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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 엄마 Jun 07. 2023

사소한 일상

수술 후 달라진 것 중 하나는 간식을 사서 먹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원 후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이기 전에 하루 두 번 사료를 먹이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닭가슴살을 삶아 사료에 섞어주었더니 게 눈 감추듯 사료 그릇을 싹싹 비워 냈다. 몇 달간의 식습관은 버릇이 되어 이제 닭가슴살 없이 사료만 주면 엄마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즉, 빨리 닭가슴살을 사료에 섞으라는 것이다..ㅋㅋ


인터넷으로 개껌 사는 것 대신 고구마를 한 솥 삶아서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구마 익는 냄새가 나면 뽀는 그때부터 싱크대 아래서 솥만 바라보기 시작한다. 먹어봤던 냄새에 대한 기억은 참기 힘든 모양이다.

식탁에서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면 어김없이 식탁 의자에 올려달라고 한다.


"음.. 음.." 이 소리는 '하나만 주세요~'다. ㅋㅋ

자르다 부서지는 것이 있으면 입안에 살짝 넣어준다. 눈치를 살피던 뿌가 달려온다. 이번에는 뿌도 하나 줘야 한다. 이렇게 더뎌만 가던 고구마 말랭이는 이윽고 다용도실로 옮겨진다.



아파트 화단에 제초제를 뿌리는 것을 알았지만 저 쪽문을 닫아야 된다는 생각을 못했다.

눈물을 머금고 저 많은 고구마를 다 버리고 다시 고구마를 사서 삶고 자르기를 반복했다.


이번에는 테라스로 고구마를 옮겨 널었다. 근무 중 비가 오기 시작했고 고구마를 두 번이나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조퇴를 하고 고구마 말랭이를 사수했다.


아침, 저녁으로 고구마를 뒤집어 주면, 뽀와 뿌는 어김없이 따라와서 얼굴을 내밀고 고구마가 입으로 들어올 때까지 제비 새끼 마냥 바라보고 있다. 난 제비 엄마가 되어 아이들 입에 가장 빨리 마른 고구마를 넣어준다.




어버이날 친정나들이를 못한 아쉬움에, 뒤늦게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다녀왔다.

엄마는 올만에 방문한 딸을 위하여 쌀과 참기름, 농사지으신 상추 등을 내어 주신다.


남동생과 뽀가 만난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막내 남동생은 몇 달 전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이사 가끔 저녁 산책길에 우연히 만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뽀는 동생이 가족이란 사실을 아는지 유달리 반가워하며 아는 체를 한다.


저녁 산책을 나간 김에 동생에게 상추를 전해주고 헤어졌다. 이후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길에 뽀가 유모차에서 내려달라고 소란이다.

유모차에서 내린 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동생이 들어간 공동 현관문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문을 열어달라고 아우성이다.




동생이 뽀에게 아는 체도 안 하고 상추만 받아 간 것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동생에게 뽀 사진을 보내주며 한참 웃었다.




수술 후 정기검사를 진행했다.

혈액, 혈압, X-ray, 초음파 등의 검사 결과, 우려했던 전해질과 췌장염 수치도 많이 안정되었다.

성공적인 수술 결과에도 통계에 따르면 기대 수명은 1~2년에 불과하다는 말에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것처럼 불안하고 아쉽다.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마음은 언제쯤이면 준비가 될까?

하루라도 더 오래 내 곁에 머물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그동안 소중하다고 여기지 못했던 사소한 일상이 행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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