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받은 환대는 그 곳을 영원히 잊지 못할 곳으로 만들어준다.
오늘의 세줄쓰기 주제
여행지에서 누군가로부터 받은 인상깊은 친절은?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누군가로부터 배려를 받는 경우가 왕왕있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다보면 혼자 다닐때에 비해 더 많은 배려가 축복처럼 쏟아지곤 하는데 그 순간들이 유독 더 마음 속에 각인되어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그 따스한 여운에 휩싸이곤 한다.
바로 어제, 속초 여행을 3박 4일동안 다녀왔다. 2년 전 여름휴가때 속초에서 받은 기억이 참 따스해서 올 여름휴가도 주저없이 이 곳으로 정했다. 한증막을 연상케 하는 여름더위에 손이 많이 가는 5살 둘째까지 데리고 다니느라 여행이 녹록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받은 따스한 배려와 친절이 힘든 순간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자그마한 힘이 되어주었다.
속초의 어느 카페, 바다뷰 카페에다 더위를 식히러 온 관광객들이 참 많았다.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 딸을 데리고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실은 단 두 칸, 게다가 한 칸은 고장이 나있었다. 딸아이는 꽤나 오래 참았던 지 양쪽 발을 번갈아가며 동동 구르며 다급한 신호를 보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본 내 앞에 줄서있던 한 젊은 여성 분이 아이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가야 먼저 들어가" 라며 손짓을 해왔다. 그 분의 배려로 앞줄로 이동했고 잠시 뒤 화장실 칸이 비자 나는 고개를 숙여 감사표시를 전한 후 아이와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잠시 뒤 개운한 표정으로 나온 아이와 함께 나는 그 여성 분에게 작게 목례를 한 뒤 뒤돌아나왔다. 그 뒤, 카페를 나와 쏟아지는 한낮의 열기를 한몸에 받으면서도 마음 속에 스민 방금 전의 따스함이 그 열기를 이겨내게 만들었다.
다음 장소는 속초관광수산시장, 관광객들의 성지이자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라 늘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그날따라 땡볕의 더위에 사람들이 내뿜은 열기, 그리고 음식을 튀기고 구워내는 화로의 훈기 이 삼박자가 어우러져 찜질방을 가지 않아도 단숨에 땀이 주르륵 날만큼 더위가 상당한 곳이었다. 얼굴이 발갛게 익은 채 두 남매를 데리고 저녁으로 먹을 만한 음식을 매의 눈으로 찾아다니던 와중, 한 건어물 가게의 아저씨가 딸을 보더니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호객행위를 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절레하니 갑자기 물티슈 세장을 뽑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고, 딸래미 땀에 흠뻑 젖었네, 땀좀 닦아."
그제서야 딸아이의 얼굴을 살피니 긴 머리에서 시작된 땀이 얼굴로 방울져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앞만 보고 걷느라 나는 바로 옆의 아이의 상태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생면부지의 건어물 가게 아저씨가 딸의 힘듬을 알아봐주셨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근해져왔다.
감사한 마음으로 물티슈 세 장을 손에 받아들고 아이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고 아이는 상쾌한 표정으로 아저씨에게 옅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이의 손에 오징어 한개를 쥐어주시곤 예쁘게 자라라 덕담까지 잃지 않으셨다. 북새통인 시장을 힘겹게 빠져나오면서도 짜증이 일지 않은 것은 아까 받은 그 따스한 환대 때문이리라.
이 외에도 점심을 먹으러 들른 한 식당에서 얼굴이 밯갛게 익어 들어온 두 아이를 향해 부채를 들고 바람을 쐬어주시며 아이들 손에 사과쥬스를 건네주시던 주인 아주머니의 인자한 웃음도 여행내내 살포시 떠오르며 한여름의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혀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속초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지난 3박4일간의 여행을 복기하다보니 가장 내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 것들은 그곳의 맛집과 먹거리, 바다뷰 카페, 푸르른 자연경관도 아닌 바로 그곳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받은 친절과 환대였다. 생각해보면 여태껏 다닌 다른 여행지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그곳에서 무얼 했고 무얼 먹었는 지는 선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받은 친절과 환대는 바로 어제일 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 세부여행에서는 볼때마다 우리에게 다정히 인사를 건네며 환대해주던 호텔 직원들, 겨울 제주도 여행에서는 무거운 짐과 두 아이를 동시에 들고 다니는 우리를 위해 버스 자리를 흔쾌히 양보해주던 몇몇 승객분들, 당연한 것이 아닌데 식당에 가면 아이들 몫으로 작은 간식을 내어주는 식당주인분들.
지난 여행을 복기할 때마다 그런 따스한 순간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에 촤라락 펼쳐지곤 한다.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그 순간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안온해짐을 느낀다.
그런 관점에서 여행과 인간관계는 그 궤를 같이 하는 게 아닐까한다. 그 사람과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어떤 절경을 보았고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 지는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이 흐릿해지지만,그 사람이 마지막에 내 기분을 어떻게 만들어주었는 지는 시간이 갈 수록 선명한 잔상으로 남아 그 마지막 잔상이 좋았던 사람은 계속 만나고 싶어지듯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무얼 먹고 보고 즐겼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여행지에서 누군가로부터 받은 기분좋은 환대. 여행지에서 받은 환대들이 그 여행지에 대한 마지막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그 환대들은 오래도록 한 사람의 가슴 깊숙한 곳에 각인되어 그 여행지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에 따스한 온기가 가득 퍼져나가 그곳을 다시 찾게 만드는 끄나풀이 되리라.
속초를 떠올릴때마다 일순 가슴이 따스해지는 것도 아마 그 이유이리라. 현실로 돌아온 지금, 여행지에서 받은 잊지못할 환대를 가슴에 고이 품고 그 환대를 나누어주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겐 익숙하지만 누군가에겐 생경한 여행지가 될 지도 모르는 바로 이곳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