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못된 짓 3가지를 쓴다면

못된 짓 일기를 쓰며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옅어지게 만들기

by 이유미

오늘의 세줄쓰기 주제


누군가에게 한 나의 못된 짓 3가지 쓰기


이 주제를 띄워놓으니 그 어느때보다도 아이들의 의문스러운 표정이 눈에 확연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향해 쳐다보며 어떻게 써야하는 지를 눈빛으로 부지런히 주고 받는 모습을 웃음을 띤 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말그대로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을 쓰는 거야. 가령 아침에 깨운 엄마에게 짜증을 낸 일. 친구에게 나쁜 말을 한 일 등 사소한 것을 써주면 된단다."

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멈춰있던 25개의 연필이 부지런히 몸놀림을 시작한다. 어른들이나 생각해볼 벖한 심오한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다가갈 땐 역시 아이들의 눈높이이 맞춘 예시가 최고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예시를 그때그때 순발력있게 떠올려야 하는 건 늘 어려운 일이지만.


이 주제를 문득 써보겠다고 결심한 건 바로 얼마 전 태안리솜아일랜드에 가서 우연히 본 책 한 권 때문이었다. 다른 내용은 다 기억이 흐릿한데 어느 챕터에서 본 "나의 못된 짓 일기"라는 구절이 내 마음 속에 찌릿 전류를 일으켰다. 감사일기는 이미 시중에 나와있는 책에서 많이 언급한터라 매일 교실에서 알림장에 한 줄 씩 쓰며 행하고 있지만 못된 짓 일기라니. 일단 말만 들어도 되게 못된 내용에다 부정적인 것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기에 강렬하게 기억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낚시꾼이 미끼를 이용해 물고기를 온힘을 다해 건져올리듯 나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얻어 걸린 못된 짓 일기라는 주제를 행여나 빠져나갈까 머릿속 해마에 꽁꽁 붙잡아 집으로 돌아온 뒤 화요일인 오늘 아이들에게 주제를 득의만만하게 내밀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연필을 열심히 굴리는 동안 나도 나의 일기장에 나의 못된 짓 일기. 아들편이라고 쓴 뒤 최근 아이들에게 행한? 나의 못된 짓 일기를 차분히 써내려갔다.

나의 못된 짓 일기

1. 아들이 어제 보드게임하자고 졸랐는데 피곤하다며 읽던 책에 집중한 것.

2. 자기 전에 엄마 옆에서 누워자겠다고 어마무시하게 치대는 게 너무 귀찮아 엄마는 이런 거 싫어 너 애기 아니잖아 라는 말로 상처 준 것.

3. 아들이 단원평가에서 65점을 맞아왔을 때 속상한 마음을 위로해주기 앞서 왜이렇게 많이 틀렸어? 수업시간에 제대로 공부안하지? 라고 면박준 것.


문장문장을 써내려가다보니 돌연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뭉게구름처럼 솟아올랐다. 분명 오늘 아침에 늦장을 부리고 물을 쏟고 공을 차서 티비를 휘청이게 한 탓에 너무 화가 나 아들에 대한 미움이 검정잉크처럼 진해졌었는데 말이다. 아들에게 내가 저지른 못된 짓의 행태를 낱낱히 고하듯 글로 옮겨놓으니 검정잉크에 물이 한 가득 부어져 희멀건하게 희석되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아들이 보고 싶어졌고 얼른 집에 가서 보드게임을해주고 싶은 마음 한 가득이었다.


아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열심히 쓰고 나서 내게 검사를 맡으러 온 아이들의 못된 짓 일기를 눈에 꼭꼭 눌러담듯 읽었다. 아이들의 못된 짓 일기의 대상은 대부분 부모님이었다.


우리반 우재는 아침에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고 온 일을 못된 짓 일기에 적었다. 우재는 아침에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고 학교에 왔는데 내가 내 준 못된 짓 일기를 쓰다보니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가면 오늘 엄마에게 저녁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 마음이 참 곱고 예쁘서 내 가슴에 잔잔한 진동을 일으켰다.

