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힘나게 하는 세가지 기억은?

힘나게 하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나를 살린다.

by 이유미

오늘의 세줄쓰기 주제


나를 힘나게 하는 세 가지 기억은?


이 주제를 받고 아이들은 수렁에 빠진 듯 꽤나 오랜 시간을 골몰한다. 고작 열한살 먹은 아이들에게 과거를 거슬러올라가게 하는 순간은 머릿속에서 엉켜있던 실타래를 풀어야하는 지난한 작업이라서 그런걸까.


이럴 땐 내가 앞장서서 예시를 들어주어야 한다. 수학문제를 풀거나 불쑥 영어단어를 물을 땐 대답이 잘만 나오던 소위 우리반 똘똘이들도 한참을 고민하는 걸 보면서 이번 주제는 아이들 어딘가에 깊숙이 숨은 기억창고를 뒤적일 시간이 필요하구나 싶어서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나직이 말한다.

“선생님에게 힘을 준 기억은 최근 스승의 날에 받는 작년 제자들의 편지야. 사실 선생님이 요즘 무기력했는데 작년 아이들이 또박또박 쓴 글씨로 4학년때 있었던 일을 돌아보며 선생님이 해주신 명언들, 배움노트 지도, 세줄쓰기와 같은 황동이 너무 좋았었다고. 선생님의 열정이 자신들을 성장하게 한 것 같다고.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적힌 글을 보며 선생님은 올해도 열심히 여러분을 지도해야지 라며 힘이 불끈 솟았거든. 그 기억으로 지금도 너희들에게 세줄쓰기를 하게끔 지도를 하는 거고^^”


나의 말이 끝나자 적막함만 감돌던 교실에 갑자기 딱딱 거리는 연필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십여 분 뒤 서서히 연필소리가 잦아들고 하나 둘 검사를 맡으러 내 옆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오늘은 서로의 힘나는 기억을 공유하며 함께 힘을 북돋워보자며 도미노 발표( 한 학생 발표가 끝나면 다음 학생이 연이어 이어가는 발표)로 이어가기로 한다.


맨 처음 주자의 발표

“얼마 전 육상부 대회에서 아쉽게 예선을 통과하지 못해 속상했는데 체육선생님이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된거라고. 너 충분히 잘했어 라고 말해준 기억입니다”


한창 육상대회 선수 선발 시즌이라 아침마다 땀을 빼고 오던 하준이를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아이들은 일제히 위로의 눈빛을 모아 쏘아준다.


다음 주자의 발표


“수학 곱셈과 나눗셈 단원평가에서 많이 틀렸는데 엄마가 그날따라 괜찮다고 다시 풀면된다고 하신 기억이요”


수학시간마다 머리를 쥐어뜯는 제스쳐를 하는 원우의 발표에 아이들은 이해한다는 듯 이번엔 고개를 끄덕끄덕인다.


다음 주자의 발표


“얼마전 엄마가 야간일을 하다 바쁘셔서 못들어오셔서 언니랑 둘이 자다 아침에 지각을 했는데 선생님께서 무슨 일이 있었니라고 이유를 물으시곤 지각책임을 면하게 해주신 일이요”


얼마 전 아이를 다그치기 전 아무래도 표정이 심상해 사정을 물어준 기억이 떠올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다음 주자의 발표


“제가 매일 수학익힘책도 느리게 풀고 미술도 늦게 하는데 선생님이 늘 믿는다 잘할 수 있다 끝까지 책임지는 건 멋지다 라고 얘기해주신 기억이요”


학기 초부터 너무 느린 탓에 내 인내심의 바닥을 보이게 하던 아이. 기다려주기로 하고 믿어주자고 결심하면서부터 그런 말을 부적처럼 해주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엔 수업 후 남아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가는 부쩍 성실한 태도를 보여주는데 아마도 나의 말이 힘이 되었나보다 생각에 가슴이 뜨끈해진다.


켜켜히 쌓이는 아이들의 힘이 되는 기억에 무기력하던 교실이 일순 팽팽한 힘이 느껴지는 것은 기분탓이었으려나.


아이들의 무수한 발표를 들으며 느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에게서 들은 응원이나 격려의 한 마디는 나를 일으켜세우는 큰 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고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내는 와중에 들은 한 마디 힘나는 말은 축 쳐진 어깨를 하늘로 솟구치게 만들고, 앞으로 나아갈 발걸음을 멈추지 않도록 힘을 실어준다.


올해 유독 무기력하고 학습장애를 많이 앓는 아픈 손가락 몇몇 아이들로 인해 나도 힘빠지는 순간이 작년보다 많은 빈도로 찾아오고 있다. 지난 2년간 요지부동 해오던 학급경영에도 위기가 찾아올만큼 말이다. 하지만 교직의 특성상,그리고 해마다 달라지는 수많은 아이들의 수준과 성향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 처럼 매해 같을 순 없는 노릇.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는 다시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매일 지각을 일삼는 아이들. 늘 느려서 내 쉬는 시간을 몽땅 헌납하게 하는 아이들. 수학시간마다 머리를 싸매며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내 한 마디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얻고 있다면 나는 인내의 끈을 놓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신은 올해 내게 미션을 주신 것이 아닐까.작년 제자들에게서 받은 피드백과 과분했던 사랑을 동력삼아 올해 아이들에게 그 힘을 나누어주는 한해를 보내라고. 교사로서 매번 달라지는 아이들에 맞추어 눈높이를 조절하고 늘 겸허하게 살고 내 자신을 돌아보고 조금 부족하지만 성장가능성이 다분한 아이들에게 더 힘쓰는 한해를 보내라고. 그것이 또 내년의 내 자신에게 어떤 힘을 주는 기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니.


나에게 힘을 주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나를 살게 만든다. “인생은 뒤돌아볼때 비로소 알게 되지만 우리는 앞으로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존재다” 내 마음을 오래 진동하게 한 어느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작년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이들을 향해 내비치는 나의 지속적인 열정, 힘이 빠질때마다 일으켜 세우는 나의 격려한마디. 그런 것들이 아이들을 힘나게 만들고 지금껏 나를 기억하게 만들었고 또 그것이 되려 내게 돌아와 지금의 삶을 사는 나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힘나게 하는 기억들로 지금의 아이들과 앞으로 힘차게 걸어나가야지.


이상스레 몸에 힘이 빠질땐 나를 힘나게 하는 과거의 기억이라는 매 순간 떠올리며 그것을 부표로 삼아 앞으로의 삶을 힘차게 이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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