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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ug 13. 2024

당신이 힘들 때 생각나는 편의점 음식은 무엇인가요

언제나 불을 밝히고 기다리는 편의점, 그곳이 주는 치유효과

 “매일 행복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있어“


 책의 앞표지에서 가장 먼저,그리고 제일 오래 눈길이 간 문구다. 그림체도 사실적인데다 우리 집 남매들이 좋아하는 편의점을 주배경으로 한 그림책이라 도서관서가에서 주저 앉고 빼들어왔다.


  이 그림책은 현명,민채,인해라는 세 명의 스토리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있다. 동생이 얄미워 짜증이 난 현명,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선생님으로 인해 화가 난 민채,캠핑 약속을 해 놓곤 일이 바빠 지키지 못하는 아빠로 인해 화가 난 인해.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이유는 다르지만 이들이 편의점으로 달려가 마음을 풀어주는 음식을 먹으며 딱딱했던 마음이 말랑말랑 풀어지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다보니 먼지쌓인 내 마음 속 보물창고 속 추억들이 하나 둘 꺼내어진다. 인생의 굴곡이 찾아오던 힘든시기마다 나도 편의점 음식에 의지하며 그 굴곡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넘긴 기억이 있어 이 그림책이 더 깊이 있게 와닿았다.


 편의점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중학교 3학년 시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시골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나. 그 무게가 참 묵직하게 느껴지던 나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끼니도 거르고 교과서를 달달 외우곤 했다. 몇 시간씩 공부를 하다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밀려올때면 나는 걸어서 5분거리인 편의점으로 달려가 최애 음식이던 튀김우동을 사서 먹곤 했다.

 검은색 표지에 흰색 바탕에 분홍색 회오리 모양의 어묵과 연갈색 튀김이 올려진 내 최애 컵라면. 온기가 느껴지는 컵라면을 양손으로 모아쥐고 도서관 야외 벤치로 돌아와 그곳에서 먹곤 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도서관 고무나무 벤치에 앉아서 모락모락 김나는 라면을 호호 불어 입안으로 삼킬때면 속이 뜨끈하게 데워지며 세상 근심이 달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 3시절, 수능준비로 독서실에서 새벽 두시까지 머물던 그때. 수학정석 심화문제가 풀리지 앉아 머리를 쥐어뜯다 책상에 한 웅큼의 머릿카락이 뭉쳐지는 건 내게 편의점으로 가라는 신호였다. 유독 당이 떨어지던 그 시기,편의점으로 달려가 내가 처음으로 집는 간식은 바로 아몬드 초코볼. 진갈색 바탕의 사각박스 안에 한 알씩 자리하던 영롱한 아몬드 초코볼. 그걸 사서 독서실에 가는 길에 한 알씩 입에 오도독 오도독 씹다보면 수능에 대한 압박감으로 묵직해진 마음이 잠시나마 가벼워진 착각이 들었다.

 그 이후, 임용고시 준비하던 시절. 교사라는 꿈을 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밤늦게 까지 공부하다 보면 입안이 늘 씁쓸했다. 갑갑한 도서관에서 나와 별을 보며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나의 즐거움은 바로 기숙사 1층의 편의점에 가는 것이었다. 씁쓸한 입맛을 달게 만드는 마성의 음료. 000 드링킹 요구르트 딸기맛. 그 당시 내 최애 음료였다.  하얀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씌여있던 그 음료.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도서관의 탁한 공기를 마시느라 쓰던 입안이 한 순간 상콤달달함으로 코팅되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론 편의점을 무심히 보아넘기다 다시 절실한 마음으로 그곳을 붙잡게 된 것은 둘째를 출산하고 나서였다. 갓 태어난 둘째에 대한 질투가 날로 심해져 하루에도 몇번 짜증을 부리는 첫째, 엄마가 잠시라도 사라지면 목청 터져라 울고 밥도 늘 거부해서 나를 몸살나게 했던 둘째. 두 아이는 번갈아가며 매일매일 엄마라는 존재의 무게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한번은 그 모든 상황이 버거워 퇴근한 남편에게 그런 아이들을 떠밀듯  내맡기고 밖으로 무작정 나왔다. 어둠이 묵직하게 내려앉은 겨울 밤. 정처없이 걷던 내게 그 어떤 별빛보다 밝은 빛이 나를 불렀다. 빛을 따라 걸어간 그곳은 바로 편의점이었다. 24시간 연중무휴 환히 불을 밝히는 편의점. 그곳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자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고마운 곳이었다.

 그제서야 저녁을 안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한 나는 흐린 눈으로 빵코너를 스르륵 훑었다. 그러다 내 눈에 꽂힌 핫한 그빵. 구하기 어려워 잘 못먹는다는 그 빵이 마치 나를 위해 기다렸다는 득의양양한 자태로 존재를 뽐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주저없이 그 빵을 집어들곤 계산대로 향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00우유 생크림빵. 마치 6개월 된 딸아이를 안은 것 처럼 가슴에 단단히 품고 집 앞 벤치로 가 앉았다. 빵봉지를 조심스레 벗기고 한 입 물어베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폭신한 빵피 사이로 보드랍게 불거져 나오던 생크림. 입안에 감겨드는 그 부드러운 달달함에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황홀경에 젖었더랬다.

 그렇게 내 인생의 고비마다 찾았던 편의점, 그리고 그때마다 내 몸과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던 힐링 음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잊고 있던 편의점에 대한 기억을 우연히 만난 그림책을 통해 하나 둘 눈앞으로 불러보으니 다시금 마음이 몰랑몰랑해졌다.

 책 뒷표지 편의점 뒷모습으로 표현된 그림에 있는 문장이 그런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울뚝불뚝하던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그림책 말고도 유명했던 소설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최근 읽은 일본 소설 바다가 보이는 편의점 등 편의점 관련 힐링에세이가 꽤나 많다. 편의점은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기도 하고, 그리고 저 그림책 세 아이들 처럼 서로 가슴에 품고 있는 사연들은 다르지만 누구든 편안히 들러가는 이곳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고 먹으며 울뚝불뚝한 마음이 말랑해지는 건 모두가 같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편의점 러버 아이의 하원길.오늘 유독 학원 숙제가 많아 두 어깨가 쳐진 아들. 아들에게 조용히 집 앞 편의점을 가르킨다. 내 손길을 따라간 아이의 눈망울이 크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진다.

 “오늘은 뭐 고를거야? 젤리? 감자칩?”

 내 말에 ”비밀“이라며 잽싸게 내 손을 놓고 편의점으로 뛰어들어간다.

 오늘 아이가 고르며 힐링받을 편의점 음식은 뭘까? 기분좋은 의문부호를 품고 아이를 뒤따른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위로받고 힐링받을 수 있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며.


 “당신이 힘들 때 찾는 편의점 최애음식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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