인해, 두 번째는 시간이 지나 인기척이 줄어서 붕괴한다.

이는, 영사기사로써 토토의 성장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분기점으로써의 역할을 한다. 또한, 옐레나와의 사랑이 완전히 끝났음을, 과거로부터의 작별을 고하는 것을 뜻한다. 추억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영화관과 영사실은 토토에게는 그저 영화를 보는 장소 그 이상으로써, 알프레도의 부성애, 옐레나와의 사랑 그리고 어렸을 때의 추억을 모두 포함하는, 진실된 고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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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형태

작중 알프레도와 토토는 수 많은 사랑을 서로에게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형태는 시간에 따라 다르다. 그 감정의 물결을 따라가보자.


토토의 사랑

끊어진 어머니와의 사랑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의 비통함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아이 토토는 영사실의 필름을 가져왔다가 아버지의 사진을 태워버린다. 알프레도는 이를 기점으로 타버린 아버지의 사진 속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토토의 아버지 역할을 한다.

위의 사건이 주요한 계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중년이 된 토토가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고 서로 안을 때, 어머니와의 잃어버린 감정의 고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토토는 30년이 지나고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점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옐레나와의 사랑

사회적 관계로써의 사랑인 모성애, 부성애와 달리 한 명의 남성으로써 사랑이다. 고해성사실, 영사실, 그리고 중고 자동차까지.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의 흔적은 전부 퇴색되거나 옅어졌다. 그러나 토토는 닭장으로 변해버린 중고차나 파라다이소 극장이 무너지는 그 순간까지도 옐레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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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도의 사랑

전임 영사기사로써

영사기사로써의 알프레도는 자신이 (훗날 겪을) 사고를 막을 전임자로써,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영화를 일로써 받아들일 무의식적 단계로써의 준비를 마친다.


토토의 친구로써

토토와 알프레도는 친구 사이이기도 했다. 영사실에서 외로운 삶을 보내던 알프레도와,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없는 조그마한 소년 토토는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아버지로써

알프레도는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토토의 아버지로써 토토를 사랑했다. 여러 사랑의 결이 있지만, 아마 이 감정이 가장 주된 사랑일 것이다. 토토도, 돌아오지 않는 아빠와 슬픔에 빠진 엄마 사이에서 의지할 어른을 찾아다녔는데, 알프레도는 조금 서툴지언정 진정으로 토토를 사랑했다. 토토도 그것을 알았는지, 알프레도의 투박한 태도에도 전혀 슬픈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알프레도는 그의 마지막까지 투박했다. 절대 토토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그의 솔직하고 따스한 마음씨는 숨기지 못했나보다. 토토가 가져갔던 필름 조각들을 이어붙여 유품으로써 토토에게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필름들은 당시에는 상영할 수 없었던 수 많은 키스 장면들. 말로써 전해지지 않으나, 마흔 두 편의 영화(https://www.imdb.com/list/ls052427066/)을 엮어 만든 알프레도만의 따뜻한 사랑은, 'fine'라는 글자를 볼 때 눈시울을 글썽거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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