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훈계를 관심과 사랑으로 느꼈던 고마운 아이에게서 희망을 보다
월요일 아침, 무겁게 발걸음을 떼어 교실로 들어왔는데 책상 위에 놓은 빼빼로와 노란색 포스트 잇에 쓰인 메세지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존경하는 선생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 메세지의 주인공은 바로 지난 주, 내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우리 반 장난꾸러기 남자아이였기때문이다. 지난 주와 달리 아침시간에 바른 자세로 독서록을 쓰고 있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지난주 금요일, 아침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이 주 전부터 아이는 아침시간에 늘 멍을 때리고 앉아 아침과제인 독서록도 쓰는 둥 마는 둥했다. 그런 아이에게 몇 번 할 말을 삼키다 금요일에 그 말들이 급류처럼 터져나오고야 말았다. 그날은 전날 못쓴 국어오답노트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날. 잠시 볼일이 있어 연구실을 다녀왔는데 그때까지도 아이는 단 한 자도 쓰지 않은 채 빈 노트만 수 십분째 노려보고 있던 중이었다. 15분 째 아이는 또 제자리에서 멍을 때리고 있었던 것. 나는 더 이상 지켜볼 수 만은 없다는 생각에 호흡을 한 번 고르고 아이에게 낮은 어조로 말한다.
"노트와 시험지들고 잠깐 밖으로 나와"
그 말에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고 장난스러운 태도를 취하던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 빈 교실에서 이런 저런 훈계를 늘어놓는다.
"선생님이 등교한 직후 부터 너에게 아까부터 계속 오답노트를 쓰라고 했잖니, 한 자도 쓰지 않고 있었다는 건 너의 일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일이야. 시간을 허투로 보낸 게 지금 하루 이틀일이 아니지? 다른 것보다 너의 일을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는 건 더 이상 선생님으로서 두고 볼 수 없어. 나의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아침시간에는 무조건 활동시작하기. 카이스트가 목표잖아. 그 목표를 이루려면 이런 사소한 행동도 지킬 수 있어야 해. 책임지는 의미로 두 번씩 오답노트 쓰고 검사맡으러 와"
10분 여쯤 지났을까? 아이는 바른 글씨로 오답노트를 다 작성한 뒤 내게 검사를 맡았다. 10분이면 될 일을 아이는 어제부터 여지껏 긴 시간을 끌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땐 서로 얼굴을 붉히는 한이 있어도 할말은 하고 쓴소리도 들으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13년의 교직생활을 통해 절감하는 사실이다.
그 일 이후 돌아온 월요일. 나는 책상 위 빼빼로와 메세지를 보며 가슴 한 곳이 찡하게 울려왔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상하게 감사했다. 나의 훈계를 그저 자신을 폄훼한다는 기분 나쁜 무언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느끼고 그런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까지 말해주는 아이. 지난 주 금요일과 다르게 열심히 독서를 하고 있는 귀여운 뒤통수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사실 월요일 출근 길은 그 어느때보다 무거웠다. 지난 주에 pd수첩에 방영된 호랑이 스티커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당한 교육행위로서 훈계를 한 모든 것이 그 누군가에게는 그저 기분나쁜 것으로 인식되어 사사건건 민원을 넣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가슴에 무거운 돌멩이가 탁 걸린 듯 묵직해져 왔다. 그리고 거푸 한숨이 나왔다. 앞으로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은 아이들에 대해 어떠한 훈계도 하지 말라는 말인가 싶어서. 그리고 정스럽게 건넨 초코간식이 불량식품으로 탈바꿈되면서 아이들에게 그 어떤 간식도 주기 꺼려지는 팍팍한 현실이 다가올 것 만 같아서. 가슴에 얹힌 돌멩이는 영영 빠져나가지 못한 채 몸집만 불려나갈 것 같아 앞으로의 교직생활이 두려워졌다.
하지만 오늘 책상 위에 놓인 빼빼로와 그보다 더 값진 메세지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학교에는 이렇게 마음을 예쁘게 써주는 아이들이 많구나 하고 말이다. 나의 훈계를 자신이 앞으로 더 성장하게 해주게끔 만드는 고마운 것으로 생각하고 그 고마움을 작은 빼빼로에 담은 아이를 보며 나는 지난 주 호랑이스티커 영상을 보며 가슴에 얹힌 무거운 돌멩이가 일순 가벼워져옴을 느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요즘 학교 현장엔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은 지라 이런 아이들의 행동하나하나가 당연한 것이 아닌 고맙고 기특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 영상에 따르면 나는 매일 아동학대의 위험을 무릅쓰고 출근하는 교사다. 출근 하는 길 계단을 뛰어오르는 아이들. 멀쩡한 다리로 학교 엘레베이터를 히죽히죽 웃으며 타는 한무리의 학생들. 학교 한 구석에서 스마트폰을 켜고 게임을 하는 아이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속어들. 교실에서 위험한 물건을 들고 장난 치는 아이들. 이 모든 훈계의 상황에서도 아동학대라는 큰 위험을 무릅쓰고 쓴소리를 해야 한 다는 사실에 거푸 한숨이 나온다. 내 안위를 위해선 턱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속으로 꿀꺽 삼켜야하려나 그런 생각도 든다.어쩌다 교육현장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그래도 나는 선생님의 훈계를 고맙게 받아들이고 마음담긴 포스트잇 쪽지를 건네는 우리 반 아이같은 예쁜 아이들이 많다고 믿고, 그 아이들을 위해 교사로서 필요한 말은 꼭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런 아이들이 세상에 많아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내놓는 부정적인 기운이 그나마도 밝게 희석되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고 담임선생님께 한 번 더 물어보며 선생님의 훈계를 자기 자식에 대한 비난으로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급선무이지 않을까 한다.
아이가 준 고마운 빼빼로를 26명의 아이에게 주면서도 "빼빼로 먹으면 안되는 친구 없지?"하고 물어야 하는 현실도 조금 팍팍하지만, 아이들이 가진 맑은 마음을 믿고 나아가보련다.
출근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다른 학년과 반아이들. 나는 조금 귀찮아도 다음의 말을 꼭 하고 지나갈테다.
"얘들아, 엘레베이터는 다리 아픈 사람이랑 무거운 짐을 든 사람만 타는 거야, 복도와 계단에서 뛰지 마. 욕설과 비속어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돼. 아무리 방과 후라도 복도에서 큰소리 켜고 휴대폰 게임을 해서는 안돼."
얘들아 이런 건 아동학대가 아닌, 정당한 훈계의 말이란다.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 잘못된 것들은 인정하고 고쳐나가보자.
그리고 정당한 교육행위에 대한 조치를 마련해 줘서 억울하게 아동학대로 내몰리는 선생님들이 없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