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틀리면 빠꾸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by 김수현

저는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가 인기 있다고 하더라고요.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저의 동생이 드라마를 보고는 저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언니가 나한테 이런 말을 참 많이 하는데, 수틀리면 빠꾸" 그 말에 저는 비로소 그 드라마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인내심이 없어서 드라마를 전부 보지는 않았지만, 사실 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몇 개의 짧은 클립 영상만 보는데도 벌써 눈물이 글썽거리는 것이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저는 '수틀리면 빠꾸'라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늘 동생한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해보고 안되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도 돼' 저의 동생은 그 말을 두고 저에게 제 생각이 났다고 한 것 같아요.



수틀리면 빠꾸



유튜브에 영상을 찾아보니 수틀리면 빠꾸라는 말에 관련된 넷플릭스 공식영상이 있더라고요. 그걸 봤습니다. 과연 그 짧은 영상을 보고 제가 모든 이야기를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외줄 위를 나아가야 하는 시발점에서 잔뜩 겁에 질린 채 발아래를 내려봤는데, 알고 보니 푹신한 매트리스가 놓여있는 상황이요. 금명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운동회 달리기를 하러 갈 때, 수능을 치러 갈 때, 결혼식에서 입장을 할 때에 아버지는 곁에서 항상 얘기를 하셨습니다. 나가보고 안될 것 같으면 다시 아빠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아버지가 금명이를 바라보는 아주 든든하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눈빛도, 어릴 때 자신감이 넘쳤지만 점점 자라면서 그 말의 무게를 체감하는 듯한 금명이의 눈빛도 저로 하여금 눈시울이 붉어지게 했습니다.


'수틀리면 빠꾸'라고 염려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는 아빠에게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난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하던 금명이는, 자신만만하게 수능을 치러 들어가는 나이를 지나, 결국 그 말에 눈물을 흘리며 결혼 식장에 들어갈 나이가 됩니다. 저에게는 그 장면이 마치 마냥 즐겁기도 그럼에도 한참을 흔들리고 좌절했기도 했을 삶의 끝에 '수틀리면 빠꾸'라는 말을 하는 사람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으신가요? 세상에 행복만 할 수는 없지만, 몇 번의 행복과 절망이 인생의 기본값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쯤은 몰랐으면 하는, 마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손으로 감싼 세상 속에서 살기를 바라게 되는 그런 사람이요. 자신이 경험하기 전까지 인간은 타인의 감정에 완벽하게 공감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공감이라고 하는 것은 타인의 입장에서 완전히 이해하기보다는 상대의 경험과 유사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는 일이라고 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사실을 기반으로 생각했을 때, 아버지가 한 '수틀리면 빠꾸'라는 말에 결국 눈물을 보인 금명이는 삶의 어떤 때에는 두려워지고 도망가고 싶지는 순간도 있다는 경험을 한 것만 같아서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또 그런 말을 하는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물론 너무나도 소중한 자식이기에 당연히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왠지 저는 삶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을 너무나도 잘 겪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담담한 응원이라고나 할까요?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주 고통을 줄 것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아는 사람이기에 그저 돌아와도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같은 상황에서 응원할 수 있는 말을 정말 다양한 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한 금명이의 아버지는 어쩌면 삶의 어떤 순간에 본인이 간절히도 원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순간을 모두 견디어 누군가가 안심하고 딛고 설 수 있는 단단한 땅이 된 것만 같아서 그 또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해보고 안되면 다시 돌아와도 돼'라는 말을 종종 하는 편입니다. 사실은 이 말을 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해보고 안되면'이라는 말에 큰 공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보고 안되면 실패를 하는 것이고, 그럼 마치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아서, 흐른 시간 속에서 나만 그 자리에 그대로인 것 같아서 늘 무언가를 완성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결과에 중점을 두다 보니 점차 실패하는 일이 쌓여갔습니다. 저는 그냥 수많은 분야에서 실패한 사람이 되고 만 것이지요. 그럼에도 후퇴하기는 싫었던 마음에 악착같이 그 위치에서 버텼습니다. 뒤로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끔찍하게 싫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악착같이 제자리걸음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니 그제야 보이더라고요.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고. 제자리에서 걸은 수많은 걸음이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어떤 단단한 벽을 제 뒤에 쌓고 있었다는 것을요.


삶에 독기를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악착같이 삶에 매달리지 않아도, 나아가지 않아도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무용하지는 않다는 무언의 믿음이 생겼습니다. 힘들게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져도 내가 쌓은 모든 가시적인 것들은 잃을 수 있지만, 결코 쌓기 전의 나와 같을 수는 없다는 믿음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순간이 무용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가 형용하지 못하는, 언어의 형태를 가지지 못한 어떤 곳을 향해서 앞으로 가기도, 뒤로 가기고, 어떨 때에는 쉬면서 가기도 하는 중인 것이겠죠.


그때부터 저는 제가 아주 아끼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너무 두려워서 어떤 말도 못 할 것 같으면, 일단 너 스타일대로 해보고 안되면 그때는 내가 도와줄게'

제가 가진 것이 아주 많아서, 줄 수 있는 것이 많아서 실패해도 해봐! 이런 마음으로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네가 지금 하는 것이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봐, 그 결과가 너의 무용함을 증명하는 길일까 봐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통과해 온 시간 속에서 가장 원했던 말이기도 하지요.


앞으로 주어진 시간 속에는 아마도 행복과 절망이 같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둘은 꼭 붙어 다닐 것입니다. 언제는 행복이 더 크게 보이겠지만, 또 다른 날에는 절망이 더 크게 보여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도 힘들 때가 있겠지요. 그럴 때면 이 말을 자기 자신에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의 끝에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괜찮아.
넌 결코 하기 전의 너와 같을 수는 없어



어떤 일의 끝에 단 몇 글자로 요약되고 말 일이지만 그것을 뱉기 위해 버텼을 하루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그 시간 속의 자신은 결코 같지 않다는 것.


어떠한 어려움 속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저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너무 무거워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할 것 같은 날엔 이런 말을 빌미로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제자리인 것 같아도 수많은 걸음을 걸어낸 여러분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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