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다 의미있었던 시간들, 1학기 안녕,연재도 안녕
길고 긴 한 학기라는 여정을 마무리하며 화요일, 여름방학기간에 들어갔다. 출근길, 바람에 실려오는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 평소와는 사뭇다른 가벼운 공기가 오늘이 방학날임을 실감나게 한다. 시간표조차 의미없는 오늘 하루. 어떻게 하면 의미있게 한 학기 마무리를 할까 고심하며 출근을 했다.
방학식을 하고,이런저런 방학 숙제를 안내한 뒤 나는 아이들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제목은 한 학기를 돌아보며. 종이를 받아든 아이들은 고심고심하며 한자한자 적어내려간다. 3교시 내내 시끌벅적 소음으로 가득 메워진 교실이 일순 조용한 공기가 내려앉는다. 창문 밖으로는 빗소리가 후둑후둑 , 교실 안에선 아이들의 연필소리가 다닥다닥 두 소리가 조화롭게 어울리며 기분좋은 화음을 낸다. 아이들이 1학기를 돌아보는 동안 나도 자리에 앉아 지난 한학기를 되돌아본다.
3.4 첫날. 아이가 같은 학교에 입학하고 나도 새 학기를 시작하는 첫날이 겹치며 혼돈의 한주가 시작되었었다. 가뜩이나 첫 날은 긴장되고 신경이 예민한 날인데 아이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신경의 촉수가 곤두세워졌다. 한 주간 급식도 못먹고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적응했던 그 순간들.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이에게 학교에서 엄마라 부르지 말라고 했던 웃픈 순간들. 아침에 함께 등교하다 아는 학생이라도 마주치면 괜스레 시선을 피하며 아이의 손을 쓱 놓기도 했던 아픈 순간들. 그 순간들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지나간다. 힘든 순간을 브런치 북 연재라는 고리로 연결하며 내글을 읽어주는 분들의 공감과 댓글을 보며 힘을 내고 버텨낼 수 있었다.
세차게 흔들린 3월 덕분에 4월은 누구보다 눈부신 봄을 맞이 할 수 있었고, 반 아이들에게도 온전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의 같은 공간에 있어서인지 반 아이들을 대할 때도 전과는 달리 책임감이 한 겹 더 쌓였던 것 같다. 아이의 마음을 반 아이들에게 투영해보기도 하고, 반 아이들의 마음에서 아이의 마음을 조심스레 포개보기도 하면서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게 되었다.
그림책을 읽어주며 아이들과 내 마음의 선을 굵게 연결해나가고, 일기검사를 통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아이들의 마음을 마주하며 댓글로 위로를 건네며 어린 시절의 나를 어렴풋 떠올려보기도 했다. 지난 한학기돌안 교실은 평온과 혼돈이라는 냉탕 온탕을 오가며 우리만의 이야기들을 한 층씩 쌓아나갔다. 미워하다가 예뻐하다가 안쓰럽게 봤다가 다시 예뻐하며 아이들과 나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왔다.
한참 지난 1학기로 정처없이 떠돌며 혼자만의 여행을 하다, 한 아이의 외침에 다시금 현실로 안착한다.
"선생님 다 썼어요"
하나둘 지난 한학기를 돌아본 글을 다 완성한 아이들이 다시금 왁자한 소음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발표의 시간, 아이들은 지난 1학기를 추억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내놓으며 파노라마 처럼 길게 이어붙이기 시작한다. 새학기 첫날,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주며 새학기 첫날 선생님도 긴장되었다고 말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는 발표를 시작으로 현장체험학습 때 벌레가 너무 많아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즐거웠다는 순간. 체육대회 옆반과 피구를 했는데 2:0으로 완승을 거둔 순간. 강낭콩을 기르며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다 기른 콩을 다시 길러 싹을 틔운 순간. 생존수영으로 수영장에 가서 신나게 수영을 하고 돌아온 순간. 얼마전 영화를 보며 선생님이 주신 과자를 먹으며 즐거웠던 순간 등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며 우리는 그 순간들을 하나의 파노라마로 재생시키며 함꼐 추억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은 또한 내가 아침마다 10분씩 내어 좋은 말들, 삶의 지혜들을 선생님의 경험을 들어가며 해주었던 그 순간을 가장 좋은 순간으로 꼽기도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던 내가 해준 의미있는 말은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2차 화살을 쏘지 말라","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그 시간에 멍한 눈빛을 보내거나 하품하는 아이들도 꽤나 있어서 흘러들었겠거니 생각했는데 다들 내가 해 준 말을 꼭꼭 씹어삼키며 마음에 각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셔터를 누르고 싶은 참 따뜻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의 발표가 다 끝나고 나는 아이들을 향해 외친다.
"얘들아, 선생님은 이런 시간이 참 따뜻하고 좋아"
그러자 몇몇 아이들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동의표시를 해온다. 방학식이라는 어감이 주는 단어에 시끌벅적함 정신사나움으로 흐지부지 마무리될 뻔 한 방학식 마지막 5교시가 참 의미있고 따뜻하게 마무리 된 순간이었다. 이 또한 내가 아침에 해 준 말이기도 했다.
"얘들아 뭐든 마무리가 제일 중요해, 마무리하는 날 내가 어떤 태도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냈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마음 속에 깊이 기억되고 또 시작도 가뿐해진단다."
나의 말이 귀에 잘 흘러들어간건지 아이들은 1학기의 마무리를 한 편의 글로 잘 완성하고 발표를 통해 하나의 파노라마로 이어가며 다음 2학기를 위한 다짐을 했다. 방학을 하고 나서도 아이들에겐 마지막 5교시가 내내 마음 속에 따뜻하게 남기를.
이제 이 연재도 오늘을 끝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그간 바쁜 일도 있고 집안에도 크고 작은 일이 생겨 연재일을 지키지 못한 일들이 허다하다. 그래도 늘 믿고 기다려주시고 하트로 부족한 내글을 응원해주시던 독자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한 학기동안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을 멋지게 적응해준 아들. 나의 교육관을 지지해주시던 몇몇 따뜻한 학부모님들, 늘 부족한 선생님을 좋다, 훌륭하다, 감사하다는 달콤한 말로 내 주변을 늘 밝게 해주던 우리반 아이들 모두에게 감사를 전한다.
삶이 글을 쓰게 하라는 말이 문득 뇌리에 솟아오른다. 힘든 3월은 내게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닙니다 라는 연재글을 부화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앞으로 내게 어떤 삶들이 주어질지 모르고, 또 그 삶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그 삶이 글을 쓰게 하라는 말은 마음 속 깊게 새기려고 한다. 그나마 불확실한 삶에서 확실하게 쓸 수 있는 건 글 하나이니까.
이 연재글도 마무리를 잘하면 다음 연재글도 더없이 가뿐하게 시작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불확실한 삶이지만 그 불확실함을 에너지로 삼아 함께 나아가보아요 우리.
그동안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