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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08. 2024

평일 독박에서 깨달은 의외의 사실은

나만큼이나 당신도 애쓰고 있었구나 라는 것.  평소 고마움을 표현하기


 남편의 평일 회식은 내겐 늘 달갑지 않은 불청객과도 다름없다. 이 사실을 뼛속깊이 인지하고 있는 남편. 충격을 희석시켜주려는 듯 예방주사를 놓는 심경으로 회식 일주일 전부터 바로 전 날까지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 사실을 주지시켜주었다. 그리고 어제. 대망의 남편의 회식날. 나는 학교 문을 나서며 두 손을 불끈 쥐며 큰 다짐을 하고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둘째 아이 하원 전, 집으로 들어가 손에 닥치는 대로 대충 집을 정돈한 뒤. 둘째 아이픽업에 나섰다. 늘 아빠가 오는 것에 익숙해진 둘째는 나의 방문에 살짝 놀란 토끼눈을 하고 보더니 금세 방방 뛰며 좋아했다. 다음 스케쥴은 태권도차를 타고 하원하는 첫째를 지하주차장에서 맞이하기. 아이가 노란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게 외친다.


 “엄마 편의점가요”


 아이들은 남편의 회식 날이면 엄마와 함께 편의점을 가는 것이 머릿속에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잡혔다. 나는 양손을 두 아이의 각 오른손에 헌납하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물만난 물고기처럼 과자를 고르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즉석식품코너에서 평소 눈독들이던 로제떡볶이를 하나 집어든다. 과자와 함께 계산한 뒤 집으로 가는 길. 내 발은 물먹은 솜마냥 한 발 한 발 떼기가 참 무겁다.

 벌써 사위는 어둑해져가고 나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의 가방을 한 쪽에 내팽개쳐 두고 샤워장으로 두 아이를 데려간다. 샴푸캡을 나란히 씌우고 물을 번갈아 뿌리며 5분 만에 샤워를 마치고 크림바르기, 머리말리기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한결 말끔해진 아이들 둘을 소파 위에 털썩 내려놓는다.


 팔을 걷어부치고 계란 지단, 햄 두가지를 한 프라이팬에서 구워내고 김밥김을 쓱 펼쳐 참기름 맛소금 깨를 툭툭 털어 단숨에 김밥 세 개를 말아낸다. 평소 김밥내공을 탄탄히 쌓아놓은 덕에 이제 김밥은 식은 죽 먹기. 그릇에 쓱싹 썰어낸 김밥들. 겉면에 참기름을 얹어 매끈해진 김밥은 아이들 입 속으로 매끄럽게 흘러든다.


나는 김밥에 기대에 샤워장으로 내 한 몸을 씻으러 헐레벌떡 들어간다. 평소와 다르게 5분이나 단축된 샤워시간. 식탁 위 빈 그릇을 보며 큰 산을 하나 넘은 느낌처럼 마음이 개운해진다.

 

 다음 관문, 첫째 아이 숙제봐주기. 식탁에서 한쪽눈은 아이의 숙제에 고정하고 다른 한 쪽 눈은 재잘거리는 둘째를 향해있다. 둘째의 재잘거림을 비지엠으로 삼아 첫째의 숙제는 마무리되고 잠시 초점을 잃은 눈은 둘째의 노란 가방에 머문다. 아차차 식판. 서둘러 하츄핑 무늬의 식판을 꺼내 설거지를 하고 거실 한 켠 허물처럼 벗어놓은 태권도 도복을 세탁기에 던져넣고 급속으로 세탁기를 돌린다.


 그제서야 나는 편의점에서 내몫으로 사온 떡볶이를 전자렌지에 데우고 잠시 의자에 털썩 앉는다. 렌지 틈으로 떡볶이의 달큰함이 사방으로 퍼져오자 멈췄던 내 위장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중간중간 눈에 드는 집안일의 잔재 하나 처리하며 떡볶이 한 입, 둘째 하츄핑 인형놀이 영혼없이 응해주며 떡볶이 두 입. 그렇게 하루 일과가 떡볶이와 함께  매콤 달달하게 마무리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두 아이의 양치를 끝내고 두 아이를 양옆에 끼고 구름빵 그림책을 읽어주니 어느 새 스스르 잠든 두 아이들. 적요한 침실을 달게 만끽하며 나는 그제서야 오늘 하루 종일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족쇄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제는 야근에 특근까지 했음에도 남편에게 화가 나지 않는 날이었다. 모든 걸 혼자 감당해내며 새롭게 느낀 사실때문이었다. 남편이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구나 하고. 평소엔 크게 느끼지 못했던 그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을 분초로 원망해야 할 평일 독박으로 인해 뼛속 깊이 절감하게 되었다는 것.

 나는 늘 나만 많은 것을 하고 있다고 새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두 아이가 잠들고 정적만이 감도는 침실에서 나는 남편의 애씀을 다시금 느꼈고, 마음 속에 미움보다는 고마움이 한 가득 부풀어올랐다.


 퇴근 후 이어진 야근과 특근에 방 안의 제습기 마냥 피로를 가득 흡수해 몸은 1.5배는 무거웠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실에서 나와 바깥의 노란 조명등 두 개를 살짝 켜놓고 식탁 위 마구 흐트러져있는 과자를 봉지에 담아 정리해놓는다. 평소에 표현하지 못한 말을 그 작은 행위에 담아본다.

 당신 평소에 참 많은 걸 해주었구나 고마워     


 생각보다 우리는 서로 많은 것을 빚지고 살았네. 앞으로 서로의 회식 때는 불만 대신 고마움을 느끼게끔 나도 평소에 잘 해두어야지. 칭찬통장 적립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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