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교권침해를 언급한 아이의 글에 뭉클하다

불편한 스승의 날이 아닌 편한 스승의 날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사실

by 이유미

오늘의 세줄쓰기 주제


선생님을 행복하게 만드는 세가지 방법과 그 이유


스승의 날을 맞아 시의적절하게 내어준 세줄쓰기 주제이다.


스승의 날만 되면 가슴 한 켠이 묵직해지는 것이 출근길의 발걸음도 가볍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게다가 오늘은 밖에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 가뜩이나 무거운 발걸음이 물에 푹 젖은 솜뭉치마냥 묵직했다. 최근 있었던 어린이날 어버이날은 모두가 함께 축하하고 축하받는게 마땅한데 왜 스승의 날만 되면 선생님들의 마음이 무거워져야 하는지 안타까운 현실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카네이션 한 송이 맘편히 받을 수도 없는 척척한 현실. 언제부터 스승의 날이 선생님들 모두가 꺼리는 날이 되어버렸을까?

초등학교 시절, 스승의 날만 되면 방송조회로 각 반 회장친구들이 선생님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감사함을 공공연히 표현하곤 했었던 기억이 새록하다. 반 아이들이 십시일반 코묻은 돈을 모아 선생님의 선물을 함께 사며 기뻐하실 선생님의 표정을 떠올리기도 하고, 회장의 주도하에 편지를 써서 모아 선생님께 드리며 평소 전하지 못했던 낯부끄러운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했던 기억도 어제일처럼 떠오른다.

그로부터 수년 후,선생님이 되고 난 뒤의 스승의 날 풍경은 그때의 훈훈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매해 피부로 체감한다. 어제 아이의 유치원에서는 스승의 날 선물, 꽃은 일체 받지 않는다고 연락이 왔다. 아이가 5살이 되고 처음 맞는 유치원에서의 스승의 날, 카네이션 한송이이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나는 오래 묵혀둔 꽃무늬 편지지를 꺼내었다. 아이의 유치원 생활 적응을 잘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께 어떻게든 진심을 전하고 싶어서 감사한 마음을 문장 하나하나에 꼭꼭 담아내었다.

스승의 날 아침인 오늘, 일주일 전 미리 예약해둔 카네이션 설기를 새벽같이 떡집에서 찾아와 동료 선생님들께 나누어주며 모두가 수고하고 있다고, 갈수록 척박해지는 교육현장에서 열과 성을 다해 버텨오고 있는 우리 자신을 자축하자고 말하며,갓 만들어 온기가 식지 않은 떡을 한 입 베어물며 헛헛한 마음을 그 온기로 채웠다.

교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데 교실안이 어쩐지 어수선하다. 올해로 스승의 날 13년차, 교실의 불만 꺼져도 아이들이 무슨 공작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훤히 보이지만, 나는 귀여운 아이들의 공작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놀란 토끼눈을 하고 들어가 칠판 가득 써져있는 선생님을 향한 메세지를 시야에 가득 담는다.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일념으로 아침부터 자기네들끼리 속닥거리며 소소한 이벤트를 고안했을 아이들을 떠올리니 괜스레 미소가 번져오른다. 어제 5교시 내내 잔소리를 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에 잠시 활력이 돈다.

책상 위에는 아이들이 손수 접은 색종이 카네이션, 그리고 연필로 꼭꼭 눌러쓴 편지들이 드문드문 놓여있다. 매해 스승의 날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실에 들어오지만, 그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런 아이들의 작고 소중한 마음들이다. 카네이션 꽃이나 선물은 받을 수 없다는 걸 아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선생님에 대한 마음을 전하려 연필 하나를 꼬옥 쥐고 자신들의 마음을 마치 착즙기에서 원액을 짜내듯 정수만을 빼내어 종이에 옮겨 적는다. 올해는 유독 나에 대한 감사, 특히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표현이 눈에 띈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은 불쏘시개가 되어 냉랭하게 식어가는 마음에 열정이라는 작은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만든다.

스승의 날을 맞아 아이들에게 오늘은 선생님들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2년 전 발생했던 안타까운 선생님들의 죽음. 선생님들의 죽음 뒤에 숨은 무거운 사실 하나를 어렵게 꺼내어 말한다.

