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발표에서 일년 간 나의 지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 희열을 느끼다
3월부터 지금껏 우리 반 아이들은 매일 한 줄이라도 쓰는 삶을 살아왔다. 3월을 시작하며 나의 다짐이 매일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었기에 아이들에게도 적용해보자 노력해왔고 차곡차곡 아이들의 마음에 쌓여온 그 결실이 어제 독후감 발표시간에 밝은 빛을 팡팡 터트리듯 터져나왔다. 국어 7단원에 나오는 책을 읽고 인상깊은 부분에 대한 독후감쓰기. 글쓰기 근육이 다져진 아이들은 이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글을 써낸다.물론 아이들의 생김새가 다른 만큼 실력은 천차만별에 내용도 한결같이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을 글에 녹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점심시간, 우리반을 지나가는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입을 대며 말한다.
"선생님 반은 점심시간에 뭘 그렇게 써요? 알림장이 엄청 길던데 아이들이 다 소화해내요?" 라고 놀란 토끼눈을 뜨며 내게 묻곤 해왔다.
나는 그런 의문섞인 물음들에 늘 대답대신 싱긋 웃어보이곤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 어떤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우리만의 활동들이 집약되어 있기에 말이다.
학기 초부터 우리 반은 아침 명언,독서록,배움노트,일기장,알림장 등을 통해 매일 한 줄이라도 쓰는 훈련을 거듭해왔다. 배움노트의 경우 그날 배운 내용을 학습목표와 함께 짧게 남기는 기록인데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매일 안쓰면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찝찝하다고 말한다. 물론 나의 등떠밀림에 한 줄 두 줄 겨우 써내는 아이들도 있지만 매일 한 줄씩은 이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아침 명언은 매일 아침활동안내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그날 그날 다르게 명언을 한 줄 적고 교실이 울릴만큼 우렁우렁하게 읽으며 잠을 깨우며 몸과 마음에 활기를 돋우는 활동.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으나 그 명언을 일기장에, 글쓰기에 활용하며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많아져서 지금껏 꾸준히 해오고 있다.
세줄쓰기는 주제 글쓰기인데 매주 화, 목 하나의 주제를 주고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세 줄의 짧은 생각으로 남기는 활동이다. 12월이 된 지금 무려 백여편이 넘는 기록이 아이들 공책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알림장의 경우 알림사항의 끄트머리에 늘 감사일기와 오늘의 기분과 그 이유를 쓰며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게끔 만든다. 일기쓰기는 매주 한 편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낱낱이 기록해보라는 훈련을 통해 아이들은 제법 하루를 살아내면서 그 일상 속 느낀 감정과 교훈을 꽤나 잘 찾아쓰며 성찰할 줄 아는 태도를 길렀다.
이 일련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자란 글쓰기 근육을 제법 자랑스러워했고, 일년간 꾸준히 단련된 글쓰기 근육으로 국어시간에 글쓰기 단원이 나와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한숨을 내쉬는 학생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가히 큰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로서 근무하면서 국어 시간에 가장 아득해지는 순간도 글쓰기 단원이 나오는 순간. 마치 망망대해를 만난 듯 막막해지지만, 나는 3월부터 아이들과 길러온 글쓰기 근육으로 인해 순풍에 돛을 단 듯 글쓰기라는 중간중간의 암초를 만나도 순조롭게 잘 통과해왔다. 그러다 어제 2학기의 마지막 글쓰기 단원인 7단원을 마주했고, 어제의 수업에서 나는 그간의 노력을 한 번에 보상을 받은 듯 큰 희열을 느꼈다.
아제의 수업을 마치고 3월, 첫 아이들의 독후감을 보고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던 순간이 선연하게 피어올랐다. 줄거리만 반 이상을 채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글, 무색무취의 투명한 물처럼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글. 자신의 마음은 물론 누구의 마음도 울리지 못했던 그런 글들이 어제는 모두 자신을 오롯이 통과해나온 제각각의 다채로운 향기를 풍기며 다른 친구들의 마음에도 큰 울림을 주는 글들이 참 많았다. 3월 줄거리로 반 이상이 채워진 독후감들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 다짐으로 반 이상이 채워졌던 글로 변모했다.
다양한 책에서 아이들 나름의 통찰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들. "큰 시련이 와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면 쉽게 이겨낼 수 있다" "불행이 다가와도 그것을 피할 순 없지만 행운으로 바꾸는 노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해야만 그 마음이 통한다" “어려운 상황에도 용기를 가지고 끈기있게 도전하자”는 깊이있는 말부터 시작해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챙겨야겠다." "친구에게 사과를 할 때 진심을 다해 사과해야겠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겠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에게 관심가지고 말을 먼저 걸어줘야지” 등 생활 속 지켜야 할 지혜까지 책을 읽고 나서 정수만을 뽑는 능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책을 읽고 자신만이 느낀 그 감정과 생각들, 아이들의 순수한 몸과 마음을 고스란히 통과해 나온 따끈한 정수같은 문장들이 교실에 울러퍼질 때 마다 교사인 나는 물론 발표를 듣는 아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렸다. 그 문장들은 기분좋은 진동으로 우리 모두의 가슴을 규모 1정도로 잔잔히 울려주었다.
나는 아이들의 독후감 발표를 듣고 나서, 그간 내가 지도해왔던 모든 활동들이 그 독후감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아 가슴이 울컥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 허공으로 흩어지기만 한 줄 알았던 나의 노력, 알게 모르게 아이들의 가슴에 새겨져 독후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응축되어 나왔던 것이다. 그 쉽지 않은 노력을 꾸준히 따라와줬음에 감사한 어제였다.
글쓰기 발표를 마치고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정말 대단하다. 글쓰기에 대한 선생님의 열정을 닮은거니? 우리가 공책에 한 줄 한 줄 보태가며 꾸준히 이어온 노력이 오늘에서야 보상을 받는 구나. 앞으로도 꾸준히 해서 12월을 잘 갈무리하자 얘들아."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에게도 그 기쁨이 전염되었는 지 26개의 눈동자들이 일순 윤기를 머금고 하나의 빛으로 모여 나를 향해 강렬하게 쏘아대기 시작했다.
가르침은 어떻게든 아이들 몸과 마음에 남는다는 말을 절검하게 되는 순간들이 요즘 부쩍 많다. 나의 진심어린 말 한 마디에, 열정을 가지고 지도하는 손길에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은 더 깊이있게 그것들에 반응하고 더 깊이있게 빨아들인다.
12월도 반 이상이나 지나가고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12월이라고, 이제 학년이 끝나간다고 대충 놓아버리지 말고 지금 교실에서 하고 있는 명언,세줄,배움노트,알림장 이런 것들을 꾸준히 쓰며 한 해를 의미있게 마무리하자고. 오늘 이렇게 너희들이 자신의 마음 뿐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독후감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 꾸준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해온 덕분이라고.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해온 것들은 절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언으로 마무리하며 아이들은 또 한 번 까만 눈동자를 반짝인다. 곧이어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방금 전 까지 보이던 진지한 눈빛들을 인순 장난끼어린 눈빛으로 바꾼 뒤 깔깔대며 쉬는시간의 기분좋은 소란으로 빠져들어간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거나 웃는 순간에도 나는 느낀다. 읽고쓰고발표하는 무수한 수업을 통해 엿본 모습으로 저 아이들의 가슴은 누구보다 뜨겁고 누구보다 열정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도 다짐한다. 내년에 다가올 새 학년 새 학기에도 나는 아이들에게 글쓰기 근육을 단련해주자라는 목표로 올해처럼 꾸준히 지도해야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