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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13. 2024

비눗방울 마술사가 우리에게 만들어주고 간 것은

꿈과 희망을 늘 가슴 속에 비눗방울 처럼 만들어가라는 것

 지난 주말은 이상하게 무기력하고  기분이 무겁게 가라앉는 그런 날이었다. 온 몸이 물에 푹젖은 듯 축축 쳐지는 날이었지만 아들 딸이 유튜브만 보고 있는 장면은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지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출을 감행했다.


 집 근처 국화축제가 열리는 공원. 평소 같았으면 사진기를 여기저기 들이대며 손이 바빴을 텐데 형형색색의 국화도 무기력한 나를 일으켜세우지 못했다. 무기력할 땐 밖으로 나가면 나아진다는데 하나도 나아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내 그런 부정적인 기운이 아들에게도 전달되었는지 아들도 가는 내내 툴툴, 딸도 내내 징징. 외출을 제안한 남편도 표정이 어둑어둑.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사진도 찍고 국화내음을 맡으며 행복해하는 가족들 속 우리만 이방인 같았다. 무거운 발걸음을 하나하나 내딛으며 정처없이 걷던 중 놀이터 발견. 내내 툴툴하던 아들은 한달음에 그곳으로 뛰어들어가 흙놀이에 심취하고, 잠투정 하던 딸을 안고 있던 남편은 저 멀리 벤치에 앉고, 나는 근처를 배회했다. 저 멀리 무대 위에서 우스꽝스런 복장을 하고 공연을 하는 사람이 내 시야에 든다.


  미키마우스,강아지 등 마술사의 손끝에서 다양한 풍선 인형들이 탄생하는 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보다 문득 흙놀이를 하고 있을 아들이 퍼뜩 떠올랐고,나는 한달음에 아들이 놀던 놀이터로 달려가 손을 잡고 공연장으로 데려왔다. 마침 비눗방울 공연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는지 대형 비눗물과 트레이가 무대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다양한 프레임의 대형 비눗방울 만들기 기구를 하나씩들고 비눗물에 정성스레 묻혀 현란한 솜씨로 비눗방울을 만들어가는 모습. 비눗방울 하나 만드는 데도 싸이 노래를 중간중간 틀어가며 한껏 심취해서 열정적으로 만드는 모습에 잠시 머물다 가려던 나와 아들은 어느새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울리던 전화벨 소리, 딸이 깼는지 남편은 내 행방을 물었고 나는 공연이 있으니 얼른 이리로 오라고 전한다. 전화를 끊고 무대를 돌아보니 공연의 하이라이트 대형 비눗방울 만들기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 순간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두 번의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객의 응원을 유도했다.


 모두의 염원 속 세번째 도전. 마술사가 심혈을 기울인 끝에 드디어 공연장 절반크기의 대형비눗방울 완성. 비눗방울이 몸집을 부풀리며 허공에 서서히 퍼져나가자 여기저기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길게 이어졌다. 박수가 잦아들고 잠시 정적이 찾아온 찰나, 공연내내 얼굴 만면에 장난끼를 잔뜩 묻혀 시종일관 너스레를 떨며 말하던 마술사가 짐짓 진지한 말투로객석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놓아 외친다.


 “여러분 저는 꿈이 하나 있어요. 이보다 더 큰 무대에 서는 거예요. 이렇게 작은 무대에서도 꾸준히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날이 오겠죠?


 갑작스런 꿈 고백에 조금 당황한 듯 다시 정적이 흐르다 아이들의 네에 하는 응원의 함성이 폭죽 터지듯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나는 뜬금없이 귀를 뚫고 들어온 마술사의 꿈 고백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웅장해져왔다. 누군가의 눈엔 한낱 비눗방울에 지나지 않는 사소한 무언가지만, 그 비눗방울엔 마술사의 큰 꿈이 어려있었고,그리고 꿈을 가지고 임하면 비눗방울 만드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사실. 삶의 정수같은 진리를 30분가량 땀 흘리며 무대에 서서 열정을 다하던 그가 몸소 증명해주었다. 내내 무기력에 빠진 나도 그의 돌연한 꿈 고백에 덩달에 둥실 힘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공연의 말미엔 하늘에 닿을 듯 팔을 뻗어 비눗방울 프레임을 들고 비눗방울을 객석의 모두에게 날려주었다.마침 딸과 남편이 왔고, 딸의 머리 바로 위에 닿을 듯 솟아오르는 비눗방울이 꼭 우리 아이의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맑고 투명한 무언가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찡하고 울렸다.


 아까 무대위에서 모두에게 선언한 마술사의 꿈이 비눗방울을 통해 여기 공연장에 앉은 아이들에게도 전해진 것 같아서. 그리고 그 꿈 고백이 아이들에게도 미래를 향한 밝은 꿈을 가지게 해줄것 같아서. 그리고 무기력한 내게도 어떤 작은 꿈을 품게 해준 것 같아서. 그 짧은순간이 내게 꿈결같이 느껴졌다.


 꿈과 희망이라는 건, 힘든 오늘을 버티게 하고, 다가올 미래를 두려움 대신 설렘과 기대로 바꾸어주는 마법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마법을 나는 오늘 이 공연장에서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날 누군가의 꿈을 실은 비눗방울이 푸르른 가을 하늘 위로 사방팔방 두둥실 떠오르는 모습과 함께 가라앉아 있던 내 작은 꿈과 희망같은 것들도 두둥실 떠오름을 느낀다.


  그날의 공연장 마술사는 어쩌면 자신의 꿈을 이미 이룬게 아닐까. 자신의 꿈을 실은 비눗방울로 백여명이 넘는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과 꿈을 크게 부풀려주었으니까. 이보다 더 큰 무대가 있을까.


 나도 앞으론 늘 가슴 속에 크고 작은 비눗방울을 매일 만들며 살아가야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던 무기력에서 탈피할 수 있는 해답을 공연장에서 우연히 얻었음에 감사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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