"안타깝게 고인이 되신 선생님들이 겪었던 어려움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이미 매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조심스레 입을 떼어 말한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선생님들을 힘들게해서요"

나도 5년 전, 한 학부모의 괴롭힘에 하루하루가 가시밭길 같았고 급기야 교권보호위원회까지 열렸던 경험이 있던 터라 그 선생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터라 더욱 열변을 토하며 말했다.

"학생들의 인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선생님들의 인권인 교권이란다. 작년에도 우리 학교에서 교권이 심각하게 손상된 일이 있어 병가를 들어가신 분이 계셨단다.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란다. 그런 분위기라면 선생님들은 열정을 잃고 너희들을 열심히 가르칠 힘도 잃게 된단다. 선생님은 신이 아닌 너희들과 같이 연약한 사람이니까."

조금 무거운 이야기였지만 속깊은 아이들은 금세 애처로운 눈빛이 되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그러니 오늘은 선생님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 세가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교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난 직후라서인지, 아이들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세줄쓰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난 뒤 발표의 시간,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강한 몰입감으로 아이들의 발표를 들었다.

선생님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방법은 "아이들끼리 싸우지 않기. 아이들끼리 싸우다가 어른들 싸움으로 번져서 선생님까지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터 시작해서 "선생님 말씀에 귀기울여 듣기. 특히 복도에서 자주 뛰는 친구들 누구누구. 선생님이 계속 잔소리 하는데 힘드시니 뛰지말자."라는 훈계도 이어졌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가슴 뜨끔해하는 표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귀엽기 까지 했다.

그러다 한 아이의 발표에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교권에 대해 언급한 아이의 글은 4학년 아이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하기에 너무나 깊이있고 수준높은 글이었다.

"요즘에는 선생님들이 교권침해를 많이 당하신다. 예의바르게 대하는 게 중요하고 선생님의 입장도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아이들의 말만 믿지 말고 정확한 정황을 들어봐야한다.선생님들께서 지도를 하실 때 그냥 흘러듣지 말고 학생들이 노력해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나는 그 글을 읽고 가슴이 턱 막혔다. 나의 마음을 간파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 학부모님께서 아이의 말만 흘러듣고 나의 지도를 오해해서 아침일찍 하이톡으로 연락이 오는 바람에 그날 하루가 잿빛으로 물들었던 기억이 새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지도를 하는 것들이 있는 데 그 말이 무력하게끔 매일 지각을 하거나, 수업시간에 내내 딴짓을 하는 등 나의 지도가 영 통하지 않는 아이들로 인해 나날이 힘이 빠지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속시원히 나의 마음을 짚어준 아이의 글로 인해 가슴 한구석에 뜨끈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면서 위안을 받는 기분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동시에 박수를 치고 엄지를 추켜올려주며 아이의 깊은 통찰을 칭찬해주었다. 어제 등교시간 20분이나 지각한 우리반 지각대장 아이, 수업시간에 내내 딴짓을 일삼던 아이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게 내 시야에 포착되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반성하는 눈빛을 보였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스승의 날, 아이들의 작은 이벤트와 감사편지 그리고 세줄쓰기로 나는 그 어느때보다 의미있는 날을 보냈다. 카네이션과 선물이 금지된 대신 물질보다 더 값지고 귀한 아이들의 정수같은 마음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스승의 날이 있을까? 스승의 날을 없애버려야 할 거스러미같은 존재로 여기기보단, 스승의 날을 서로의 진한 마음을 확인하는 날로 여기면 어떨까? 교권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선생님들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만고의 진리를 떠올리며 어떻게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행복하기 위한 길이 아닐까한다.

예전에 읽은 책 교실 속 자존감에 나오는 문장을 아직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학생이라는 나무에게 교사는 햇살과도 같은 존재요, 가물 때 내리는 비와도 같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니 다음 문장을 매 순간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나는 학생의 인생을 변화시킬 영향력을 가진 교사다"


오늘 받은 학생들의 작은 마음을 온 몸에 꾹꾹 새겨넣고 햇살, 비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주려고 노력해야지.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그 마음을 숨기지만 말고 스승의 날을 빌어 꼭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지.


여러 생각이 든 묵직한 스승의 날.

선생님들 모두 힘내시고 뜨거운 열정으로 지금껏 잘해왔듯 앞으로 꿋꿋이 나아갑시다.




keyword
화, 목 연재
이전 05화오늘 받을 효도를 내일로 미루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