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물건보다 중요한 건 속상함에 대한 위안.
오늘의 세줄쓰기 주제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경험과 그때의 느낌?
오늘의 주제는 얼마 전 아끼던 피규어를 식당에 놓고 온 아들을 떠올리며 야심차게 주제를 정해봤다. 아이들에게 이 주제도 왠지 할말이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내 예상이 들어맞았는지 오늘의 주제가 전자칠판에 띄워지자 마자 마치 한여름의 소낙비가 쏟아지듯 25개의 연필소리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10분도 안되어 아이들이 하나둘 내게 공책을 내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잃어버린 물건은 가지각색이다. 그 중 고맙게도 다시 돌아온 것도 있고 영영 이별을 해야만 했던 안타까운 사연도 있고. 잃어버린 물건 중 단연코 1등은 바로 휴대폰이다. 얼마 전 우리반 지원이도 학교에 휴대폰을 놓고가서 한참을 울며불며 찾았던 경험이 있다. 엄마한테 크게 혼난다며 울상을 짓던 지원이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어른들도 자주 잊어버리는 데 인지능력이 미숙한 아이들이라고 오죽할까? 우리집 아들도 가끔 휴대폰을 학원 차에 놓고 와 전화가 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잘 잃어버리는 우리반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다.
오늘의 세줄쓰기는 주제에 걸맞게 글의 행간 사이사이에서 아이들의 속상함이 그득그득 묻어났다. 소중한 강아지를 잃어버려 아직까지 그 일이 가슴에 사무쳤다는 수연이, 엄마가 새로 사준 한화이글스 야구모자를 누나가 빌려쓰고 나갔다가 잃어버려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는 이수, 명절날 받은 용돈을 지갑에 넣고 다녔는데 지갑이 갑자기 사라져 몇날 몇일을 울었다는 승아. 아이들의 글을 읽는 데 그 속상삼이 내 가슴까지 전달되는 느낌이어서 가슴이 선득했다.
글을 읽다보니 주말에 소중한 피규어를 예산의 어느 산채정식집에 놓고 온 아들이 문득 떠올랐다. 태권도에서 새로 사귄 친구가 자신에게 주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보여주던 세 개의 피규어. 평소 친구가 없던 아들에게 먼저 다가와준 고마운 친구가 준 거라며 잘때도 옆에 뉘여두며 자던, 아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무언가였다.
주말나들이로 예산을 갔다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아들은 그 중 하나를 놓고 왔던 것이다. 차가 고속도로 ic에 진입한 뒤 뒤늦게 그 사실을 인지하곤 뒷좌석에서 울먹이는 아들. 앞좌석의 우리는 어쩔 수 없다며 네가 잘 챙겼어야지 라며 단호하게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선포하고야 말았다.
아들은 집에 와서도 내내 잃어버린 피규어 타령을 했고, 잠들기 직전까지도 다시 찾으러 가고 싶다고 자신의 소망을 피력했다. 나와 남편은 평소에도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아들에게 따끔하게 일러주마 라는 생각으로한번 잃어버린 것은 되찾을 수 없어. 그러니 평소에 잘 챙겼어야지. 어디갈때 잃어버리니까 들고 가지 말랬잖아. 말을 안듣고서는. 내일 월요일이니 얼른 자.라며 아들을 질책아닌 질책했고 그날따라 무더위에 피로가 옴온몸을 에워쌌기에 서둘러 잠을 청하려 누웠다.
양어깨가 축 늘어진 채 내옆으로 온 아들. 불을 끄고 10분이나 지났을까? 내 손등에 촉촉한 물기가 느껴졌다. 내 손등을 자신의 얼굴에 파묻은 채 잠든 아들의 눈에서 나온 물기였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아까의 그 일은 아들에겐 아주 큰 상실감을 준 일이었나. 라는 생각이 퍼뜩 스치며 일순 가슴이 뭉근해져왔다. 그 밤 아들은 그렇게 나름대로 잃어버린 피규어와 눈물의 이별을 하고 있었던 것. 그제서야 나는 아들의 속상한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구나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날이었다.
잠시 그날의 일에 잠겨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선 오늘의 주제를 쓰고 난 아이들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아이들은 앞으로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게 잘 챙겨야겠다.로 끝나는 교훈적인 소감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렇지, 세줄쓰기를 쓰며 나의 부족한 점을 돌아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지는 건 참 훌륭한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다 한 아이가 나의 예상을 깨는 소감을 말했다.
"선생님, 저 얼마 전에 오래된 애착인형을 잃어버리고 나서 정말 속상했었거든요. 오늘 세줄쓰기를 하면서 그 때의 마음을 쓰고 방금 검사맡으면서 선생님한테 위로받아서 너무 좋았어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 마음에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까 세줄쓰기를 검사맡으러 오면서 얼마 전에 애착인형 곰인형을 잃어버려서 속상하다고, 엄마한테 잘 못챙겨서 그렇지 라는 면박만 받았다며 속상함이 그득 묻어나는 글을 내보인 시아였다.
시아는 그때의 속상함을 떠올리며 글로 천천히 적다보니 다시 속상함이 올라오긴 했지만, 글을 쓰면서 자신이 가장 속상한 것이 바로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늘 세줄쓰기로 받은 위안덕분에 이제 그 기억을 떠올릴 때 마다 조금은 덜 속상할 것 같다고 하며 입가에 작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나는 그런 시아의 미소를 보며 얼마 전 피규어를 잃어버린 아들 생각이 났다. 그때 제대로 위로해주지 못한 마음이 수면위로 떠올라 다시금 미안함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쩌면 아들은 피규어를 잃어버린 설움보다, 그 속상한 마음을 엄마에게 제대로 위안받지 못해 눈물을 보인게 아닐까 하고.
물론 잘 챙기지 못하는 아들의 탓도 있고, 물건을 잘 챙기도록 훈계해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인 것은 마땅하지만, 그에 앞서 서 그 속상함을 어루만져주는 게 가장 급선무가 아니었을까 하고. 그 속상함을 충분히 위안받아야 앞으로 물건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도 더 단단히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나를 정신이 번뜩 들게 만들었다.
아이들 모두가 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나도 함께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이들에게 나직이 말했다.
" 맞아, 잃어버려서 가장 속상한 사람은 본인일거야. 우린 앞으로 누군가가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했을 때 그 속상함을 먼저 알아주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 되자. "
그 말에 반짝이는 눈빛을 내게 보내는 아이들을 보며 속으로 작게 다짐한다. 집에 가서 아들의 속상한 마음을 느즈막이라도 어루만져주어야지 라며. 한 번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을 순 없지만, 누구보다도 속상했을 그 마음을 위로받는 행위는 마음 속 여린 상처를 보호해주는 작은 반창고의 역할은 할 수 있을 거라 믿으니까.
훗날 아들이 피규어를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릴 때, 속상함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대신 엄마에게 따스히 위로받은 경험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기를 바라며, 집에 돌아가면 이틀 늦은 위안을 꼭 빼먹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