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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향해 건네는 다정함의 힘, 꾸준한 연습으로 다정함의 근육기르기

by 이유미

최근 읽은 책 태수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다정함은 지능이다. 그래서 의외로 가장 똑똑한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다. 다정하다는 건 표정이나 말투,속마음처럼 보이지 않는 감각까지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이니까.'

가장 똑똑한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라. 이 구절이 내 마음 속에 불시에 콕 박혀들어와 쉬이 떠나지 않고 마음에 꽤나 오래 머물렀다. 보이지 않는 감각까지 헤아릴 줄 아는 다정함이라는 능력은 하루 이틀만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니 어쩌면 그 어떤 능력보다 우월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정함이라는 단어를 머리에 그리며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우리 아빠였다. 내 유년시절 속 아빠는 삼남매일 우리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늘 다정함으로 일관해오신 분이었다. 퇴근 후 돌아오는 길엔 집전화로 "오늘은 과자 뭐 사갈까?"라고 꼭 물어보시는 분이었고, 퇴근 길 아빠의 손에는 늘 똑같은 과자 세개가 들려있곤 했다. 그리고 매해 겨울이면 아빠의 파란 색 파카 속 따끈한 붕어빵을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했다.


주말이면 늘 근교로 놀러가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며 우리의 모습을 담아주셨고, 고 3 수험시절엔 매일 빠짐없이 독서실 앞으로 데리러 오는 정성을 보이시기도 했다. 그런 아빠 품엔 늘 따끈한 캔커피도 함께였다. 아빠는 그 다정함을 우리뿐만 아니라 주변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종종 나누어주셨다. 티비 속 어려운 아이들의 모습이 나올 때면 꼭 전화 한통을 걸어 도와주시곤 했고, 지나가는 길고양이나 강아지도 무심코 지나치지 못하고 먹이를 주시거나 한 번 꼭 쓰다듬어 주시곤 했으니까. 그래서유년시절을 떠올리면 가슴이 유난히 포근해지는 이유도 이런 다정한 아빠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다정한 아빠를 보고 자란 덕분인지 내 몸 속에도 다정함이 몇 방울 녹아들었나보다. 사람들을 챙기고 싶 고 나누고 싶은 열망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샘솟아 오르니까. 타고난 성격이 무뚝뚝한 편이지만 누군가를 향한 작은 배려나 예쁜 말을 자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따뜻한 마음을 건네면 상대방을 기분 좋게도 만들지만 좋아하는 상대방을 보며 오히려 내 가슴이 더 뜨거워진다는 것을.

다정함에 대해 글을 쓰려다보니 올해들어 내가 가장 잘한 다정함의 목록을 갑자기 떠올리고 싶어졌다. 동료들을 위해 새벽같이 김밥을 싸가거나 고구마를 쪄서 간 일, 퇴근이 늦은 친구의 부탁으로 친구의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 밥도 먹이고 함께 시간을 보내준 일, 아무리 바빠도 26명 아이들의 일기장엔 진심을 담아 긴댓글을 써주며 평소 못다한 마음을 전한 일 등 가까운 사람에게 전한 다정함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더욱 잘 한 일은 바로, 친밀감은 조금 덜하지만 나와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다정함을 베푼 사실이다.


