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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닌 상이 별거가 되는 순간은 바로

이 세상 나를 가장 잘 알고 칭찬해줄 수 있는 타인은 바로 나.

by 이유미

칭찬만큼 사람의 기분을 일순 하늘로 붕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얼마 전 직원회의시간에 한달 전 있었던 독후감 지도로 받은 상을 수여받았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상인지라 나는 덤덤히 받아들였다. 교감선생님께 상을 건네받는 데 멀리서 작은 환호성소리가 옅게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흘낏 옆을 돌아보니 우리 동학년 선생님 두분이 내게 보내던 환호였다. 멋쩍게 상장을 들고 자리에 털썩 앉는데 흥분한 목소리의 옆반 선생님이 내가 상받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며 서너장의 사진을 전송해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호의에 내 가슴은 잔잔히 따스해져왔다.


이렇게 누군가가 나의 성취에 작게라도 호응해주고 사진까지 찍으며 추켜 올려주면 괜스레 내가 대단한 성취를 이루어낸 것 같아 스스로가 한층 대견해진다.

그리고 어제, 교육청에서 주관한 안전교육에 관한 에세이를 응모한 결과 발표가 났다. 결과는 장려.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한 터라 결과가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서 조금 실망스러웠는데 남편이 보낸 메세지.


"축하해, 썼다하면 다 상이구나 대단한 능력이야"


실망감에 어깨가 축 내려가있는데 불쑥 날아든 메세지가 내 가슴에 날아들어 기분좋은 곡선을 그리며 축 쳐진 어깨를 잠시나마 솟아오르게 만든다. 열심히 해 낸 나의 성과를 정작 그 일을 해낸 장본인은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는 데 오히려 내 주변 인물들이 격하게 축하해주고 응원한다. 그 사실에 잠시 내가 부끄러워진다. 그러면서 참 고마웠다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들이. 자신의 성과도 아닌데 마치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고 축하해주는 그런 사람들은 마음 속에 대체 몇도의 온기를 장착하고 있는 걸까 싶어서.


타고 나길 무덤덤하게 태어난 사람이 바로 나다. 중학교 때 전국연합고사에서 상위 5프로에 든 적이 있었다. 그 때 한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그 결과를 반아이들 앞에서 내게 알렸고 나는 어안이벙벙하며 웃지도 울지도 않는 예의 그 무덤덤한 표정으로 부동자세로 앉아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임마, 좋을 때는 크게 좀 기뻐하고 그래라. 크게 웃기도 하고 소리도 내며 말이다."

그 당시의 나는 속으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게 그렇게 잘한 일일까? 상위 1프로도 아니고 5프로면 그다지 잘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라고. 그때부터였을까? 늘 내 성취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무언가와 비교하며 내 성취를 내리깔고 보곤 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상도 늘 가장 높은 등위, 내가 쓰는 기사도 늘 높은 등급, 브런치 글도 요즘 뜨는 브런치북 순위에 들어야만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가지며 늘 헛헛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오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받은 상도 은상. 그리고 장려. 모두 1등이 아니다. 겉으로는 1등이 중요한 게 아니야. 상을 받았다는 자체가 중요한거지. 그리고 그 상을 받기까지 들였던 지난한 노력이 더 갚진거야. 라고 간신히 나를 달래지만 속은 자꾸 어긋난다. 더 높은 무언가, 남들보다 뛰어난 성취에 목마른 나다. 내 자신이 가장 내게 가혹하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이토록이나 가장 좋은 상, 가장 높은 성취를 갈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던 차에 최근 두 일을 떠올리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작은 성취에도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주는 말이나 칭찬을 해주면 갑자기 나 자신이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어쩌면 더 좋은 상을 받고 싶은 이유도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상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인정욕구인 셈이다.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상이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장려상을 받았음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의 칭찬에 불쑥 자신감이 솟아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학교에서 늘상 만나는 우리 반 아이들도 자신이 한 작은 행위라도 인정을 받으면 대단한 상이라도 받은 양 득의양양해진다. 그런 아이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칭찬해주다보면 그 칭찬은 그 어떤 큰 상에도 견줄 수 없는 대단한 동기부여가 된다. 실제로 늘 지적만 받고 혼이 나던 것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 반 한아이. 그래서 늘 눈에는 불안한 기색이 어려있던 아이. 그 아이가 글씨부터 글솜씨까지 조금이라도 나아진 기미가 보여주면 손톱만큼의 성취에도 칭찬을 해주며 메마른 땅과 같은 아이의 마음에 인정이라는 촉촉한 단비를 뿌려주었다. 그인정들이 알게 모르게 몸에 스며들어갔던 걸까? 학년 말로 갈수록 눈빛이 유순해지고 부드러워짐을 날이 갈 수록 체감한다. 누군가로부터 받는 칭찬과 인정은 그 사람에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우주만큼이나 거대한 힘이라는 사실을 나의 사례, 그리고 아이들의 사례를 보며 절감한다.


돌연 이런 생각이 번갯불처럼 내 머릿속을 치고 들어온다.


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어야 할 아이처럼 생각하면 어떨까 하고.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결과에 개의치않고 누구보다 애쓴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해주어야 할 타인이라고 생각하며 잘했어 수고했어 애썼어 지난 번보다 더 나아졌네 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려주면 어떨까. 그 성취를 해내기까지 들어간 인고의 시간과 뼈아픈 수고는 그 자신만이 가장 잘 알테니까.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인정이 세상 어떤 것 보다 더 강력한 동력이 되는 것을 안다면 말이다.


은상도 장려상도 잘했어. 썼다하면 다 상이구나.그러니 너무 큰 것에만 연연하지 말고 쓰는 삶을 놓치만 마. 충분히 잘하고 애쓰고 있어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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