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방 안에는?

내가 그림책을 늘 보따리에 넣고 다니는 이유

by 이유미

매일 아침 출근길, 늘 함께 하는 아들 말고도 내겐 특별한 동행인 아니 동행가방이 하나 있다. 바로 연베이지색 바탕에 키티그림에 그려진 타포린 백. 여동생이 하와이에서 신혼여행 다녀오며 사다준 가방이 그 주인공이다.

오른손은 아들의 고사리손을 잡고 왼쪽 어깨엔 그 가방을 둘러맨 채 학교에 출근을 하면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늘 내게 묻곤 한다.

오늘도 출근해서 학년 연구실에 도착해 어김없이 그 가방을 한쪽 책상 귀퉁이에 툭 내려놓으니 동료 선생님께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으신다.


“그 가방에 대체 뭘 넣고 다니길래 매일 빠짐없이 들고 다녀요?”


나는 대답대신 가방 속을 들여다보여주곤 하는데 그때마다 다들 살짝 김샌 듯한 표정이다. 내게 질문을 던진 선생님도 같은 표정이었다. 반면 그 가방을 둘러매고 교실로 들어서면 조금 일찍 등교한 아이들은 늘 그 가방 속 물건이 빨리 답답한 가방 밖으로 나오길 고대한다.


가방 속 물건의 정체는 바로 전날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한도를 잔뜩 끌어다 빌려온 대여섯권의 그림책. 아침마다 나는 가방 속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건네며 "얘들아 오늘의 선생님 추천도서야 읽어봐" 하며 아침인사를 대신한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내가 빌려온 그림책을 서로 읽겠다며 잠시간 쟁탈전이 벌어지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읊조린다 “바로 이거지“

이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나는 일주일에 두어번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퇴근 길에 안락한 집 대신 언덕배기에 있는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일주일 두어번, 나는 냉장고에 떨어진 식재료를 사러 마트를 가듯 교실 책꽃이에 채워넣을 책을 빌리러 동네 도서관엘 간다. 물론 학교 도서관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그림책이 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비교적 장서가 많은 편인 동네 도서관을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땀을 내며 도착한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들은 꼭 마트 매대에 가지런히 놓인 식재료들 같다.

나는 미리 검색 후 스크린 샷으로 저장해둔 청구기호 사진을 찬찬히 훑어보며 매의 눈으로 책을 찾아 가방에 넣는다. 그 다음으로는 꼭 필요한 쇼핑리스트를 담은 후 내가 끌리는 식재료를 사듯 서가의 책을 눈으로 쓱 훑으며 제목이나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을 가방 속으로 쏙 담는다.

그렇게 삼십분여의 도서관 쇼핑이 끝나면 나는 가방이 찢어질 듯 가득한 그림책을 보며 뱃속이 든든해짐을 느낀다. 물론 3키로 수박한통에 버금갈만한 무게를 자랑하는 가방을 드느라 팔이 빠질 것 같지만,다음날 아이들이 신나게 읽고 독서록을 쓰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면 그 정도 고통쯤은 눈 질끈 감고 참을 수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토록 그림책에 빠져든 것은. 곰곰 떠올려보니 작년 이맘때쯤, 도서관에서 우연히 듣게 된 그림책 테라피 수업 덕분이 아닌가 싶다. 복직 후 거울 속 내 얼굴조차 들여다 볼 틈없이 촘촘한 스케쥴을 소화해내며 지칠 무렵. 아이의 그림책을 빌리러 우연히 들른 도서관의 게시판에 붙은 테라피 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듯 수업을 신청했더랬다.

그 당시만 해도 그림책이라면 어린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 치부하고 시시하다고만 느꼈다. 하지만 그림책을 활용한 수업에서 여태 알지 못했던 그림책의 매력에 폭 빠져들게 되었다. 수업은 그림책을 읽고 나와 연관된 내용으로 연결지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생판 모르는 남 앞에서 그림책의 내용을 빌려 내 고민과 불안을 털어놓기도 하고 뜻밖에 그림책을 통해 해결책을 어렴풋이 얻기도 하며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서로 애틋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마음치유효과가 있는 건 덤이고. 나는 또한 수업에서 쓰인 책을 아이들에게도 읽어주고 내 이야기와 연결짓게끔 질문과 답을 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들으며 그 마음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었다.

