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잘하는 방법은 바로,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그건 바로 펑 아저씨가 자신의 선택을 좋아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스스로 내린 결정이니까요
이제 펑 아저씨는 고민하던 순간들도 모두 소중히 여기게 되었답니다.”
그림책 펑아저씨의 일부 내용이다. 여느 때처럼 도서관엘 갔다가 아들이 펑 이라는 이름에 이끌렸는지 재미있어 보인다며 빌려온 책. 내 스타일의 그림책은 아니라 며칠째 소파 한 구석에 며칠 째 책장이 열리지 않은 채 방치되길 수일. 아들과 주말을 보내던 중 마침 책이 눈에 띄어 읽어보기 시작했다. 단순한 그림책이거니 넘겨짚었는데 생각보다 철학적인 의미가 있는 그림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살아가는 동안 수시로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 점심을 뭐먹을까 하는 사소한 고민에서부터 대학진학, 직업이나 배우자 선택 등 중대한 결정까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선택이라는 덫에서 한시라도 놓여날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녹차라떼를 마실까 카페라뗴를 마실까 하는 고민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책의 내용은 선택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펑아저씨의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선택이 인생최대의 고민인 펑아저씨는 발명가라는 직업답게 선택을 대신해주는 당근할아버지를 발명해낸다. 처음에는 자신의 선택을 대신해주는 당근할아버지 덕에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 행복해한다. 점심식사나 물건 고르기 등에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 어느 순간 펑아저씨의 모든 것을 지배하려드는 당근할아버지가 펑아저씨가 고민하지 않는 것마저도 참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입기 싫은 당근 옷까지 억지로 입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지고야 만다.
그제서야 일이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절감한 펑아저씨는 당근 할아버지를 원래 모습대로 되돌려놓고, 다시 펑아저씨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물론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 펑아저씨가 겪는 선택의 어려움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진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자신의 선택을 소중히 여기고 선택을 위해 들인 고민하던 순간들도 소중하다는 것을 뼛속깊이 깨닫게 된다.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마음에 쿵 하고 무언가가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고민하던 순간들도 소중히 여긴다라. 그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 문장을 몇번이고 곱씹어보며 내 자신의 선택의 역사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껏 나는, 엄마의 입에서 으레껏 나왔던 ‘엄마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을 맹신하며 살아왔다. 학원도 학교도 모두 엄마가 좋다는 곳이라면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따랐던 딸이었으니까. 펑 아저씨처럼 선택을 하는 데 오랜시간이 걸리는 성격이라 당근할아버지 역할의 엄마가 해주는 선택은 그야말로 내게 달콤한 꿀과도 같았달까.
나를 지금에 이르게 한 교육대학교 진학도 엄마가 밤새워가며 며칠간 지난한 노력을 해준 결과였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교에서 나는 난생처음 엄마의 선택에 불만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엔 머리아프게 고민하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학교에 진학해 다니며 이곳이 진짜 내가 원하는 곳인가? 내 꿈과 맞는 곳인가? 갑작스런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한 선택이 아니니 가끔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게 4년을 다니면서 다행히 잘 적응해서 현재 교사로서의 직업에 이르게 되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 자신과 관련된 선택은 오롯이 내 자신이 해야만 선택을 대신해준 누군가를 하릴없이 원망하지 않게 되고 또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수도 있는 거라고, 그리고 선택을 위해 고통스럽게 고민하는 그 순간순간이 더 값진 것이라고 말이다.
대학교 이후 더 이상 엄마의 선택에 의존할 수 없는 문제들이 시시각각 나를 덮쳐왔다. 가장 처음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은 순간은 바로. 임고 후 지역선택 문제. 그 당시엔 지역선택이 여러개 가능한 시절이라 나는 충남과 대전 두 지역을 지망한 상태였다. 늘 그래왔듯 엄마에게 전화해 어디로 가야할까?라고 묻는 내게 엄마는 처음으로 단호히 내게 말했다. “그건 네가 제일 잘알지. 평생 근무해야 하는 곳인데 니가 선택해야 하는 거란다‘
그 말이 내 가슴속을 깊이 파고들어 번개처럼 번쩍 내 의식을 깨웠다. 몇날 몇일을 잠설쳐가며 고민한 뒤 겨우 선택을 마칠 수 있었고, 처음으로 내 손으로 한 선택에 가슴이 충만해지기까지 했다. 물론 그 후 그 지역이 근무하기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 다시 시험을 보자는 선택을 해서 지역을 옮겨왔지만 그때 혼자서 골머리 앓으며 고민했던 그 순간이 아직까지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의 고통스러운 고민의 순간이 내 내부에 단단하게 응어리져 삶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기에.
그 이후로도 나는 무수한 선택에 시달렸고 그 때마다 처음 내가 진심으로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하고 선택한 순간을 떠올려가며 최대한 나의 내면의 소리를 귀기울여 선택을 해나갔다. 이를테면 결혼적령기엔 이 사람과 결혼하는게 맞을까? 학교에서 매년 학년 선택을 할 때 몇 학년이 좋을 까 등의 선택 말이다. 물론 내가 한 모든 선택이 모두 최선의 선택인 것만은 아니었다. 선택의 순간이 많은 만큼 되돌리고 싶은 후회의 순간도 비례하여 많아지니까. 하지만 펑아저씨가 마지막에 깨달은 것처럼 내가 한 선택이니까 내 선택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선택을 하고 많은 후회를 하는 그 과정에서 깨닫는 일도 많았으니까. 그 깨달음이 내게 점점 좋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으니까.
아이도 가끔 자신이 펑아저씨가 되어 내게 당근할아버지 역할을 요구하곤 한다. 그림을 그리다가도 어떤 색을 칠해야 좋은지 묻고, 대형마트에 가서 과자를 고르라고 하면 어떤 게 나은지 묻고 하는 자잘한 선택들 말이다. 그런 어린 아들에게 그리고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 여전히 선택은 어려운 내게 이런 말을 동시에 전해주려고 한다.
”그럴 땐 네 속의 작은 아이에게 물어봐, 어떤 색을 칠해야 너의 마음에 쏙드는 그림이 나올지, 무엇을 먹어야 입이 즐겁고 행복할지 말이야. 네 속에 진짜 답이 있단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고민을 하는 순간조차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해. 후회해도 좋으니 직접 선택해보자. 그렇게 한 선택은 후회를 남기더라도 다음 선택을 할 때 좋은 밑거름이 되어 줄 수 있어“
매 순간 내 앞에 떡하니 가로막아 서는 무수한 선택의 순간들이 나를 옭아매려 할 때 당근할아버지를 부르는 대신, 내 마음의 소리에 활짝 귀기울여보는 것이 어떨까?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언젠가 내가 진짜 원하는 소리를 듣고 선택근육이 단단해지는 날이 올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