늘 누나와의 관계가 스트레스인 승민이는 최근에 누나가 하도 심부름을 시켜서 나쁜 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적었다. 그때 누나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고. 늘 자신을 구박하고 일을 시키는 누나가 너무 미웠는데 그 날일을 적다보니 그 미움이 옅어졌다고 조심스레 내게 전했다. 진심어린 속내에 다시금 내 마음이 진동해옴을 느낀다.

승아는 엄마가 아침에 자신을 깨웠는데 그게 너무 듣기 싫어서 큰 소리로 짜증을 낸 일을 쓰며 엄마에 대한 미안함을. 해인이는 아빠가 자신이 숙제를 하는 데 방해를 해서 짜증을 크게 내었던 일을 쓰며 아빠에 대한 미안함을. 지율이는 엄마와스마트 폰 한시간만 하기로 한 약속을 몰래 어기고 2시간이나 한 거짓말한 것을 쓰며 그 죄책감에 오늘은 엄마와 한 약속을 꼭 지키겠노라고 다짐했다. 아이들은 세줄쓰기를 통해 다양한 못된 짓을 쓰며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다시금 느껴보았다.


우리 반 도운이는 또 내게 한 못된 짓을 적었는데 그 솔직함이 참 귀엽게 느껴졌다. 아침시간에 선생님이 잠시 연구실에 회의하러 간 틈을 타 뒷자리의 예진이와 몰래 잡담을 나누었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고백에 나는 잠시 아연실색했지만 자신의 잘못을 용기있게 고백해주는 도운이에게 도리어 칭찬을 해주었다. 선생님이 모르고 지나갈 수 도 있었는데 그 사실을 고백해주며 자신의 잘못을 돌아본 자체가 너무 기특하다고 엄지척을 올려주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세줄쓰기를 평소보다 더 공들인 글씨로 써서 냈구나라는 사족을 달아주며 말이다.

못된 짓 일기를 쓰다보니 느낀점은 바로 미움의 대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무 밉고 싫고 한 누군가이지만, 그 누군가에게 내가 행한 못된 짓을 쓰다보니 그 미움도 옅어지고 오히려 죄책감이 살짝 올라와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으니까 말이다.

그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름도 생소한 죄책감 메커니즘. 누군가 너무 싫을 때 못된짓 일기를 읽다보면 거짓말처럼 화가 누그러뜨러지는 데 그 이유는 그때의 미안했던 감정과 죄책감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며 상대방에 대한 죄책감과 분노가 상쇄된단다. 즉 죄책감이 불러일으키는 보상심리가 상대방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대신 해소시켜준다는 것.


참 신박한 구절이구나 싶었고, 아이들과 실제로 해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엄마나 아빠 동생 등 가족이나 친구가 미울 때 마다 내가 그들에게 저지른 못된 짓 만행을 쓰다보면 그 죄책감이 올라와 조금은 더 부드러워지고 다정하게 된다는 사실은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아이들이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에게 저지른 못된 짓을 쓰고 발표하며 그 대상만 생각하면 잔뜩 좁혀지던 미간이 어느새 스르륵 풀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도 아들의 못된 짓 일기를 쓰며 오늘 한가지 다짐을 작게 해본다. 오늘 저녁엔 피곤해도 보드게임을 먼저 해주고 자기 전 내게 살갖을 부벼올 때 귀찮은 내색 대신 우리 아들 살결 참 부드럽다며 웃어주어야지라고.

누군가가 미울 때 기억해야 할 한가지. 못된 짓 일기 00편을 쓰며 죄책감 메커니즘을 부지런히 돌려 미움을 옅게 하고 그들에게 좀더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지.


이 좋은 건 나만 알 수 없지 라는 생각으로 글을 써본다. 모두가 그렇게 죄책감 메커니즘을 부지런히 돌리며 누군가를 향한 인류애를 발휘하며 살아가는 노력을 한다면 좀 더 따스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귀여운 생각을 하며 세줄쓰기 마무리.

keyword
화, 목 연재
이전 09화내가 부모가 되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3가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