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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수행평가를 치르고 나니 교실의 온도가 올랐다

나의 성공 뒤에는 무수한 다른 이들의 노력이 존재함을 늘 느끼고 감사하기

by 이유미

바야흐로 평가의 시기가 다가왔다. 오늘은 음악 수행평가 "강강술래" 를 부르는 날. 반주없이 26명의 아이들 앞에서 그야말로 날것의 생목으로 부른다는 것이 쉽지 않을 터.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교실에 한 발 내딛으니 전에 없이는 고요함과 정적이 교실 안에 가득했다. 수틀에 팽팽히 고정된 천처럼 교실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아이들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어 있다.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귀엽기도 하다.


강강술래 노래의 평가기준. 간단하게 한 마디로 요약해서 아이들에게 내놓는다.


"정확한 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르는 것"


나는 포기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강강술래 반주를 세 번 거듭 들으며 귀에 익히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내가 선창을 하고 아이들이 부르며 긴장을 풀어낸다. 그리고 1번의 차례가 시작되자 나는 한 번 더 얘기한다.


"많은 아이들 앞에서 부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니 우리 모두 받는 소리인 강강술래는 다같이 불러주며 용기를 북돋워주자"


뺨에 복숭아빛 물감을 물들인 듯한 1번 아이의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나의 선창이 시작되고 아이는 조심스레 노래를 부른다. "강~ 강~ 수울 래" 작지만 힘있는 목소리가 허공에 울러퍼지자 아이들은 입을 모아 받는 소리 "강 강 수울래"를 목놓아 부르며 1번 아이의 나직한 노랫가락을 힘있게 받아낸다. 마치 그 소리는 수줍어 어쩔 줄 몰라 뱅글뱅글 허공에 떠도는 외로운 목소리를 포근히 감싸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가슴 안쪽의 연한 부분이 툭 건드려져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1번부터 시작된 노래는 마지막 번호 52번 차례가 될 때까지 26번을 반복했고 그 지난한 30분동안 어느 누구도 웃거나 울거나 그만두겠다고 포기선언을 하는 학생이 하나도 없었다. 도중에 음이탈이 나면 여기저기서 괜찮아 라고 속삭이듯 누군가가 말했고, 음정 박자가 조금 어긋나면 비지엠같은 옅은 배경의 목소리가 살포시 들려왔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의 붉은 뺨에서 떨려 나오는 여린 소리들을 주시하며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거나 엄지를 추켜올리며 계속 그 소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야말로 서로 돕고 돕는 환상의 하모니였다. 노래를 부르는 주자는 한 소절이 끝나면 다시 받는 소리로 역할을 바꾸고 , 받는 소리를 하던 주자는 또 자기 차례가 되면 노래를 부르고 하며 이어달리기 하듯 역할이 수차례 교대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목이 아픔에도 불구 자신의 차례가 끝났다며 받는 소리를 안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30분이 지난 뒤, 52번이 마지막 소절을 부르고 난 뒤엔 아이들 모두가 갓 샤워를 하고 나온 것 마냥 해사한 얼굴을 빛냈다. 나는 도중에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불러낸 아이들이 뭔가 큰 일을 해낸 위인들처럼 자랑스러웠다. 아마 오늘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한 곡을 다 불러낸 용기는 바로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받는 소리를 불러주며 중간중간 힘을 부추긴 따스한 온기때문이 아닐까?


주인공 1명이 한 곡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26명의 무수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음악시간에 배운다.그리고 그 한명은 자신의 역할을 끝냈다고 해서 모든 걸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또 누군가의 성공을 위해 다시 주인공의 자리에서 물러나 뒷배경으로서 묵묵히 그 한 명을 위해 용기를 붇돋워 주는 행위로서 그 성공에 힘을 보탠다. 아이들의 행동에서 삶의 따스한 한 면을 목도한다.


불과 30분 전 만해도 차가운 긴장감이 흐르던 교실은 26명의 따스한 온기로 체감상 2도 정도 올라간 듯 훈훈한 기온이 감돈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훈기로 남은 시간을 잘 버티어낸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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