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그 시절의 우리를 기억하게 하는 강한 힘을 가진다
오늘의 세줄쓰기 주제는 냄새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다.
누군가에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를일이지만 나는 유독 탄 냄새를 좋아하는 편이다. 탄냄새를 좋아하게 된 연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어린 시절 할머니댁에서 보낸 추억을 회상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방학이나 명절처럼 긴 연휴가 시작되면 늘 우리는 할머니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시골이라 아궁이에 불을 떼가며 음식을 하고 방도 덥혔던 기억이 새록하다. 할머니댁만 가면 나무 장작타는 냄새가 마당 한 가득 메우고 코끝으로 실려오는 그 탄냄새를 맡으며 군고구마도 먹고 사촌들과 옹기종기 모여 놀기도 했었다.
그래서일까? 바깥에서 우연히 탄 냄새가 바람에 실려 코끝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면 늘 그 시절의 안온했던 할머니댁의 풍경이 꼭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바쁜 일상에 허덕이다 우연히 맡은 탄냄새에 잠시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 안온한 느낌을 잠시 받으며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곤 한다.
아이들에게 이 세줄쓰기 주제를 주고 써보라하니 대부분 음식에 대한 추억이다. 고작 열한살 인생에서 나와 같은 특별한 경험을 쓰기란 쉽지 않을 터, 냄새가 되돌리는 추억의 대부분은 어린시절에 있었던 아스라한 기억이다. 이 아이들은 그 어린시절을 통과하는 중에 있기 때문에 현재진행형인 냄새에 관한 추억이 한가득이다.
누구는 라면냄새를 맡으면 캠핑장의 기억이 피어오른다고 했고, 또 누구는 떡볶이 냄새를 맡으면 배고팠던 언젠가 친구엄마가 해주신 떡볶이가 떠올라 마음이 몽글해진다고. 얼마전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세현이는 지나가던 강아지의 털냄새를 맡으면 그리운 콩순이가 떠올라 마음이 뭉클해진다고도 했다.
아이들은 각자 현재진행형인 냄새에 관한 추억을 나누며 서로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특히 라면냄새에 대한 추억이 많은 듯했다. 어디선가 라면냄새가 풍겨오면 아빠와 함께 했던 캠핑의 추억이 바로 어제처럼 되살아나 갑자기 울적한 기분도 머릿속에 과즙이 팡 터지는 것 마냥 행복해진다고 말하며 웃는 아이를 보며 벌써 이 아이는 냄새가 주는 마음의 위안을 알고 있구나 싶어 뭉근하게 미소가 피어오른다.
냄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예전 친구의 웃지못할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둘째를 급하게 출산해야 해서 3살인 첫째와 이별의식도 못한 채 급히 조리원에 가게 되었던 그때. 첫째는 엄마와 헤어져 지내는 동안 어린이집을 갈 때 엄마가 입던 속옷을 늘 들고 다녔다고 한다. 보는 사람 민망해 애착인형을 들려주기도 해보고 엄마의 다른 옷을 손에 쥐어주기도 했는데 다 거부했다고. 그 속옷을 닳도록 들고 다니고 잠잘때도 품에 꼭 끌어안고 자서 꼬질꼬질해지고 먼지가 타서 친구 남편이 이제 그만 들고 다니자고 애걸복걸해봐도 그때마다 울고 떼쓰며 빨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 일화.
아마 아이는 그 속옷을 들고 다니며 거기서 풍겨오는 엄마의 체취에서 갑작스레 자신의 곁을 잠시 떠난 엄마를 떠올리며 곁에 있는 것 같은 안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 속옷 덕분에 아이는 매일 밤 눈물로 지새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친구는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며 그 당시 아이가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속옷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냄새란 그 어떤 감각보다 우리의 향수를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촉매제와도 같다. 어느 책에서 읽기론 후각을 담당하는 뇌의 기관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기관이 같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기관에 비해 후각이 그와 관련된 감정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소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에서도 그런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어린시절의 기억을 다 잊고 살던 주인공이 마들렌에 홍차를 찍어먹으며 나는 내음에 어린시절 고모와 함께 했던 포근했던 추억을 일순 떠올렸다고 말이다.
한 맘카페에서도 냄새에 관한 추억을 되짚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누군가는 존슨즈 베이비로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 목욕 후 로션을 발라주던 엄마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잠시 눈물이 났다고, 그 밑의 댓글에선 꿈돌이 크레파스 냄새를 맡으며 어린시절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아련해졌고, 또 누군가는 지나가는 길에 맡은 갓구운 빵냄새를 맡으며 프랑스에서 유학했던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기가 떠오르며 가슴이 묵직해져왔다고.
냄새는 항상 좋은 기억만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빵냄새를 맡으며 어려웠던 유학시기를 떠올린 것 처럼 나도 얼마 전 조카의 입에서 나는 분유냄새를 맡으며 힘든 육아집중기를 떠올렸다. 하루 종일 아이와 집에서 씨름하며 지친 나날을 보내던 그 시기. 아이의 방긋 미소를 보며 행복하기도 했지만 늘 고단하고 정신이 아득하고 내 자신을 잃은 기분에 우울증에 잠시 시달리기도 했다.
조카의 입에서 나는 분유냄새로 다시금 그 기억을 떠올리는 데 신기하게도 그 시기 겪었던 고통은 잠시 물러나고 아이와 함께 했던 몽글한 시간이 오히려 강하게 떠올랐다. 냄새의 치유효과인가 싶었다. 그 냄새를 맡으면 고통이 밀물처럼 나를 휩쓸 것만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며 그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거구나 싶어 마음 한 구석이 뜨듯해져옴을 느겼다.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기억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치유의 힘을 주지 않나 생각해본다. 바쁜 일상 속 기억 저편에 묻어둔 어린 시절의 안온한 기억들. 지나가버린 그리운 추억들. 냄새라는 강렬한 기억자극제는 우리 가슴 속 묻어둔 소중한 추억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해 우리의 지친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소중한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하루를 바쁘게 살더라도 후각이라는 감각에 촉수를 세우고 내 코끝으로 실려오는 여러 냄새를 가만히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냄새들에 얽힌 소중한 추억들이 훗날 내게 어떤 치유와 위안을 줄 지 모를일이니.
글을 쓰며 코끝에 은은하게 풍겨오는 홍차 향기. 아마 이 향을 맡을 때마다 글을 쓰며 마음을 치유하는 내가 떠오르며 언젠가 글을 놓고 싶을 때 글을 다시 쓰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마무리한다.
당신은 냄새에 관한 특별한 추억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