아들의 소풍김밥을 넉넉히 싸서 몇 번을 망설이다 교감 교장선생님께 건넨 일. 너무 의외의 행위에 놀라셨던 교감선생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몇 분 뒤 온 메세지 "요즘 이런 소풍김밥 얻어먹기 흔치 않은데 여기까지 챙겨줘서 너무 가슴이 따뜻해졌다고. 세상 최고의 김밥이었습니다." . 짧은 두 줄에 담긴, 진심으로 감동하신 그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져왔던 기억. 그리고 늘 업무적으로 만나는 행정실 선생님께 수고의 의미를 담아 컵커피를 건넸던 순간. 늘 건조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녀의 얼굴에 화사한 봄꽃이 피는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화장실을 갈 때 마다 마주치는 화장실 청소 여사님께 견과류와 쿠키를 건넸던 순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던 여사님의 주름진 눈가가 활짝 펴지며 "마침 배고팠는데 잘됐어요, 감사해요"라는 말을 듣고선 나도 함께 양손이 불끈 쥐어지며 힘이 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오늘, 상담선생님 주관으로 이루어진 교사 대상 아로마 테라피 힐링 수업. 업무와 학생 케어에 지친 교직원을 위해 직접 교육청에 신청해서 강사님까지 초청해주신 상담선생님께 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와 좋은 수업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쪽지로 감사함을 전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리고 이렇게 제 수고를 알아주시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라는 따듯한 쪽지가 날아들었고 그 쪽지는 오늘 맡은 그 어떤 아로마 향보다 나를 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도 처음엔 누군가에게 다정함을 내보이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 다정함의 능력도 그간 부단한 연습을 통해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받은 다정함이 내게 너무도 따스하게 스며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 따스함을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다정함. 그 다정함을 자주 꺼내어 쓰다보니 마치 근육처럼 다정함의 근육도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당연한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깨닫고 누군가 내게 보낸 호의를 무심코 넘기지 않고 세심하게 감사를 전하기. 유독 힘들어보이는 누군가를 위해 격려의 말과 작은 간식 건네기. 나와 가깝진 않은 사이더라도 가끔 마음을 전하며 내적친밀감 높이기 등 일상생활 속 다정함의 근육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 중에는 유독 이런 다정함의 능력을 갖춘 아이들이 많다. 6교시를 오롯이 혼자 수업해야하는 화요일 아침엔 어김없이 힘내라는 메세지와 작은 간식 몇개가 놓여져있고, 전날 하교때 유독 피로한 선생님의 표정을 본 아이들은 다음 날 예쁜 그림과 감사메세지를 쓴 종이를 올려놓곤 한다. 그리고 알림장 감사일기엔 늘 수업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는 내용으로 다정함을 옅게라도 내비친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통해 또 배운다.


다정함을 내보이는 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매일 꾸준히 행하는 일상 속 작은 행위로 충분히 가능하며,그 작은 행위가 상대방의 하루를 더욱 충만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다정함들은 내게로 전달되고, 교실 곳곳으로 스미며 교실은 어느새 따스한 정서로 가득해진다. 그 다정한 아이들 덕분에 올 한해 변함없는 열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다정함이란 지능이 맞다. 지능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노력의 여하에 따라 유동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똑똑함을 갖추기 위해 부지런히 예습과 복습을 하며 지식을 공고히 하듯 다정함도 마찬가지다.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연습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그 연습이란 보이지 않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세삼하게 누군가를 관찰하고 부단히 감사를 표현하고 적절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작은 것이라도 감사표현하기, 누군가의 상처와 눈물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눈물이라는 렌즈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애쓰는 것.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는 ai시대, 똑똑함은 ai로 충분히 대체가능하지만 ai가 아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다정함이 아닐까? 모든 것이 ai로 대체되는 팍팍한 현실 속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은 바로 다정함이라는 지능인지도 모른다. 다정함이 다정함에 기대어 살아가는 미래사회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을 수 있으니까.

문득 오늘 아로마 테라피에서 눈물을 지어 보이던 한 선생님이 떠오른다. 최근 힘든 일이 폭풍우처럼 닥쳐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던 분. 집에 와서도 그 눈물짓던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아마도 예전에 비슷한 일로 힘든 일을 겪었던 내 자신이 겹쳐져서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허투루 넘기지 않고 마음 속 단련된 다정함의 근육을 써보기로 맘먹는다. 마치 다음 날 수업할 내용을 예습하듯 다음의 내용을 머릿 속에 되뇌이며.


집 냉장고에 있는 컵커피를 가져가 전달해드리고 그간 애쓰셨다고. 많이 힘드셨을 텐데 오늘 만이라도 평온한 하루 되시길 바란다고. 내일 업무 메신저로 꼭 전달해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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