그 이후 그림책이 주는 테라피 효과를 몸소 느낀 뒤로 지금까지 나는 발이 닳도록 그림책을 빌려 아이들과 소통하는 도구로 써왔다.

어색한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은 새학기 첫날엔 헉 오늘이 그날이래 책을 읽어주며 전날 밤 아이들이 느낀 감정과 선생님의 감정이 같음을 넌지시 알려주며 무거운 공기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었고, 반장선거를 앞두고선 늑대의 선거를 읽어주며 진정한 리더에 대한 판단을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 소중한 한표를 던질 수 있게 했다.

어느날, 체육시간에 욕설을 내뱉에 혼난 아이들을 훈계하며 누군가 뱉은 이라는 책을 꺼내들어 내가 뱉은 욕이 누군가에게 독화살 처럼 박히고 그것이 다시 내게 돌아와 나를 괴롭힌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겐 자신의 언어습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습관적으로 욕을 내뱉던 한 아이는 독서록에서 그 책을 읽고 느낀점으로 "내가 뱉은 욕이 누구에게 피해를 주고 결국 내게 돌아오니 조심해야겠다" 라고 썼었다. 그 한 문장이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와 그림책을 더욱 열심히 빌려와야겠다는 의지를 굳히게 했다.

얼마 전엔 일기장에 자신의 감정이 오락가락해서 고민이라는 아이를 위해 감정호텔책을 읽어주며 내 안에서 여러감정이 드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그 감정까지도 끌어안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은근히 스미게 했다. 그림책을 읽어 준 뒤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그전과는 달리 촉촉히 젖어있음을 느낀다. 백마디 잔소리보다 한 권의 그림책이 아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효과가 있음을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다.


얼마 전, 내게 뜻밖의 별명이 생기게 된 계기가 있었다. 9단원 한글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국어수업시간,한글을 널리 알리기 위해 보따리에 늘 한글책을 들고 다녀 주보따리라는 별명을 지니게 된 주시경 선생님의 일화를 읽던 중 한 아이가 밝은 목소리로 외친다.


“어 우리 선생님도 늘 가방에 책 들고 다니시는데 비슷하다”


나는 그 아이의 낭랑한 목소리에 화답하며


“그러게 그럼 선생님은 이보따리 선생님인가?”


너스레를 떨며 말하는 나를 향해 26개의 웃음소리가 교실 사방에 기분좋은 내음처럼 퍼져나간다.

교과서 속 지문에서 주시경선생님이 보따리에 책을 한아름 짊어지고 다니며 한글을 가르치는 이유는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나라의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서” 라고 나와있다.


자칭 이보따리 선생님인 나는 누군가가 왜그렇게 무겁게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냐 묻는다면 주시경 선생님의 주옥같은 표현을 빌려


“그림책을 가방에 이고 다니며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 마음의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난 한 학기동안 나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50여 권이 넘는 그림책을 빌려오고, 또 일주일에 두어번 읽어주며 아이들과 마음 소통을 해왔다. 그림책을 통해 내 마음과 진실되게 마주하고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고 들어주며 공감과 위로가 핑퐁처럼 주고 받는 그 순간들이 쌓여서인지 7월인 지금 아이들과 나를 연결하는 마음의 선이 한층 단단해짐을 느낀다. 일기장에 선생님꼐 감사한 일을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고 얘기를 들어주셔서 라고 쓴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닌 것을 보면 말이다.


지금도 나는 작년에 이어 개설된 도서관 그림책 테라피 수업에 참여하며 내 마음을 먼저 몰랑몰랑하게 만든 후 아이들에게도 그 몰랑함에서 부화한 온기를 힘껏 전달해주고 있다. 이번 수업에서 읽은 두 권의 그림책도 부지런히 빌려와 내 보따리 속에 쏙 집어 넣는다. 제목은 밤이 그리는 색깔, 그리고 당신의 가방속에는? 두권의 책이다. 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일요일 저녁이지만 그 기대로 일요일 저녁병이 한층 약화된 느낌이다. 아이들은 내가 읽어준 그림책을 보며 어떤 마음을 꺼내줄까? 기대감과 설렘에 배시시 웃음이 난다.

나의 동행가방


연재는 22회까지 마무리하고 다른 작품으로 찾아오겠습니다 늘 부족한 제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그림책#그림책테라피#교실속풍경#그림책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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