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를 수시로 바꿔껴가며 누군가의 좋은 점을 발견하며 나아가는 삶
오늘의 세줄쓰기 주제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 3가지”
6월 중순이 되고, 날이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니 교실안에서도 크고 작은 싸움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이틀 전에는 adhd를 앓고 있는 한 아이가 한 아이와의 마찰에서 화를 주체못해 교실벽을 발로 걷어차고, 입에서 씨*이라는 욕까지 나온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우리반 예민한 두 아이들 사이의 사사로운 갈등이 내 마음 속 불씨를 화르륵 당겨내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수영교육으로 열심히 4일을 내달리고 맞이한 금요일인 오늘, 기분좋게 출근했는데 10분이나 지각한 두 아이들을 조우하고 미간을 잔뜩 좁히며 훈계로 시작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한 여자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와서 다시금 불씨를 당긴다.
“00이가 아무 이유없이 제 머리를 자로 때리고 사과도 없이 조롱하고 지나갔어요”
이틀 전 또 그아이다. 이제 내 속의 활화산은 화산가스를 내뿜기 일보직전. 한숨을 크게 휴우 하고 내쉬며 폭발 위험을 줄여본다. 조용히 아이를 불러내어 이틀전보다 조금 더 강도를 높여 훈계를 하고 교실로 돌려보낸다. 터지지만 않았을 뿐 마음 속에선 뜨거운 용암이 들끓는다.
끓는 속을 겨우 찬물로 진정시키고 오늘의 세줄쓰기 주제를 준다. 여느때와 달리 교실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있었고 그 사이로 퍼져나가는 아이들의 연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몇 분 후, 아이들은 하나 둘 자신이 쓴 내용을 조심스레 내민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 3가지
1. 엘리베이터를 탈 때 누군가가 급히 오는 소리가 들리면 열림버튼을 눌러준다.
2. 화장실에서 나보다 급해보이는 사람에게 먼저 양보해준다
3. 친구들에게 준비물을 잘 빌려준다.
눈빛이 늘 초롱한 하준이의 글에 굳었던 얼굴 근육이 사르르 풀린다.
뒤이어 쭈뼛쭈뼛한 자세로 내 옆으로 온, 이틀 연속 내게 훈계를 받은 00이의 글을 받아든다.
1. 나는 어제 반 아이들의 태블릿을 다 정리해줬다.
2.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해줬다.
3. 다리를 다친 회장 도겸이를 위해 급식을 대신 받아줬다.
한참동안 그 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충동조절 감정조절이 안되어 약물과 치료를 병행중인 아이. 내 속을 들끓게 만드는 주 요인인 아이였지만 생각해보면 참 따듯한 속을 가진 아이였다. 그 언젠가 말하길 봉사활동을 좋아하는 이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벅차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잿빛렌즈를 통해 아이를 바라봤다가 아이의 세줄쓰기 속 세 문장을 접하는 순간 렌즈의 색깔이 밝은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렌즈만 갈아끼웠을 뿐인데 아이가 다시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그날따라 내 눈에 씌어진 렌즈에 안개가 잔뜩 끼어 아이들의 모든 행동들이 곱지 않게 보이는 날들. 특히나 나의 반복적인 지도에도 다음 날 또 잊어버리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날엔 그 렌즈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까지 한다.
선생님도 사람이기에, 아이들을 믿는다해도 그 순간 올라오는 화는 참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내 진심어린 지도가 아이 마음에 닿지 않고 튕겨나가고 있구나 라는 내 안의 부정적인 생각이 드리워지면 남은 날들이 아득하기도 한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만 놓고 싶어지기도 한다. 내 지도가 과연 아이를 변하게 만들 수 있을까 라는 또 다른 부정적인 생각도 고개를 들어오며 양 어깨가 푹 수그러들곤 한다.
하지만 세줄쓰기에서 마주한 이 아이가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를 보는 순간,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어제 아이가 했던 말도 떠오르며.
“선생님, 저도 왜 이렇게 화가 안참아지는 지 모르겠어요, 자꾸 짖궂은 장난도 치고 싶어지구요. 마음대로 안되요”
나는 그간 너무 어른의 렌즈로만 아이들을 바라봤던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 아이들은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를 많이 증명해보이고 있는데 몇 번 보인 나쁜 행동으로 인해 그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조차 얘는 절대 변하지 않을 나쁜 아이라고 단정지어버렸구나 라고.
아이들을 지도함에 있어 중요한 건 바로 렌즈를 수시로 갈아주는 일이 아닌가 싶다. 적절치 못한 행동을 했을 땐 물론 훈계를 해서 지도를 해나가야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 씌워진 잿빛렌즈를 빼지 않고 내내 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좋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반성하게끔 훈계를 한 뒤엔, 어서 빨리 밝은 렌즈로 갈아끼워 그 아이의 좋은 면모를 보려고 노력해야만 아이를 지속해서 지도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100개중 99개의 흠이 있어도 한 개의 장점에 초점을 맞추며 그 장점이 99개의 흠을 덮을 만큼 강한 힘을 발휘하게 도와주는 것이 진짜 교육자의 역할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세줄쓰기가 아니었다면 그 아이 포함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렇게나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를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 했다. 잿빛 렌즈가 씌워지는 날이 계속 되어 내 시야를 흐리고 아득하게 만들 땐 다시 밝은 렌즈를 갈아끼고 좋은 모습들을 부지런히 발견해내고, 앞으로 더 성장할 미래를 내다보며 그렇게 지도할 힘을 이어가야지 작게 속으로 되뇌인다.
아침에 아이들이 했던 것과 꼭 같이 내가 좋은 선생님이라는 증거도 써보며 무너졌던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 세워본다.
1. 아이들이 나를 실망시켜도 아직 어리니 그럴 수 있어. 라며 이해하고 포기않고 끝까지 지도하려고 노력하는 태도
2.월요일 아침마다 그림책을 읽어주며 소통하는 것
3.이렇게 글을 쓰며 미운 아이들에 대한 생각도 바꾸는 태도.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