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책임지는 누군가의 애씀으로 우리는 밝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이 잘 오지 않는 그런 밤도 있어. 그럴 때면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봐.”
그림책 우리가 잠든 사이에에서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부분이다.
얼마 전, 전날 있었던 복잡한 사건으로 전에 없이 눈이 일찍 떠져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열심히 아파트 주변을 빗질하는 경비원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내게 안녕하세요 라고 밝게 인사하시고선 다시 등을 돌려 허리를 굽히고 빗질을 이어가시던 아저씨.
고요한 새벽이라 날카롭게 울러퍼지는 아저씨의 빗질 소리를 등뒤로 하고 나는 가던 길을 이어나갔다.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일을 정리할 겸 나는 선선한 가을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힘껏 뛰고선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 바람에 나뒹구는 박스를 열심히 주워 분리수거 자루에 담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이는 그 모습에 나는 왠지 마음이 뭉근해져 왔다. 남들 다 자고 있는 새벽. 홀로 깨어 있는 사람이 나 뿐만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뭔가 위안이 되는 동시에 남들이 다 꺼리는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내고 계신 모습에 가슴이 찡해왔다.
집으로 돌아오며 가슴 가득 아까 본 아저씨의 모습을 담아왔다. 해결되지 않은 복잡한 일로 자꾸 뒷걸음쳐지는 출근길이 될 뻔 했으나 아저씨의 힘찬 새벽 모습을 보며 나도 두 주먹 불끈 쥐고 앞으로 나아갔다. 매일 남들이 잠든 새벽에 홀로 깨어 전 날 더러워진 잔해를 치우면서도 내게 밝게 인사를 던지시는 아저씨의 모습이 내겐 뭉크의 태양이라는 작품 속 밝은 태양처럼 느껴졌달까.
그림책 우리가 잠든 사이를 읽으며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고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경비아저씨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홀로 깨어 어둠과 맞서며 자신의 생계 전선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림책 속에선 밤에 일하는 다양한 직업이 언급된다. 혹시 모를 화재에 대비해 24시간 대기하는 소방서와 긴급한 환자를 돌보는 병원, 화물을 실어나르는 택배기사. 24시간 편의점과 식당. 자주 깨어 젖을 찾는 신생아를 돌보는 부모 등. 보기만 해도 가슴 뭉클한 장면들이 그림과 글로 실려있다.
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읽으며 부모님들 중 혹시 밤에 일하는 분이 있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하나 둘 손을 드는 아이들. 나는 잠시 애처로운 눈빛이 되어 아이들의 발표를 잠자코 듣는다. 엄마가 간호사라는 우리반 00이는, “엄마는 간호사시라 자주 야간 근무를 해요. 한 번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자꾸 현관 비번을 틀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그랬던 거 같아 마음이 좀 아팠어요” 그 말에 아이들은 잠시 숙연해진다.
뒤이어 조용히 손을 드는 아빠가 소방관이라는 우리반 00이, “새벽에 연락을 받고 아빠가 급히 나간 적이 있었어요. 그러고 제가 학교 갈 때 까지 아빠는 집에 안왔어요. 그날 잠을 못잤던 기억이 있어요”
우리가 잠든 사이 비로소 일을 시작하시는 부모님에 대한 생생한 목격담이 이어지자 반 아이들이 모두 나와 같은 애처로운 눈빛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신생아를 돌보느라 잠못자던 몇 년 전 일들이 떠올랐다. 유독 잠에서 자주 깨던 둘째아이, 모유수유를 하던 터라 엄마만 찾던 터라 나는 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아이와 나만 홀로 깨어 젖을 물리고 또 소화시키고. 다시 물리고. 수유의 굴레 속에 나는 매일 밤이 오는 게 두려웠다. 그로 인해 나는 온 몸에 가시를 세우고 살았더랬다. 홀로 밤과 사투하던 무수한 지난 날을 그나마 버티게 해주었던 건 바로 밤에 같이 깨어 연락을 주고 받던 조리원 동기들이었다. 모두가 잠든 사이 나만 꺠어있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은 어두컴컴한 색의 밤이 조금은 옅어지게끔 느껴지게 했으니까.
가끔 밤에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이 있다. 특히나 해결되지 않은 복잡한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있을 때는 잠들려고 누운 침대가 딱딱한 바위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그럴때면 이제 나도 그림책 속에서 일러준대로 해봐야겠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엔 홀로 깨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봐야겠다. 내가 잠들려고 누운 그 순간,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며 자신의 생계전선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편안히 꿈나라로 갈 수 있는 것은 바로 밤을 책임지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의 애씀 덕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출근길 문 앞에 놓인 로켓프레시 박스. 그리고 반들한 엘리베이터 거울. 코 끝에 들어온 상쾌한 공기.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아파트 보도블럭. 늘 불이 밝혀진 편의점.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잠든 사이 누군가가 밤을 틈타서 열심히 해낸 일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차오른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밤이 가끔 괴로워도, 밤을 지키는 사람을 떠올리며 감사히 잠을 청해봐야지.
그리고 마음 속으로 조용히 응원할테다.
“당신들이 열심히 책임져주어 말끔해진 아침에 감사하며, 이젠 우리가 그 아침을 책임질테니 당신들은 포근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기분 좋은 꿈을 꾸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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