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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콕 Oct 12. 2024

네게 띠 띠우고

너를 원치 않는 곳으로

 이사 가기 전 정순이 살던 집 안방 한쪽 벽에는 정순과 영복이 결혼 전에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사다리 모양으로 생겨서 사진을 위아래로 두 장 넣을 수 있는 액자에 들어 있었다. 위에는 군용 점퍼를 입고 정면을 보고 있는 영복의 사진이고, 아래는 선글라스를 끼고 카메라를 메고 있는 정순의 반 측면 사진이었다. 흑백 사진 이긴 하지만, 어깨 위로 조금 올라간 중단발에 반팔 셔츠, 발목이 살짝 보이는 슬랙스를 입고 있는 정순의 콘트라 포스토를 보면, 그 누구라도 '멋쟁이였네.'라고 생각할 것이라 확신한다.


 타고나기를 멋쟁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정순은 항상 자기 관리와 맵시에 공을 들이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자주 정순을 따라 목욕탕에 갔다. 그때마다 정순은 목욕 바구니에 날계란 하나를 챙겨 갔다. 내 머리를 감겨주고 나면, 정순은 달걀흰자가 든 바가지와 도끼빗을 주면서 거품을 내라고 했다. 무아지경으로 흰자를 휘젓는 새에 정순은 자신의 머리를 감았고, 물기를 짠 후에 흐물흐물하게 풀어진 흰자로 헤어팩을 했다. 또 계절에 맞춰서 장신구를 걸쳤다. 여름에는 고양이 눈을 닮은 초록색 보석이 달린 펜던트와 반지를, 겨울에는 붉은색 산호 반지를 끼고 외출했다. 머리는 몇십 년째 송죽 미용실 출신의 미용사에게 맡기는 중이다. (참고로 미장원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정순의 관심사가 미용과 패션뿐인 것은 아니다. 정순은 눈과 손이 닿는 모든 것을 정갈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여름날, 실내에 들어와 양산을 접어 둘둘 말아 가방에 쑤셔 넣으면, "이리 줘." 손을 내민다. 구깃구깃한 양산 주름을 곱게 잡아서 양산이 가게 진열대에 있었을 때 모습으로 만들어 돌려준다. 달걀은 삶는 내내 불 앞을 지키며 돌돌 굴렸다. 껍질을 깠을 때, 노른자가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에 와야 먹음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얀색 일색인 동치미 위엔 항상 꽃모양으로 오려낸 주황색 당근 고명이 올려져 있었다.


 그런 정갈함도 돌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사치고, 거추장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순의 보호자로 병원에 가는 엄마는 가끔 전화로 고충을 토로한다.

 "병원 예약 시간까지 빨리 택시 타고 나가야 하는데, 집에 가보면 입을 옷을 죽 늘어놓고 기다리고 있는 거라. 의사가 환자 옷차림을 신경 쓰냐고."

 "요즘 밖에 나갈 일이 거진 병원뿐이니까 그렇겠지."

 수화기 너머에서 짧은 한숨이 들리고, '내가 우리 엄마지만, 정말 엄마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라며 다른 흉을 봤다. 계란을 삶는데 예쁘게 안 삶아지고 자꾸 터진다며 징징거린다고 했다. 무릎도 시원찮은 사람이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계란을 지켜본다고 속상해했다.

 "원래 할가 예쁜 거 좋아하잖아. 예쁜 거."

 "그래도 잘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계속 서 있냐고. 계란이야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지."

 흉을 보는 엄마도 예전엔 정순의 깔밋한 맵시를, 정순이 차려내는 정갈한 식탁을 뿌듯하게 여겼다. 그런데 이제는 정순의 취향을 고려할 시간적 여유도, 체력도 달리는 것이다.


 앞으로 정순이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고 갈아입는 시간은 더 더뎌질 것이고 지켜보는 엄마의 인내력은 더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기다리는 여유도 없이 정순의 팔을 잡아 벌려 띠를 띠고 잡아끄는 사람 ¹ 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종국에는, 나와 엄마의 차례가 올 것이다. 엄마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사납게 줄을 잡아당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슬픈 상상은 콧마루와 눈시울을 직격 했다.

 "엄마는, 할매 욕 좀 그만하고. 나는 이제 저녁 먹을 란다. 전화 끊는다."

 서둘러 통화를 끝내고 휴지를 끊어 코를 풀었다.  서로의 띠를 잡아끌거나, 띠에 끌려가는 나날이 가급적 늦게 찾아오기를, 또 아주 짧게 지속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¹요 21:18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KRV)

다른 사람이 네 옷을 입혀 네가 원치 않는 곳으로 너를 데려갈 것이다(K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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