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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 엄마 Mar 30. 2023

사랑에 빠지다.

대개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아이들과 남편, 시댁 얘기들이 대부분인데 이곳 사무실은 강아지 옷들과 강아지 용품 공동구매 등으로 가득했다. 바쁜 업무로 잦은 야근이 계속되었고 늦은 퇴근 인사말은 “강아지 보러 갑시다. 집에 다녀오겠습니다.”였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으나, 아들 키우는 것도 버거운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들 수능을 마친 이후에야 그동안 미뤄 왔던 강아지를 보러 갔다.



첫눈에 네가 눈에 들어왔고 아들 녀석이 너를 안아 보았다. 생후 2개월, 300g의 가벼운 몸짓으로 꼼지락거리며 눈을 맞추는 너의 모습에 우리는 고민도 없이 단번에 너를 가족으로 맞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너는 너의 애착 인형 곰돌이와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한 손에 올려놓아도 될 만큼 작았던 너를 위하여 친구들에게 이름을 공모했다. 콩이, 마루, 아띠, 프린스 등 다양한 이름이 나왔으나, 나는 부르기 쉽고 깜찍하고 귀여운 이름을 원했었던가 보다. 뽀뽀하고 싶을 만큼 이쁘고 상큼한 너에게 ‘뽀’라고 이름을 붙였다.



생후 3개월,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이다.

너의 목구멍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동안 ‘제발 내가 본 것이 바늘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보았으나 X-ray 촬영 결과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반짇고리를 꺼내 단추를 다는 사이 너는 침봉에 꽂혀 있던 실 달린 바늘을 삼킨 것이었다. 바늘이 위까지 내려가는 중 식도를 찔렀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으나, 다행히 위에 잘 도착한 상태였다. 큰 강아지의 경우 대변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지만 500g의 작은 너는, 바늘이 위에서 내려가면서 다른 장기를 찌를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몸무게가 3kg 정도면 내시경으로 바늘을 꺼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너는 아직 너무 아기인지라 개복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수술비 100만 원. 한 달 전 너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지불한 금액의 두 배다. 당시 나에게 100만 원은 너무 큰 금액이었고, 솔직히 아까웠다.

그때만 해도 나는 생명의 소중함도 몰랐고 너와 정이 든 사이도 아니었다. 단지 뽈뽈 거리며 돌아다니는 움직이는 장난감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터라 밤새 고민을 해보겠다고 하고 너를 데리고 병원을 나섰다.

    

집에 와서도 너는 너무도 멀쩡하게 잘 놀고 잘 잤다. 그런 너를 지켜보며 너의 숨소리, 너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동안 나는 네가 생명을 가진 존재임을 깨달았다.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이 트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가 수술을 요청했고, 며칠 입원 후 너는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이번 이벤트로 너는 나에게 애지중지한 존재가 되었다.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터질까 매사 조심스럽게 너를 돌보았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홀로 지내는 네가 궁금해졌다. ‘뽀는 지금 일어났을까? 밥은 먹었을까? 쉬는 했을까?’ 일하면서도 온통 네 생각뿐이었다. 처음 연애할 때처럼, 나는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홀로 있을 너를 생각하면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차츰 약속도 외식도 줄어들었다. 빠질 수 없는 모임에 가면 밥만 먹고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기다리는 너를 생각하면 2차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너를 만난 후 내 삶은 너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발을 동동거리며 달려오는 너

꼬리가 헬리콥터처럼 팔랑거리는 너

나에게 안겨 수십 번의 뽀뽀를 하는 너

배를 만져달라고 발라당 드러눕는 너

엉덩이를 내 몸에 바짝 붙여 앉아 '멍멍' 짖는 너

어느 한 가지, 사랑스럽지 않은 네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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