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을 놀이로 깨닫기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체육이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단번에 환호성을 내지르게 만드는 것은 바로 피구. 피구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이들. 하지만 피구는 어떻게 보면 가장 잔인한 게임이다. 공으로 상대팀을 맞춰서 아웃시켜야만 승리하는 게임. 경쟁형 게임의 가장 대표작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다보면 피구가 끝난 후 늘 아이들은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다. 너 때문에 졌다는 둥, 자꾸 같은 아이들에게만 공을 건네줘서 자신은 한 번도 공격을 못했다는 둥. 좋아하는 게임인 만큼 게임 후 후유증도 크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한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진행한 협력놀이가 내 가슴에 번쩍 날아들었고 돌아오는 체육 시간에 꼭 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출근을 했던 오늘이었다. 화요일 6교시 전담없이 혼자 수업을 이끌어가야 하는 지라 벌써부터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지만 협력놀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들고 출근하니 마음이 든든했다. 2교시 체육시간, 아이들은 당연히 오늘도 피구를 할 것으로 예상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오늘은 다른 놀이를 해보자며 제안했다. 교실 여기저기서 아쉬움의 탄식을 새어나오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하고 풍선을 들어보이며 모둠별로 풍선을 띄우는 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게임방식은 모둠 구성원이 손을 마주잡고 원을 만든 후 띄워주는 풍선을 마주잡은 손으로 허공에 띄우는 게임. 모둠전으로 풍선을 띄운 갯수가 가장 많은 팀이 승리를 거머쥐는 게임이었다. 1모둠부터 차례로 나와 손을 잡는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으레껏 하듯 남여 사이는 어떻게든 손을 안잡으려 손가락을 쥐거나, 소매를 길게 잡아당겨 소매끝을 잡고서 간신히 풍선을 띄운다. 그러다보니 공은 공중으로 날아가지 못한 채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 다른 모둠 학생들은 그 모둠 학생들이 실수를 할 때 마다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른다. 교실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장터로 바뀐다. 그렇게 6모둠까지 마친 뒤, 아이들의 표정은 흑과 백으로 나뉜다.
교실 한 구석에서 한 남자아이의 화난 음성이 들려온다. 아까 아쉽게도 1개를 성공한 팀이다. "너 때문에 망했잖아" 부정적인 말들이 내 귓 속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가장 많은 갯수를 성공한 모둠을 제외핸 5개의 모둠의 어깨가 모두 축 쳐져있다.
순식간에 잿빛으로 바뀌어버린 교실, 나는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자 지금부터 협력전이다. 6개 모둠의 갯수를 모두 합쳐 100개 이상이면 전원 마이쮸 증정"
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여온다. 차가운 냉기가 감돌던 교실에 일순 열기가 화르륵 솟아오른다.
1모둠이 먼저 경기를 진행한다. 아까와는 다르게 서로가 소매를 걷어부치고 손을 단단히 맞잡는다. 아이들의 표정로 의기양양하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1모둠에게 향했고 풍선 하나를 띄울때마다 입을 모아 하나 두울 갯수를 세어준다. 그 목소리들이 아이들의 전의를 더욱 불태운다. 아까 10개를 성공했던 1모둠이 20개를 거뜬히 넘긴다. 그러다 아까 아쉽게 1개를 성공한 3모둠. 아까의 울그락붉으락 하던 얼굴들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얼굴엔 단단한 미소가 어려있다. 단단히 맞잡은 두손, 그 손에서 나온 힘은 풍선을 30개까지 들어올리기에 이른다. 벌써 60개. 그렇게 세모둠을 거쳐 마지막 6모둠의 차례. 현재 합계 89개.여자아이들로만 구성된 6모둠의 아이들의 뺨은 약간 상기되어있다. 모두의 간절한 염원 속에 마치 춤을 추듯 맞잡은 두손들이 너울거리며 풍선을 향해 닿는다. 그렇게 11개째가 되던 순간. 나는 월드컵 4강전에서 보았던 열띤 함성을 또 한 번 느꼈다.
그리고 묘하게, 교실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피부로 체감했다. 늘 피구를 마치고 나서 불평불만이 가득하던 얼굴들이 오늘은 부드럽게 풀어져있었다. 서로를 향해 잘했다고 격려도 해주고 , 어깨를 토닥이기도 하는 등 전에 없던 교실의 풍경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약속대로 마이쮸를 나눠먹으며 교실에는 달콤한 딸기향이 기분좋게 퍼져나갔고, 그보다 더 달디단 아이들의 웃음이 교실을 기분좋게 감싸주었다.
늘 노래를 부르던 피구, 그 순간은 강렬하고 자극적이지만 늘 끝맛이 쓰던 피구와는 다르게 오늘의 놀이는 잔잔해 승리의 쾌감은 덜했지만 그 끝맛은 마이쮸보다 더 달달했다는 사실.
손을 맞잡으며 잠시 느낀 서로의 체온, 그리고 실수를 탓하기 보다 한 마음이 되어 응원하던 그 따스함. 오늘 내가 꼽은 최고의 순간이라 가히 칭할 만 하다,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며 날이 추워질 수록, 삶이 불안정해질 수록 우리는 더욱 더 서로의 손을 꽉 맞잡고 풍선을 함께 띄우고, 서로를 토닥이고 응원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