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해결책 수업을 하며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고 교실 온도도 1도 상승했다
늘상 돌아오는 수업시간, 수많은 수업시간들 속 가끔 아이들과 합이 맞아 마치 한 편의 연극에 빠져들듯 몰입하는 순간이 가끔 찾아올 때가 있다. 어제의 수업이 그랬다. 친구들이 적은 고민에 자신만의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고민해결책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A4 용지를 반으로 접어 한 쪽에는 자신의 고민을 적고, 다른 한 쪽에는 친구들이 그 고민을 읽고 해결방법을 제시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종이를 받아든 아이들은 눈알을 부지런히 굴려가며 연필의 힘을 빌려 자신의 내면 깊숙이 숨겨둔 고민을 흰 지면 위에 투명하게 올려놓기 시작했다. 고민을 써낸 종이가 책상 위에 눈송이처럼 쌓였다. 다음 차례는 고민에 대한 해결방법을 친구들이 써줄 차례. 출석번호 순서대로 아이들은 한 명씩 나와 친구들의 이름을 뽑고, 그 친구의 고민이 적힌 종이를 가져갔다.
마치 중대한 비밀이라도 알게 된 듯 종이를 받아든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 빛이 났다. 자리로 돌아간 아이들은 친구들의 고민을 읽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듯 고심해서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해결책을 적어나갔다. 고요한 교실에서 울러퍼지는 연필이 내는 딱딱소리가 어쩐지 기분좋은 화음으로 들려왔다.
10여분의 시간이 지나고, 고민해결 발표의 시간. 두명의 진행자를 뽑아 라디오 사연을 읽듯 둘이서 번갈아가며 고민과 해결책을 읽어주도록 진행했다. 집에 가기 전 마지막 6교시, 보통 그 시간은 아이들의 집중이 흐트러지게 마련인데 이날은 전에없이 교실의 밀도가 한껏 높아져있다. 아이들의 사연은 다른 생김새 만큼이나 가지각색이었다. 학원 숙제가 많아서, 몸무게가 많이 늘어서, 키가 작아서, 글씨를 바르게 못써서, 배움노트와 독서록 쓰는 게 어려워서 등 아이들의 가슴 속에 꽁꽁 싸매둔 고민들이 일시에 터져나오는 순간들이었다.
가벼이 생각했던 활동인데 생각보다 아이들의 답변이 진심어린데다 깊이 있는 생각까지 더해져 듣다가 가슴이 뭉클뭉클해져왔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고민.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고민이예요. 친구들의 장점을 잘 찾아주는 데 정작 나 자신의 장점을 못찾겠어요"
고작 열한살 된 친구의 고민이라기엔 꽤나 심오한 고민이었다. 또래의 시선에선 과연 어떤 답변을 내놓을까 궁금해 마른 침을 삼키며 해결책에 귀를 쫑긋 세웠다. 답변은 대략 이러했다.
"너 자신을 한번 따스하게 안아보는 게 어때?따뜻한 느낌이 들거야. 그리고 장점을 못찾는 건, 대단한 걸 잘하는 게 장점이 아니라 사소한 장점도 찾아보려고 노력해봐. 글씨를 열심히 쓰고 있는 것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것 이런 것들 말야.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봐.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게 중요해. 그리고 내가 본 너는 성실하고 훌륭한 친구란다 힘을 내렴"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인다라. 아이답지 않은 심오한 조언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근해져왔다. 내가 느낀 감정이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었는지 눈빛에 애틋함이 가득 어려있었다. 뺨에 닿는 교실의 공기가 훈훈해졌다.
다음으론 학원이 너무 많아 늘 피곤하다는 한 아이의 고민. 같은 고민을 가진 아이의 답변은 사뭇 진지했다.
"학원때문에 힘들구나. 나도 그래 친구야. 학원을 다녀오면 지쳐쓰러져. 많이 힘들지? 일단은 엄마에게도 한 번 말씀드려봐. 한 가지만 줄여달라고. 나도 엄마한테 말씀드렸더니 생각해본다고 하셨어. 친구야 같이 힘내자."
자신의 경험을 들어 세상 다정한 충고를 해준 아이의 답변은 추운 겨울을 녹이는 햇살만큼이나 따뜻했다. 서로의 정체를 눈치챈 사연의 주인공과 답변자. 허공에서 두 아이의 눈빛이 만났고 서로를 향해 기분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순간을 포착했다. 내 입가에도 덩달아 미소가 번졌다.
배움노트가 고민이라는 한 아이의 사연엔 배움노트 잘 쓰는 비법이라며 5가지 이상의 자세한 비법을 써놓은 친구도 있었다. 친구가 꼭 고민을 해결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뿍 묻어나오는 글이었다.
아이들의 한 줄짜리 고민사연엔, 한 줄 이상의 고민해결책이 빼곡하게 쓰여있었고 어느 하나 예외없이 친구의 고민에 절실히 공감하고 진심어린 해결책을 내놓는 풍경을 보면서 나는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건조하고 마른 수건같던 고민해결책 종이가 서로의 다정함이 더해지며 금세 촉촉한 수건처럼 변모했다.
한편 나는 아이들이 진행하는 수업을 지켜보며 한 편의 잘 짜여진 연극 한 편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또한 아이들의 진지한 답변들이 어른인 내게 해주는 조언과도 같아서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아직 미숙하고 부족하고 서투른 서로를 향해 조금 덜 서투른 아이들이 내놓은 조언들. 자신과 같은 마음 나이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건네는 조언이기에 자신의 마음에 꼭 맞아들었을 것이다. 활동이 끝나고 소감발표의 시간, 아이들은 친구들의 고민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고. 나만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그리고 겉으로는 완벽해보여도 다들 고민 한 가지씩 있구나 라는 생각에 위안을 받았다고, 그리고 친구들이 자신의 고민에 깊이 공감해주어서 가슴이 충만해졌다는 소감을 남겼다.
나는 이렇게 서로의 마음이 깊이 있게 연결되는 수업이 참 좋다. 마치 26명의 아이들이 고민해결책이라는 하나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26중주를 해낸 것 같은 수업. 최근들어 가장 몰입한 수업이 아닐까 생각했다. 매일 반복되는 지난한 수업의 순간들. 매번 좋은 수업, 집중력 높은 수업은 할 수 없어도 이렇게 한 번씩 아이들과 합이 맞는 순간이 찾아와 밀도있는 수업을 하고 나면 가슴이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아이들에게 교사로서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도 바로 이런 수업을 제공하는 게 아닐까? 딱딱한 이론수업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열어내보이고 진심으로 공감하며 연결감을 느끼게 만드는 수업. 이런 수업을 하고 나면 내 마음도 아이들의 마음도 함께 위안을 받는다.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수업, 점점 추워지는 날씨, 절로 몸이 웅크려지는 요즘같은 때일 수록 시린 가슴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이런 수업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히터도 틀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남기고 간 훈기가 나를 오래도록 감쌌던 어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