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괴롭히지 않고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는 오늘, 나는 한 번의 승차권 취소를 당하고 어제 겨우 한 자리 남은 표를 다행스럽게 구한 뒤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한기가 옷소매로 파고드는 날씨. 시린 공기 사이로 입김을 하얗게 내며 서둘러 역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뜬 전광판의 5분 지연 안내. 그정도야 뭘 이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역사 안에서 기다리다 시간이 되자 부랴부랴 탑승구로 내려갔다.
마침 기분좋게 당도한 기차. 기차가 완전히 정차하자 탈 준비를 하려는 찰나 피식 하고 열려야 할 문이 요지부동이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사람들의 눈빛이 촛불처럼 흔들린다. 하얀 귀돌이 모자를 하고 옆에 서있던 6살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빨리 안타냐며 보채는 소리가 정적을 깬다.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운 날씨. 5분쯤 흘렀을까 뒤이어 흘러나온 안내방송
“열차문 고장으로 열차 탑승 불가하니 1번 차로 환승 바랍니다“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는 한숨소리. 마치 피난행렬에 오르듯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옆 탑승구로 향한다. 그 때 내 뒤에선 여자들의 볼멘소리가 귀로 흘러든다.
“아니 툭하면 파업이야. 그거때매 열차 점검도 제대로 안한거 아니야? 사람들 생명이 달린 건데.게다가 공연시간 늦게 생겼어. 이 시간 어떻게 책임질건데.”
나는 그녀들의 말을 비지엠처럼 들으며 바삐 걸음을 옮긴다. 추운 날씨에 환승이라도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차안 좌석에 몸을 툴썩 내려놓는다. 자리에 앉아 내가 원래 타기로 예정된 기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흐릿한 형체로 보이는 사람들. 저 안의 사람들도 얼마나 갑갑하고 불안할까. 내리지도 출발하지도 못하는 신세. 갑작스런 사태에 불안한 건 저들도 매 한가지일터.
기차엔 탔지만 출발 생각이 없다. 아마도 인력부족으로 점검도 시간이 더디게 걸릴 터이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귀로 섞여들어온다. 예식시간이 11시인데, 공연이 11시인데, 추운데 자식들이 기다릴텐데. 등 한을 품은 판소리처럼 사람들의 사연들이 귀에 흘러든다. 그리고 급히 전화를 걸어 약속 시간을 미루는 나직한 목소리들도 간간히 들려온다. 이 사태에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한숨이 새어나온다. 결국 40분이 지나서야 기차는 느릿느릿 한걸음을 뗀다. 참다못한 한 아저씨는
“이 무슨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야 짜증나네 진짜”
기차 안에 어두운 공기가 가득 맴돈다.
수많은 사람들의 40분이 그렇게 공중으로 아스라이
흩어진다. 잠시 뒤, 기차 안 무거운 공기와는 대비되게 나긋한 음성의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열차 20분 지연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으니 그 점 숙지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불타는 가슴이 잠시 진정되는 듯 하였으나 돈으로도 환산 못할 40분간의 두려움. 기차가 출발 못하면 어쩌지. 제 시간에 도착못하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에 대한 보상은 되지 못했다. 허망하게 날아가버린 이 40분은 대체 누구의 탓으로 몰아가야하는 것인가. 그나마 애쓰고 있는 철도직원들이 안쓰럽기 까지 해서 그들에겐 차마 불만을 표시하기조차 조심스럽다. 그들도 누군가가 내려놓은 짐을 낑낑대며 간신히 들고 있는 중일테니까.
어제는 학교 급식파업으로 교실에서 찬 도넛과 약과 쥬스를 먹었더랬다. 나는 그 음식을 먹고 2개의 학원 스케쥴을 소화해내야 하는 아들을 위해 새벽부터 바지런히 김밥을 쌌다. 반 아이들도 그날은 엄마가 싸온 도시락을 꺼내들었다. 그나마도 못 싸온 아이들은 내가 싸온 김밥을 한 개씩이라도 맛보라며 주었다.
점심 후 아이들의 음식쓰레기를 처리하러 내려간 급식실.그날은 영양교사가 홀로 낑낑대며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도맡고 있었다. 불꺼진 급식실에 덩그러니 보이던 반쯤 베어물고 버려진 도넛들, 과일의 잔해들. 그걸 보며 어쩐지 가슴 한 쪽이 시려왔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한, 뉴스에서만 접하는 그 파업이라는 파도를 두 차례 온몸으로 맞다보니 잔잔한 가슴에 콩알탄 몇개가 만들어지는 느낌이 든다. 누구를 탓애햐 할까. 파업도 나름의 이유는 있겠으나 결국 파업의 희생양은 애먼 서민들, 힘없는 약자들. 정작 그 파업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사람들은 맨 위에 서있는 강자들이다. 그 강자들에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방패막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약자들이라는 생각에 가슴에 콩알탄 몇개가 팍팍 튀어오른다. 정작 파업을 하면 강자들은 피부 깊숙이 영향을 받지 않기에 미동도 하지 않는다.
파업에 무참히 휩쓸리며 온몸으로 불만을 토해내는 약자들의 힘 여러개를 모아야만 그 강자들에게 당도한다는 사실. 또 그 사실을 이용한 또 다른 약자들의 파업. 도대체 누가 잘못인걸까. 어쩌면 강자도 약자도 실체가 없는 게 아닐까.
누군가가 내려놓은 짐을 또 누군가는 힘겹게 이어지면서 그나마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파업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절로 한숨이 나는 어제 오늘. 누군가를 탓하고 싶진 않다. 다들 사정이 있고 상황이 있는 거니까 함부로 재단할 순 없다. 하지만 서로를 갉아먹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은 가뜩이나 추운 겨울 서로의 가슴만 시리게 만든다. 더이상 서로를 괴롭히지 않게, 부디 파업의 끝은 평화이길, 모두에게 좋은 방향인, 한겨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날 수 있는 온기로 가슴에 스미길.
그리고 또 느낀다. 세상은 참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의
당연하지 않은 수고로 돌아간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